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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지구의 역습,식탁의 배신-수산편(중)]남태평양 고향인 아열대 어종…제주에 터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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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닷속 황놀래기·주걱치·청줄돔·아홉동가리 등 독차지

파랑돔은 울릉도·독도까지 이동


영화 ‘건축학개론’의 촬영지였던 제주 위미항. 여주인공 서연의 집이 자리한 이 곳은 지금도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게스트하우스와 예쁜 카페가 항구를 따라 드문드문 이어진다. 최근엔 ‘스쿠버 다이빙’ 장비 대여도 늘었다. 위미항에서 만난 강복선 해녀는 “지난 몇 년 사이 육지에서 오는 스쿠버다이버들이 엄청 늘었다”며 “한 번 들어가면 30분 정도는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즘 제주 바다는 ‘스쿠버다이버들의 천국’이 됐다. 형형색색의 아열대 어류와 산호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제주 토박이들도 생전 처음 보는 어종이 많다. 이재천 제주해비치호텔앤리조트 총주방장은 “지난 몇 년 사이 제주 바다의 어종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며 “어민들에게 고기의 이름을 물어도 알지 못한다. 전에는 본 적이 없는 어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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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해역에서 ‘아열대화’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곳은 ‘제주’다. 제주 바닷속은 지금 변화무쌍한 시기를 맞고 있다. 지난 86년(1924~2010)동안 제주 바다의 표층 수온은 1.5℃가 올랐다. 바다에서의 1℃ 상승이 가져오는 변화는 상당하다. 바닷속 1℃는 육지에서의 10℃와 같기 때문이다. 한반도 해역에 살고 있는 온대성 어종은 수온이 상승하면 대사량이 높아지고, 면역력이 떨어진다. 살 수 있는 환경이 안되니 서식처를 떠난다. 그 자리엔 새로운 어종이 밀려든다. 고준철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 박사는 “관광객들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에메랄드 빛의 제주 바다는 지금 소리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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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진 제주 바다…

급속한 아열대화


제주 바다가 뜨거워지고 있다. 수온 상승으로 나타난 눈에 띄는 변화는 ‘없던 생물’들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고 박사는 “15년 전만 해도 지역적으로 따지면 제주 남쪽에만 살고 있고, 북쪽에는 한두 마리 밖에 없던 아열대 어종들이 이후 서서히 증가했다”며 “제주 연안을 회유하며 북쪽까지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제주는 완전히 ‘아열대 해역’으로 접어들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반도 해역의 아열대화를 연구하고 있는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에 따르면 아열대 해역을 구분하는 기준은 수온, 서식생물, 기온 등 세 가지다.

수온과 서식생물은 상당히 중요한 기준이다. 제주 바다의 표층수온은 2003년 연평균 18.9℃를 기록했다. 10년 후는 중대 기점이었다. 2013년 19.3℃까지 올랐다. 이후 다시 하락세를 보였다. 2014년 18.8℃, 2015년 18.2℃를 기록했다.

수온 변동이 두드러진 이 기간(2012~2016년) 제주 바다엔 변화가 일었다. 연산호만 서식하던 제주에 그물코돌산호ㆍ거품돌산호와 같은 경산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수산연구소에 따르면 20℃ 이하의 해역에선 연산호만 서식하고, 18~20℃ 해역에선 연산호와 경산호가 혼재한다. 평균 수온이 20~25℃를 오가는 열대 해역인 오키나와에선 경산호만 서식한다.

경산호의 점유율도 부쩍 늘었다. 거품돌산호의 경우 제주의 연체동물 종조성(생물 군집을 형성하는 여러 종의 분류군 조성) 점유율에서 소라(20%)에 이어 두 번째(15%)로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현재 제주는 연평균 18~19℃를 유지, 경산호와 연산호가 혼재하며 아열대 해역이라는 기준이 생겨났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같은 기간 아열대 어종 출현율은 41~52%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 바다가 유난히 뜨거웠던 2013년엔 전체 어종의 52%에 달하는 44종의 아열대 어종이 출현했다. 수온이 떨어진 2014년엔 33종(44%), 2015년엔 34종(43%)였다. 2016년엔 31종(41%)이 출현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남부 지역의 아열대 어종 출현율이 높다. 제주의 남쪽과 북쪽은 수온이 2℃ 차이가 난다. 제주 남부 지역엔 12종, 가파도엔 11종, 동부 10종, 서부 9종, 북부 7종이 등장했다. 2013년 가장 많은 아열대 어종이 출현했던 이유는 겨울철 수온이 상승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있다. 고 박사는 “이 해에 유달리 출현이 많았던 것은 동계 수온이 상승해 아열대 어종이 다른 해역으로 이동하지 않고 제주 연안에 서식했다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수산연구소에 따르면 2013년 겨울철(1~3월) 수온은 15.1℃까지 올랐다. 겨울철 수온이 15℃까지 상승한 해는 손에 꼽을 수 있다. 2005년, 2007년을 제외하곤 없었다. 고 박사는 “2010년~2011년은 혹한기였고, 2014년에는 14.2℃로 떨어지며 아열대 어종의 출현율이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40~50%를 유지, 제주 바다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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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바리 , 청줄돔 , 세동가리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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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65종 출현…

터 잡는 아열대 어종



제주 바닷속이 알록달록해졌다. 노란 바탕에 눈 부시게 빛나는 파란 줄을 가진 ‘청줄돔’을 만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붉고 푸른 총천연색의 산호들은 스쿠버다이버를 유혹한다.

뜨거워진 제주 바다엔 아열대 어종이 눌러 앉았다. 이동하지 않고 제주에 사는 ‘서식종’이 있는가 하면, 북쪽에서 살다 겨울엔 남쪽으로 ‘이동하는 종’도 있고, 왔다 가는 ‘기회종’도 있다.

현재까지 제주 해역에 등장한 아열대 어종은 총 65종이다. 대마도, 오키나와, 일본, 남중국해에서 사는 어종이 쿠로시마 난류와 대마 난류를 따라 제주 연안에 나타날 경우 ‘아열대 어종’이라고 부른다.

가장 많이 보이는 어종은 황놀래기다. 그 뒤로 주걱치, 청줄돔, 아홉동가리, 독가시치, 가시복, 거북복 등이 제주 바다 속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고 박사는 “이 어종들의 경우 예전엔 남쪽 지방에서만 한정적으로 잡혔는데 이젠 제주 전역에서 일 년 내내 잡히고 있다”고 말했다. 황붉돔과 독성을 가진 넓은띠큰바다뱀, 파란고리문어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식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온이 가장 중요하다. 수온이 뒷받침돼야 먹이를 먹고 번식을 하기 때문이다. 제주수산연구소에 따르면 겨울철 수온이 15℃ 가까이 유지돼야 산란을 통해 개체수를 늘릴 수 있다. 한반도 해역의 수온 상승으로 제주에서 잡히던 아열대 어종은 울릉도와 독도로도 이동하고 있다. 자리돔 파랑돔 청줄돔 등이 동해까지 올라갔다.

아열대 어종은 보통 교란종(외래종)으로 분류한다. 여러가지로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그 중 분홍멍게는 골치 아픈 종이다. 해녀들이 작업하는 공간을 점유, 다른 해초가 자라지 못 하게 하기 때문이다. 거품돌산호와 그물코돌산호 역시 소라와 해조류의 서식을 방해한다. 심지어 번식력이 상당하다. 수온이 상승하는 5월부터 8월까지 최대 성장을 한 뒤 수온이 조금씩 떨어지면 성장이 감소한다. 연평균 4㎝ 이상 성장한다.

아열대 어종의 증가로 제주 바다는 역설적으로 다양성을 확보했다. 다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고 박사는 “현재까지 아열대 어종의 먹이에 대한 연구가 없다”며 “해로운 어종들이 유입돼 토착어류의 먹이사슬에 영향을 주면 기존 어종들은 먹을 게 없어지게 된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날 때 종의 다양성에 변화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주=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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