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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도시를 읽다] (22) 경남 통영 - 이곳에 예술가가 많은 이유를, 왠지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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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은 예술의 도시다. 박경리, 유치환, 김춘수, 윤이상, 전혁림 등 이름만으로도 묵직한 문화계 거장들이 통영에서 태어나 창작혼을 불태웠다. 시인 정지용은 1950년 통영기행문에서 “금수강산 중에도 모란꽃 한 송이인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고 했다. 점점이 떠 있는 570개 섬들이 작가들의 감성에 불을 지핀 것일까, 부드러운 산세와 호젓한 항구가 무한한 상상력을 키워준 것일까. 그림 같은 해안선을 따라 통영 예술인들의 숨결을 찾아나섰다.

■ 예술가의 DNA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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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태어난 소설가 박경리(1926~2008)는 살아생전 “통영 사람에게는 예술가의 DNA가 흐른다. 이순신과 300년 통제영 역사가 통영 문화에 오래도록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의 대하소설 <토지>를 비롯해 <김약국의 딸들> <파시> 등에는 어김없이 고향땅 통영이 등장한다.

통영에 도착하자마자 박경리가 나고 자란 명정동과 충렬사를 찾았다. 박경리는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서 ‘충렬사에 이르는 양켠에는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줄을 지어 서 있고 그 길 연변에 명정골 우물이 부부처럼 두개가 나란히 있었다. 음력 이월 풍신제를 올릴 무렵이면 고을 안의 젊은 각시, 처녀들이 정화수를 길어내느라고 밤이 지새도록 지분 내음을 풍기며 득실거린다’고 했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충렬사와 길 건너 명정골 우물은 소설에 묘사된 그대로였다.

“저 우에 박경리 생가가 있다, 아임미꺼. 얼마 전 박경리학교에서 시를 배웠지예.” 명정동 노인회관 앞에서 만난 70대 할머니가 야트막한 언덕에 있는 골목을 가리켰다. 서문고개는 <김약국의 딸들>에서 한실댁이 셋째딸 용란을 데리고 ‘가자. 죽으나 사나 가야제’ 하며 넘던 길이다. 5분 정도 걸었을까 붉은 벽돌집 담벼락에 ‘박경리 생가’라고 적힌 작은 표지판이 보였다. 비좁은 골목의 끝은 시야가 확 트이는 마당이었다.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통영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통영 출신 청마 유치환(1908~1967)의 시 ‘행복’의 한 대목이다. 파란 하늘 아래 갯비린내 가득하던 그 시절 유치환이 시를 썼다는 중앙우체국으로 향했다. 골목 안에 있는 우체국은 자그마하면서도 소박했다. 정문 앞 빨간 우체통 옆에 시 ‘행복’이 새겨져 있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느니/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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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환과 동시대를 산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은 1956년까지 고향에 머물렀다. 불혹의 나이에 유럽으로 건너가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1967년 ‘동백림 사건’에 휘말렸고 2년간 복역한 뒤 1969년 독일로 돌아가 끝내 고국땅을 밟지 못했다.

“아내에게 독일이나 일본에 살지 말고 고향 품에 안기라고 했대요. 6년 전 따님과 통영에 둥지를 트셨는데 오는 2월 윤이상의 일상을 만날 수 있는 베를린하우스를 일반인에게 공개할 예정입니다.” 윤이상기념관 이중도 팀장의 말이다. 이 팀장과 음악도서관으로 들어서는데 낡은 오르간과 허름한 소파, 서가에 꽂힌 책들과 녹음기, 악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독일어로 된 LP판 수백장과 <로댕> <말테수기> <우리시대 민족운동의 과제> 등 때묻은 책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어릴 때부터 남해안 별신굿 등 무속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하셨다고 해요. 유치원 시절 오르간, 칭·칭·칭 감기는 전통악기 등 한국의 소리가 작품 세계에 오롯이 배어 있지요.”

윤이상이 거닐던 골목에는 통영초, 통영고, 마산고, 고려대 등 유치환 작사·윤이상 작곡의 교가 악보들이 벽면 가득 그려져 있었다.

■ 왜 통영 출신 예술인이 많은가

어촌마을이었던 통영은 1592년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 이후 커다란 변화를 맞았다. 통영은 조선시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3도 수군을 총괄하는 삼도수군통제영(1593)으로 지정되었고 통제영 본부인 세병관을 중심으로 세련된 도시 면모를 갖췄다. 2년에 한번 한양에서 통제사가 부임할 때마다 서양과 도시 문물이 빠르게 흘러들었다. 전국 8도의 ‘쟁이’란 쟁이는 다 모였다. 통제영 300년 세월이 통영을 나전칠기, 소반, 갓 등의 명산지로 키워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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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교를 건너 시인 김춘수(1922~2004)를 찾아나섰다. 통영 앞바다를 마주한 유품전시관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 ‘꽃’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 구절인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에서 의미를 눈짓으로 바꾸셨다고 해요.”

통영시 김홍란 문화해설사는 “1940~1950년대에는 민족문화 계몽운동이 화두였는데 김춘수가 가장 젊었다”면서 “전혁림 화백을 자주 찾아 세계 문화 사조를 나누었다”고 말했다. 1945년 9월 결성된 계몽예술운동 단체 ‘통영문화협회’ 대표는 유치환이 맡았고 간사는 윤이상, 전혁림, 김춘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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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가 ‘한국의 코발트블루 화가’라고 한 전혁림(1915~2010)은 민화를 40년간 추상화로 구축해 ‘한국의 피카소’로 불린다. 전혁림미술관은 아담했다. 그가 살던 집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아들 전영근 화백과 둘러본 전혁림의 화폭은 놀라웠다. ‘화조도’(1948)에서 새가 꽃화병으로 튀어나오는가 하면 ‘푸른 들녘’(1953)은 황금 들판이 아닌 청록색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미륵산 정상에서 죽도, 한산도, 미인도, 매물도, 욕지도, 비진도 등 다도해를 내려다봤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운치가 있으면서도 고색창연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항남동 골목은 흥미로웠다. 전당포와 국밥집, 이발소, 게스트하우스 등 아기자기한 건물이 늘어서 있는데 ‘중섭 식당’이 눈길을 끌었다. 이중섭(1916~1956)은 통영 출신은 아니지만 1953년부터 1954년까지 화구통을 들고다니며 ‘흰소’ ‘싸우는 소’ 등 황소 시리즈와 ‘부부’ ‘가족’ ‘달과 까마귀’ 등 40여점을 통영에서 그렸다.

통영은 발길 닿는 곳마다 예술인의 혼이 숨쉬는 도시였다.

▶이맛 안 보고 어데 갈라꼬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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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찌’는 술을 시키면 거기에 안주를 맞춰 내주는 술집이다. 요즘은 술과 안주가 기본 세트메뉴처럼 사람수에 맞춰 나온다. ‘수연다찌’(055-645-2004)는 플라스틱 양동이에 얼음을 가득 채워 소주와 맥주를 내고, 여기에 생선회부터 전복, 멍게, 굴, 갑오징어, 대게, 매운탕 등 통영의 싱싱한 해산물로 만든 다양한 안주를 내온다. 2인 이상, 1인당 3만원으로 소주 3병 또는 맥주 3병이 나온다.

‘명성 회뜬 날’(055-645-9357)은 여객선터미널 앞 서호시장에 있는, 토박이들에게 입소문난 식당이다. 겨울에는 물메기탕, 봄에는 도다리쑥국이 나온다. 물메기탕은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담근 10년 된 조선간장에 무만 넣고 만든 육수로 끓인다. 속풀이 해장국으로 좋다. 생선회 5만원, 매운탕 1만2000원, 도다리쑥국·물메기탕(계절별미) 1만2000원.

‘희락횟집’(055-642-2224)은 통영 사람들이 찾는 자연산 활어회 전문점이다. 계절별로 다양한 자연산 회를 맛볼 수 있는데 전복, 멍게, 해삼 등 싱싱한 해산물은 물론이고 먹고 남은 모둠회는 생선물회로 즐길 수 있다. 자연산 모둠회 10만원, 생선물회 1만5000원, 해물물회 2만원.

‘장어여행’(055-643-2758)은 유명한 바닷장어 전문점이다. 장어를 무, 파, 버섯 등 채소와 함께 끓인 전골과 장어탕이 인기다. 장어숯불구이 3인분 4만5000원, 장어전골 2인분 2만6000원, 장어국 1만원, 장어탕 8000원, 해물된장 8000원.

‘통영 오미사꿀빵’(055-646-3230)은 1963년부터 영업 중인 통영 꿀빵집. 재료가 떨어지면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팥앙금을 넣은 꿀빵 1팩(10개) 8000원, 모둠 1팩(호박앙금 2개+자색고구마 앙금 2개+팥앙금 6개) 1만원.

‘훈이시락국’(055-649-6417)은 새벽시장으로 유명한 서호시장 안 시락국집이다. 장어뼈를 우린 국물에 들깨로 무친 시래기와 된장을 넣고 끓여낸다. 부추를 얹어먹으면 든든한 한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따로국밥 5000원, 말이국밥 4500원.

‘통영 풍화김밥’(055-644-1990)은 충무김밥 1인분 4500원, 주문은 2인분부터.

‘분소식당’(055-644-0495)은 복국집. 졸복과 콩나물, 미나리만 넣고 끓인 복국이 맑고 시원하다. 복국 1만2000원, 복국매운탕 1만4000원, 생선매운탕 1만2000원, 메기탕 1만3000원, 도다리쑥국 1만5000원.

‘한마음식당’(055-645-0971)은 굴 요리 전문점이다. 석화찜, 굴·삼겹살구이, 굴무침, 굴밥 등 굴을 소재로 만든 12가지 음식을 한상 가득 내놓는 코스요리가 백미. 성게비빔밥과 멍게비빔밥을 굴 요리와 곁들인 성게정식, 멍게정식도 잘 나간다. 이순신공원과 동피랑을 둘러본 뒤 도보 이동 가능. 1인 한마음 굴코스 3만원, 성게정식 2만원, 멍게정식 1만5000원.

‘한양식당’(055-642-5146)은 통영 욕지도에서 이름난 중식당. 욕지짬뽕이 유명하다. 짬뽕 6000원, 짜장 5000원, 짬뽕밥 6000원, 볶음밥 6000원.


<글·사진 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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