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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캐나다 순록들은 어쩌다 늑대의 섬에 갇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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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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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부는 순록의 일종이다. 알래스카와 북유럽, 캐나다 전역에 널리 분포한다. 전세계 500만마리가 서식하고 있다지만, 지역과 아종에 따라 멸종을 걱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캐나다 퀘벡주 조지 강을 따라 이주하며 살아가는 한 카리부 무리는 1985년 80만마리에서 오늘날 5000마리까지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북미 오대호 중에서 가장 큰 슈피리어 호수 안 미시피코튼 섬에 모여 사는 카리부 무리도 위기에 빠졌다. 현지 일간 토론토선 보도에 따르면 2013년 무렵만 해도 미시피코튼 섬에는 카리부 700마리가 무리를 이루고 번성했지만 지금은 100마리 이하만 남은 것으로 추산된다. 기관에 따라 20~30마리만 남았다고 보기도 한다.

미시피코튼 섬 카리부가 위기에 빠진 직접적인 이유는 늑대다. 늑대가 카리부를 계속 잡아먹으면서 무리 전체가 사라질 지경이 됐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온난화다. 2013년까지만 해도 거의 매년 겨울이면 섬 주변 물이 얼어붙어 뭍과 이어지는 얼음 다리가 생겼다. 카리부는 얼음 다리를 통해 섬 안팎으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늑대를 피할 공간이 그만큼 넓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겨울이 와도 호수가 얼지 않는 경우가 잦아졌다. 얼음 다리가 사라지기 전 육지로 나가지 못한 카리부들은 좁은 섬 안에 그들의 포식자와 그대로 갇히고 말았다. 미시피코튼 섬 면적은 184k㎢. 서울시 면적의 3분의 1 정도다. 카리부가 포식자를 피해 다니기에는 턱없이 좁은 공간이다. 동물학자 고든 어슨은 뉴욕타임스에 “당신을 죽이려는 누군가와 감방 안에 함께 갇힌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미시피코튼 섬 카리부의 상황을 설명했다. 토론토선은 “4마리 늑대가 섬으로 넘어왔고, 갇힌 카리부들을 마음껏 사냥했다”고 전했다. 늑대는 카리부를 잡아먹으면서 계속 수를 늘렸다. 온타리오주 야생 동물 전문지 노던와일즈는 “2016~2017년 겨울까지 늑대 수는 3배 이상 늘었고, 지금은 20마리 가까운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늑대가 늘어난 만큼 카리부는 줄었다.

섬에 갇힌 카리부들을 구하기 위해 캐나다 당국이 나섰다. 온타리오주 천연자원삼림부는 지난 13일(현지시간) 미시피코튼 섬 카리부 9마리를 헬기 4대에 실어 130㎞ 떨어진 슬레이트 섬으로 보냈다. 암컷 8마리, 수컷 1마리를 실어 보냈다. 슬레이트 섬도 미시피코튼 섬처럼 슈피리어 호수 안에 있다.

온타리오주 당국은 카리부 수송 작전에 ‘섬세한 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수송에는 45분에서 1시간이 걸렸다. 생전 처음 헬기에 타는 카리부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눈가리개와 귀마개를 씌웠다. 버둥거리다 다치는 일이 없도록 다리도 묶었다. 수의사와 연구자들이 동행했다. ‘작전’에 동참한 레이크헤드대학 생물학자 아서 로저스는 뉴욕타임스에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카리부들을 무사히 옮겼다”고 전했다.

슈피리어호수 인근 주민들은 미치피코튼 섬 카리부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당국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해왔다. 카리부를 잡아먹는 늑대들을 사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부는 늑대 사냥 대신 카리부 일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선택했다. 지역 주민단체 미시피코튼퍼스트네이션에서 일하는 레오 레피아노라는 남성은 뉴욕타임스에 “우리는 미시피코튼 카리부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카리부들이 슬레이트 섬에서 다시 옛날처럼 번성하기를 희망한다. 슬레이트 섬에는 늑대가 없다. 호수가 얼어붙어 얼음 다리가 생기지 않는 한 늑대가 넘어올 일도 없고, 슬레이트 섬의 카리부들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온난화로 호수가 얼어붙는 경우가 줄었다고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언젠가 혹독한 한파가 닥쳐 얼음 다리가 생기면 늑대들이 슬레이트 섬까지 넘어올 수 있다. 레피아노는 “늑대들이 슬레이트 섬으로 넘어간다면 2~3주면 카리부들을 모두 먹어치우게 될 것”이라면서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카리부를 슬레이트 섬 외에 다른 곳으로도 분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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