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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밀착취재] 추모·원통·자책감…여전히 슬픔에 잠긴 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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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한 달 / 추모 포스트잇 가득 합동분향소 / 유가족 그리움에 불면의 밤 보내 / 일부는 병원치료 등 고통 극심 / 소방관들도 심한 자책감 시달려 / “후대엔 이런 사고 다시는 없어야”

세계일보

충북 제천체육관에 마련된 화재 참사 합동분향소에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제천=연합뉴스


“사랑하는 가족이 목욕탕 안에서 살려달라고 절규하며 유독가스에 질식돼 죽어가는 동안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원통하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한달째를 맞은 18일 유가족들은 “너무 억울하고 분통해 죽을 지경”이라며 심정을 토로했다.

류건덕 제천화재 유가족 대표는 “유족들 모두가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화재초기 소방대처 등을 정확히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번 참사에서 부인을 잃은 한 유가족은 병원에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원통해서 밖으로 달려 나와 소리를 지른다”며 “현재 많은 유가족들이 병원치료를 받는 등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참사로 목숨을 잃은 29명의 위패가 모셔진 합동분향소는 여전히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합동분향소의 한쪽 벽면에는 희생자들이 남겼던 각종 사진과 추모 글귀를 적은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다. ‘엄마 거기에선 행복해. 하고 싶었던 거 다해 사랑해’ 등 글귀마다 유가족의 그리움과 애통함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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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참사 현장을 다시 찾은 유족들이 건물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의 부부는 이날도 분향소 앞에 마련된 손녀 김다애(18)양의 영정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며 울먹였다. 참사가 나고 거의 한 달이 다 됐지만, 김양의 할아버지(80)와 할머니(72)는 여전히 손녀가 이 세상에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모습이다.

참사 한 달 전 숙명여대 합격증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보낸 뒤 자랑했던 손녀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할아버지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안 잡아가고, 천사 같은 우리 손녀딸을 데려 같으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김양의 죽음은 비단 가족만의 아픔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였던 지난달 24일 김양의 발인식에는 300여명의 제천여고 학생들과 교사들이 참석,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부실 대응 논란으로 유족의 날 선 비판과 유례없는 경찰 수사까지 받게 된 소방관들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들은 화재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소방관들은 천직으로 삼았던,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고 자부심으로 버텼던 이 직업을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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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참사를 빚은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사고현장 수색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한 소방관은 “누구도 제천 참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제대로 구조를 못 했다는 점 때문에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하고 혼자서 끙끙 앓고 있다”고 제천소방서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화재에 대해 조사를 벌인 소방합동조사단의 결과를 통해 화재 진압 및 인명 구조 지시를 내렸어야 할 현장 지휘관들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밝힘에 따라 경찰 수사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경찰은 지난 12일 제천소방서 소속 소방관 6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 데 이어 3일 뒤 충북소방본부와 제천소방서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소방 지휘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됐는지와 초동 대처 실패가 대형 인명 피해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규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제천시는 지난달 22일부터 제천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충북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가 참여한 심리안정지원팀을 운영 중이다.

제천=김을지 기자 e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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