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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friday] 매끄럽고 뜨끈하게… 南道 바다가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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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매생이] 도시를 맛보다

고려 때부터 지역특산물… ‘비단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 매우 달고 향기롭다’

한겨울이 제철… 강진·장흥·완도 지역 겨울 한철 음식에서 웰빙 바람 타고 전국구 음식으로 부상

조선일보

서울 ‘해남천일관’ 매생이굴국. 국이라기보다 매생이 덩어리라고 해야 할 정도로 걸쭉해야 제맛이다. 매생이는 아무리 뜨겁게 끓여도 김이 나지 않아 먹을 때 조심하지 않으면 입천장이 홀랑 까지기 십상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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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에서는 달고 부드럽고, 목을 넘어갈 때는 뜨끈하면서 매끄럽다. 여리고 개운하면서도 깊은 감칠맛, 매생이국은 남도 바다의 맛이다. 한겨울이 제철인 매생이는 '생생한 이끼를 바로 뜯는다'는 뜻의 순우리말 이름. 그만큼 깨끗한 바다에서 난다. 파래보다 더 가늘고 부드럽고 짙은 녹색을 띤다. 지방·칼로리가 적고 칼슘·철분·식이성분은 풍부한 건강식품으로 알려지며 전국적 인기를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남 일부 바닷가에서만 먹었다.

'잡태'의 재발견

예부터 알 만한 이들은 매생이를 알았다. 조선시대 정약전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 매생이를 '누에가 만든 비단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검푸른 빛깔을 띠고 있다.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맛이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기록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전라도 편 특산물로 '매산(매생이)'이 김·미역·감태와 함께 등장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전라도 관찰사에게 '좋은 매산을 가려 많이 올리라'고도 했다. 매생이가 많이 나는 곳은 전남 강진 마량, 장흥 신리, 완도 고금·약산 등 조선시대 '강진현'에 속한 지역의 갯벌이다.

매생이가 홍어와 함께 서울에 알려지고 전국으로 확산한 것을 곧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연결한다. 고문헌에서 보듯 매생이는 이미 고려·조선시대 지역 특산물이었다. 김보다 오히려 더 식탁에 많이 올랐을지 모른다. 요리가 간편하고 특별한 가공 없이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이 가장 중요한 해조류가 된 건 일제의 '해태(海苔·김) 증산 정책'과 관련 있어 보인다. 전라도에는 일제강점기 김 양식을 장려하고 견습 학교도 생겨났다. 수탈을 위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전라도 최초 어업조합 역시 완도에 만들어진 해태어업조합이다. 매생이와 김은 같은 공간 다른 깊이에 공존하는 해조류다. 일제가 만든 수산 정책이 매생이가 기를 펴지 못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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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는 조류가 거칠지 않고 소통이 잘되는 청정해역에서만 자란다.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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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강진·장흥·완도 주민들이 먹는 한철 음식이었다. 남도 여행객이 늘면서 매생이국이 소문나기 시작했다. 웰빙 바람이 날개를 달았다. 매생이 효능이 알려지면서 서울 복판 고급 식당까지 진출했고, 겨울철 국민 음식으로 부상한다.

양식장도 늘어났다. 김 양식의 변화 때문이었다. 그 무렵 김 양식은 기술이 발달해 마을 어업 규모에서 벗어나 깊고 넓은 바다에서 양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에 밀려났던 매생이가 제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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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 양식에서 가장 힘든 건 채취 작업이다. 배에 엎드려 가슴을 붙이고 매생이 발을 들어 올리는 어민 가슴에 매생이처럼 검은 멍이 든다.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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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멍이 들어야 맛보는 음식

매생이는 해조류 중에서도 기르기 까다롭기로 소문났다. 수온도 중요하지만 조류가 거칠지 않고 소통이 잘되어야 하고, 청정한 갯벌과 바다가 어우러진 자리여야 한다. 어민들은 포자를 붙이는 철이면 애간장이 녹는다. 전남 완도군 고금도에 딸린 작은 섬 넙도에서 매생이 양식을 처음 시작한 오보선씨는 매생이 박사지만 그래도 "매년 바다에서 매생이 포자를 받을 때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고 했다. "옛날 지주식 김 농사 짓던 자리가 제일 좋은데, 매립돼 사라졌거나 오염된 경우가 많습니다."

농촌 주민들이 텃밭에서 농사짓듯, 바닷가 주민들은 갯밭에서 매생이 농사를 짓는다. 찬바람이 나는 11월이면 대나무를 쪼개 엮어서 발을 바닷물이 들고 빠지는 목에 설치해 포자를 붙인다. 다시 이를 갯벌에 세운 대나무 기둥에 묶어 양식한다. 매생이 농사에서 가장 힘든 건 채취다. 작은 배 좌현이나 우현에 엎드려 가슴을 붙이고 매생이 발을 들어 올려 채취해야 한다. 이렇게 한철 지나면 가슴에 멍이 든다. 포자가 잘 붙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애간장이 녹고, 겉으로는 가슴에 멍이 들어야 매생이가 밥상에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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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서울 ‘해남천일관’ 매생이전 ②매생이 덩어리 ③매생이굴떡국 ④매생이죽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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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고 깊은 맛

바다가 주는 채소들이 그렇듯 매생이 요리는 간결하다. 매생이 외에 참기름과 소금만 있으면 못 할 요리가 없다. 국을 끓일 때는 참기름으로 볶고, 소금으로 간해서 끓인다. 매생이국은 걸쭉하다. 국이지만 국이 아니다. 국물이 적고 차진 매생이 덩어리다. 검게 타버린 어민들 가슴처럼 검푸르다.

매생이 요리는 국(매생이굴국·매생이떡국)이나 전 정도가 전부였지만 요즘은 칼국수, 라면, 호떡, 냉면, 과자, 막걸리까지 나왔다. 그래도 역시 매생이는 국으로 먹어야 제맛이다. 참기름 듬뿍 넣은 차진 매생이국은 혀에 착 달라붙기 때문에 다른 해조류로 끓인 국보다 훨씬 더 뜨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김이 거의 나지 않아 뜨거워 보이지 않으니 먹을 때 조심해야 한다. 허겁지겁 한 숟갈 퍼 입에 넣었다가는 입안이 홀랑 벗겨진다. 그래서 '미운 사위에게 매생이국 준다'고 했다.

매생이 전문 식당은 매생이 생산지에서도 찾기 어렵다. 가정에서 흔히 먹는 것을 식당에서 찾을 리 없는 탓이다. 하지만 전라도 음식 잘한다고 소문난 식당이면 어디나 매생이를 낸다. 전남 강진 해태식당(061-43402486), 장흥 평화식당(061-867-1090), 해남 동산회관(061-532-3004) 정도면 제대로 끓인 매생이국을 맛볼 수 있다. 광주광역시에서는 구성로 정애네집(062-234-4398), 서울에서는 역삼동 해남천일관(02-568-7775)이 괜찮다.



[김준·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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