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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레진코믹스 작가들은 왜 1인 시위에 나섰나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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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기자들]레진코믹스 사태 총정리

블랙리스트·수익 미정산 등 작가들 불만 누적…청와대 청원까지

“불공정 대우 항의하면 프로모션 배제…‘200도 못 채우는 작가’ 비난도”

레진코믹스, 간담회 열고 “작가 커뮤니케이션팀 신설할 것”

웹툰 업계 “플랫폼과 작가는 파트너십 관계…불공정 조항 개선돼야”


한겨레

ㄴ작가는 “계약서에 관련 조항이 없는데 회사는 공지메일이 계약서와 같은 효력을 지닌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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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서울 논현동 파티오나인 건물 앞. 웹툰·웹소설 작가들 수십명이 3시간 여 동안 1인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레진코믹스의 ‘블랙리스트’ 논란에 항의하는 시위였습니다. 건물 안에서는 유료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의 ‘제1차 정기 작가간담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앞서 11일에도 ‘레진 불공정행위 피해작가연대’ 소속 작가들은 레진코믹스 본사 앞에서 회사로부터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레진코믹스는 2015년 계약서 독소조항 논란, 지난해 ‘지각비’ 논란 등이 일었던 회사기도 합니다. 왜 작가들과 레진코믹스의 갈등이 계속 발생하는 걸까요. ‘더(the) 친절한 기자들’에서 시위에 나선 작가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18일에는 레진코믹스의 2번째 작가간담회가 열립니다. 작가들은 이날도 시위에 나섭니다.

■ “항의한 작가의 작품 노출 않는다” 블랙리스트 논란

먼저 ‘블랙리스트’ 논란입니다. 레진코믹스 작가들은 불공정 문제가 발생했을 때, 레진코믹스에 문제를 제기하면 작품 노출에서 철저히 배제됐다고 말합니다. 누리집 첫 화면에 노출되거나 프로모션 이벤트에 참여하는 작품은 전적으로 레진코믹스가 결정합니다. 첫 화면에 노출될수록, 프로모션에 포함될수록 독자가 늘어나고 이는 작가의 수익으로 직결됩니다. 그런데 이 결정권이 회사에 있다보니 결국 작가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인다고 작가들은 이야기합니다. 웹툰 작가 ㄱ씨는 “프로모션 이벤트에 포함되면 수익이 2배에서 많게는 4~5배까지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습니다.

웹툰 <양극의 소년>을 그린 은송 작가는 ”SNS에 웹툰 작가의 환경 개선에 대한 글을 작성한 뒤 모든 프로모션 이벤트에서 누락됐다”고 밝혔습니다. <340일간의 유예>를 그린 미치 작가는 ”회사의 일방적인 건강검진 조건 변경 등에 대해 항의하자 이후 이벤트에서 제외됐다”고 했습니다. 수익도 4분의 1로 줄었다고 합니다. (▶참고 기사 : “레진코믹스 ‘블랙리스트’ 은송입니다.” , ”안녕하세요. 미치입니다.”)

두 작가의 ‘심증’은 지난 11일 SBS의 보도 ‘[단독] "레진코믹스, 작가 항의하면 블랙리스트로 관리"…증거 입수’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회사 내부 이메일에 두 작가와 작품을 언급하며 “(메인 화면에) 노출하지 않는다. 레진님(대표)이 별도로 지시하신 사항”이라고 명시된 내용이 공개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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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레진코믹스 간담회가 열린 파티오나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웹툰 작가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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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적인 ‘블랙리스트’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비슷한 사례를 겪은 작가들은 더 있습니다. 순위·매출이 최상위권인 작품인데도 명확한 기준 없이 불이익을 받았다는 주장입니다.



“제가 연재하던 작품은 전체 1∼2위를 차지하는 등 최상위권이었습니다. 매출도 수천만원 단위였죠. 연재가 끝나고 다른 회사에서 새 작품 제안이 들어왔는데, 레진코믹스에 연재했던 캐릭터를 또 사용하고 싶었어요. 계약서에 관련 조항이 없어서 회사에 물어봤더니 제목과 내용이 다르면, 캐릭터가 같은 건 상관없다고 하더라고요. 담당 PD와 유관 부서로부터 거듭 확인을 받았어요. 그런데 막상 다른 회사에서 연재가 시작되니까 다음날 PD가 ‘계약 조항을 위반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조항이 없다고 반박했더니 ‘문제 없다’고 다시 말씀하셔서 논의가 끝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다음날 제 작품이 ‘연재’에서 ‘완결’ 코너로 이동돼 있더라고요. 보통 인기 작품은 완결된 지 1년이 넘어도 ‘연재’ 코너에 남아있어요. 독자들이 ‘완결’ 보단 ‘연재’ 코너를 많이 보니까요. 심지어 지난해 가장 매출이 높은 작품인데도 베스트셀러나 추천작에도 포함되지 않았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이벤트에 포함됐던 것도 사라졌고요. 화면 노출, 이벤트 작품 선정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있냐고 물었는데 ‘알려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오더라고요.

-이아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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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루 작가와 담당PD가 모바일 메신저로 주고받은 대화. 이아루 작가는 “회사 쪽에서 괜찮다고 확인을 받은 뒤 새 작품을 연재했는데 그 이후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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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약서에 없는 ‘지각비’ 차감

계약서에 ‘지각비’(지체상금) 조항이 없는 작가에게도 지각비를 월급에서 차감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지난해 9월 논란이 불거졌던 ‘지각비’는 웹툰 작가가 ‘마감 이틀 전 오후 3시’까지 원고를 내지 않을 경우 월 전체 수익의 최대 9%까지 회사가 가져가는 계약 조항입니다. 당시 한국웹툰작가협회는 “이미 원고료 협상과 재계약에서 성실도를 평가받고 협상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매달 지불하는 지각비는 업체의 이중규제”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결국 레진코믹스는 2월부터 해당 조항을 폐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관련 기사 : 웹툰작가협회 “지각비 과도” vs 레진코믹스 “플랫폼 신뢰 문제”)

그런데 문제는 계약 조항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만화가 에이전시를 통해 레진코믹스와 계약한 작가 ㄴ씨는 “레진코믹스 쪽이 계약서에 명시되지도 않은 지각비를 임의로 걷어갔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 : ‘지각비 사례’ 모음)



“지각비 조항이 계약서에 없는데 원고를 늦게 내니까 월급이 깎여서 들어온 거예요.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갱신된 계약서에 (지각비 조항이) 포함이 됐다고 했어요. 갱신된 계약서를 (서면으로) 받지 못했다고 하니까 ‘따로 계약서는 없고 지각비를 공지한 전체 메일이 계약의 효력을 갖고 있다’고 레진코믹스 쪽이 답하더라고요. 결국 변호사 상담까지 받았더니 ‘명백한 불법’이라고 했어요. 불법으로 돈을 걷어갔으니, 돌려받고 싶어요.”

-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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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진 불공정행위 피해작가연대’소속 작가와 독자 등 100여명이 11일 오후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의 논현동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어 블랙리스트 의혹 등에 대해 해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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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당 직원들의 업무 불성실과 불통 문제

작가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해당 작가의 작품을 이용해 광고나 프로모션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의 ‘불통’ 문제도 제기됐습니다.



“(작품과 관련된) 프로모션이나 광고를 진행할 때 작가들에게 미리 공지를 하지 않아요. 이러한 조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회사는 마치) 작가가 잘못된 것처럼 이야기해요. 제 작품이 지하철 광고에 동의도 없이 진행이 됐어요. ‘왜 고지를 해주지 않았느냐’ 물으니 담당 PD가 ‘나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은송 작가

레진코믹스가 항의하는 작가들과 다른 작가들의 편을 가르는 방식으로 대처해온 점도 지적합니다.



“한 PD가 전체 작가들에게 이런 메일을 보냈어요. ‘SNS로 공론화해서 그나마 작가님들의 권익이 보호되었다고 이해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 그 일은 철없는 행동입니다’라고요. 항의한 작가들과 아닌 작가들을 이간질 시키는 거예요.”

-미치 작가

작가들은 담당 PD 등 편집부의 업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고도 입을 모았습니다. 보통 웹툰 PD는 담당 작가의 작품을 미리 받아서 검수를 하고, 작품 방향에 대해 논의나 조언도 합니다. 출판사의 편집자 역할과 비슷한 셈이죠. 그런데 오타 검수 및 수정, 만화 업로드, 배너 및 제목 제작 등 작품 지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미치 작가는 “지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업로드) 3주 전에 미리 원고를 보내는데 오타 검수도 안한다. 해당 회차가 공개되고 나서야 독자가 발견하는 식”이라며 “(편집부에게) 수정을 해달라고 하면 수정도 늦게 되고 피드백도 없다”고 했습니다.

회사 쪽이 수정된 원고를 엉뚱한 회차에 올리는 바람에 피해를 봤다는 사례도 나왔습니다.



수정 원고를 해당 회차가 아닌 다른 회차에 올려 문제가 된 적도 있어요. 사 쪽에선 보상해 주겠다면서 프로모션 이벤트에 포함시켜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애초에 저희 작품은 프로모션에 포함될 예정이었는데 그게 왜 보상수단이 되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럼에도 회사와의 관계를 생각해 승낙했죠. 그런데 처음엔 20일 간 진행된다던 이벤트를 3일로 줄이더라고요. 항의하니까 ‘이런 작가님의 반응이 바람직한 파트너십의 결과인지 의문을 품게 합니다’라고 말하더라고요. 화가 나서 이벤트를 거절했죠. 작가들이 조금만 늦어도 지각비는 3∼9%씩 걷어가는데, 회사의 실수로 운영 오류가 있을 땐 아무런 보상도 없어요. 회사 쪽 실수는 어떻게 보상할 건지 계약서에 명시해달라고 요구하자 (다른 작가분들처럼) 화면 노출·이벤트 포함 횟수가 확연히 줄었어요. 저희도 아마 ‘블랙리스트’일 거라고 확신해요.”

-ㄷ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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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작가가 수익 미정산 관련 담당자와 주고받은 대화 내용


■ 웹소설 서비스 강제 종료

레진코믹스는 웹툰 뿐만 아니라 웹소설도 연재했습니다. 그런데 레진코믹스가 사전 공지 없이 지난해 8월 24일 갑작스럽게 ‘웹소설’ 연재 서비스를 중단해 피해를 본 작가들도 있습니다.



“저희가 서비스 종료 사실을 처음 들은 날짜가 8월 18일이예요. (갑작스러운 종료가) 말이 안 되는게 불과 두달 전인 6월에 2700만원 규모의 웹소설 공모전 당선작을 발표했어요. 보통 당선작을 해당 플랫폼에서만 연재하게 돼 있는데, 그 당선작 중 어떤 것도 연재가 시작되지 않았는데 서비스가 종료된 거예요. (그 작품을) 다른 플랫폼에서 연재할 수도 없고요. 7∼8월에만 30개가 넘는 신작이 나왔고, 심지어 종료 공지 하루 전날에도 새 연재가 시작됐어요. 그 작품이 하나도 완결이 안 된 채 서비스가 종료됐죠. ‘누적 적자’를 이유로 들었지만 적자 폭이나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요. 웹소설 종료 공지도 제대로 안 됐어요. 독자 입장에서도 황당했겠죠. 작품이 미완결이 될 줄도 모르고 유료 결재를 하면서 작품을 보신 분들도 계시니까요. 웹소설 피해작가 규모도 100명이 넘어요. 웹소설로 생계를 유지하는 분들은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셈이죠.

-비담 작가



한겨레

작가들의 매출에까지 영향을 준다. 최근에는 프로모션 작품 위주로 소수의 작품만 노출하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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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외 연재 수익 미정산

레진코믹스로부터 국외 연재분 수익을 받지 못하다가 수십차례 항의하고 2년이 지난 뒤에야 정산받은 작가도 있습니다. (▶참고 : “저는 레진코믹스에 2년만에 돈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8월 국외 연재 수익을 미정산 받은 걸 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회사는) 처음엔 ‘국외 유통사에서 돈을 안 줘서 못 주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런데 유통사 쪽에 알아보니 (유통사에선) 매달 돈을 꼬박꼬박 보냈고 그 내역서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3년 동안 국외 연재를 했는데,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딱 한 번만 수익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계속 미뤘어요. 제가 정산내역서를 몇십번이고 요청하고, 전화하고, 직접 찾아가고 나서야 2년 동안 밀린 걸 주더라고요. 프로모션에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이벤트에 포함됐단 이유로 (계약보다 적은) 10%대 수익만 지급하기도 했어요. 저같은 피해자도 10명 넘는 걸로 알고 있어요.”

-회색 작가



업계 최저 대우·불공정 조항

계약서 상에 불공정한 조항이 많다는 지적도 계속됩니다. 먼저 업계 최저 수준인 작가 대우입니다. 레진코믹스는 회사가 70%, 작가 30% 비율로 수익을 나눠 가집니다. 대신 매달 최소 200만원의 수익을 보장해준다는 ‘미니멈 개런티’(MG) 제도를 실시합니다. 하지만 작가들은 “노동에 대한 값을 아예 주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MG제도는) 회사원으로 치면 기본급이 없고, 인센티브만 주는 거죠.”

최저 200만원을 보장해주겠다고 하지만, 작가가 150만원의 수익을 내면 나머지 50만원을 회사가 채워주면서 ‘넌 200도 못 채우는 작가’라고 비난을 해요. 대외적으로는 ‘200만원 보장하는 웹툰 플랫폼’으로 홍보를 하면서요.”

“노동에 대한 값을 아예 주지 않는 거나 다름없어요. 나는 원고를 내는데 원고비는 주지 않고, 그 원고를 (자신들이) 팔아 나오는 수익을 7(회사) 대 3(작가)로 나누는거죠. 원고를 아예 레진코믹스에 독점제작을 해서 넘겨주는 건데도요.”





“네이버와 다음에 연재하는 작가들은 기본 고료를 받는다. 여기에 독자들이 돈을 내고 미리보기나 다시보기를 하면 그 수익의 일부가 작가들에게 추가로 돌아간다. 레진의 미니멈 개런티는 작가마다 책정한 기본급에다 유료로 팔린 수익금까지 합친 돈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미니멈 개런티 200만원의 뜻은 어떤 작가가 기본급이 140만원이라고 치고 독자들이 그 작가의 유료만화는 보지 않아서 추가 수익이 전혀 없다면 레진에서 60만원을 보태겠다는 뜻이다.”

“만화가들은 ‘작가에게 기본 원고료는 연재를 이어갈 수 있는 노동의 대가, 곧 기본급이고, 유료만화로 나온 수익금은 성과급이다. 두가지를 분리해야 작가가 창작자로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겨레> 2015년 8월 9일치 ‘[한겨레 프리즘] ‘생계비 보장’을 넘어서 / 남은주’

연재 계약시 국외 판권, 2차 저작권을 레진코믹스 쪽에 무조건 넘겨야 하는 조항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015년 해당 조항이 ‘불공정 계약’이라며 논란이 되자 레진코믹스는 “연재와 저작권은 분리해 별도 계약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슬그머니 이 관행이 부활했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작가들이 한 번 항의를 했으니 대놓고 (예전처럼) 계약서에 명시하진 못하지만, ‘국외 판권 계약을 같이 하지 않으면 MG를 깎겠다’는 말을 들은 작가가 있어요. 계약 내용이 부당하다고 느껴도 작가는 중간에 계약 해지를 못하게 돼 있어요.”

-미치 작가

명확한 기준 없이 회사의 일방적인 통보로 작품을 수정해야 했다는 항의도 나왔습니다.



“레진코믹스 공모전에서 수상해 연재를 하게 됐는데 계약서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않으면 회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어요. ‘소기의 목적’이 무엇인지 물었는데 정확하게 설명해주지 않고 ‘작품이 잘 되면 상관없는 일’이라고만 답하더라고요. 그런데 작품을 연재한 지 3개월도 채 안 돼 ‘30화 이내로 웹툰을 마무리해달라’라는 통보를 받았어요. 원래 짜놓았던 스토리를 다시 갈아 엎어야했죠.”

-ㄹ작가



한겨레

레진코믹스 누리집 첫 화면 변경 전(위)과 후. 작가들은 “회사 쪽이 어떤 작품을 첫 화면에 노출할 지 전권을 가지고 있고


■‘레진코믹스’ 세무 조사 청원도 올라와…8만명 서명

지난해 12월 7일, 청와대 누리집에 레진코믹스 세무조사 청원이 올라온 것도 이러한 작가들의 불만이 누적된 결과로 보입니다. (▶참고 :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에 대한 세무조사를 부탁드립니다.)

8만여명이 서명한 이 청원글은 레진코믹스가 ‘작가를 위한 작가주의 플랫폼’을 표방하며 정부 지원을 받고 탄생한 곳인데도 불공정한 대우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좋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콘텐츠를 직접 만들고 생산하는 작가들의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 창작자가 기업으로부터 정당한 창작의 대가를 받고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부당하게 잃지 않도록 엄정한 눈으로 감시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 레진코믹스 “블랙리스트 운영한 적 없다”

레진코믹스는 “SBS 뉴스에 보도된 메일은 레진의 것이 맞다”면서도 “불합리한 이유나 사적관계에 따라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운영한 적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은송, 미치 작가가 SNS에서 회사와 관련된 왜곡된 내용을 유포해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했으며, 이에 따라 두 작가와의 계약 해지를 검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레진코믹스는 “이러한 사정으로 두 작가의 작품에 대한 프로모션 진행은 곤란한 상황이었다”며 “해당 내용을 전달하면서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태에서 실무자가 적절하지 못한 단어를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회사의 업로드 실수, 정산 오류 등 귀책사유가 있는 건에 대해서는 이에 합당한 보상을 진행할 것”이라며 “과거 커뮤니케이션 경로가 일원화되지 않아 제도 운영에 미숙함이 있었다”고도 밝혔습니다. 계약, 정산, 운영 등을 전담하는 작가 커뮤니케이션 부서도 신설할 계획입니다. 지각비, 마감 방식, MG 계산방식 등 계약 조항 변경, 작품 프로모션 선정기준과 개선방안 등에 대해선 작가 간담회에서 충분한 설명이 끝난 뒤 공개하겠다는 입장입니다.

■ 작가들 “벽보고 대화한 기분…간담회 모욕적”

작가들은 레진코믹스 대표가 직접 해명하고 사과할 것, 계약서의 불공정 조항을 수정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차 간담회에 참석한 은송 작가는 “‘레진 불공정행위 피해작가 연대’ 작가들이 질답시간에 아무리 손을 들어도 발언권을 주지 않았다”며 “간담회가 너무 모욕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은송 작가는 “프로모션 선정 알고리즘에 대해 묻자 결제율·조회수 뿐만 아닌 다른 지표가 있다고 했지만, 실제 프로모션 담당자는 ‘솔직히 무슨 작품을 (프로모션에) 넣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프로모션은 (작가들에게) 수혜를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배제된 두 작가에게) 피해를 준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회사 쪽은) 말했다”고도 전했습니다. 또 다른 작가는 “너무 벽보고 대화한 기분이다. 무력감을 느낀다”고 토로했습니다.

■“독소조항 삭제…웹툰 표준계약서 공론장 마련돼야”

<웹툰의 시대>, <젊은 만화가에게 묻다> 등을 펴낸 위근우 작가는 레진코믹스 사태와 관련 “그동안 작가들과의 소통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최저 수익을 보장해준다’고 언론에 ‘미담’처럼 포장해온 부분 등이 누적돼와 작가들의 신뢰가 많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MG 제도 자체가 불합리하다기보단 작가의 노동에 대한 기본 수익을 마치 회사의 배려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이번 사안은 소통 여부를 떠나 명백한 위법사항”이라며 “연재 계약과 국외 판권을 반드시 분리하는 것, 비밀유지 조항을 강제하지 않는 것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한국만화가협회 소속 한 만화계 인사는 “레진코믹스가 유독 비정상적인 사례가 많았다. 회사 쪽에서 경영상 책임을 져야 할 부분과 작가가 책임질 부분을 구분하지 못하고 작가 수익을 줄이는 방법으로 리스크를 상쇄하려했던 것”이라며 “작가와 독자들에 대한 신뢰회복이 필요하다. 이번 사례를 토대로 업계 표준계약서를 만들기 위한 공론장이 마련돼야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6~7월까지 유료 웹툰 플랫폼에도 적용될 수 있는 웹툰 표준계약서 개정에 나섭니다. 다음 달부터 연재 계약시 발생한 불공정 사례 조사도 시작합니다. 한국웹툰작가협회는 지난해 지각비 논란 당시 “작가는 작품을 제공하는 개인창작자(개인사업자)로서, 플랫폼은 작품을 게재하는 법인사업자로서 상호 파트너십의 관계”라고 한 바 있습니다. ‘갑’과 ‘을’이 아닌, 서로를 ‘파트너’로 바라보는 것, 과연 이번 레진코믹스 사태가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까요.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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