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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워라밸X2018] ③ 평범한 대한민국 5인의 하루, 워라밸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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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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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 워라밸. 요즘 그야말로 광풍에 휩싸인 용어다. 일과 삶의 균형이란 뜻을 가진 이 용어는 최근 ‘과로 사회’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도모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바람을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다. 아직 먼 나라 이야기 같다는 이들도 있지만 워라밸이 2018년 키워드로 등장하기 전부터 변화의 조짐은 곳곳에서 시작됐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 설문조사에서 70.2%가 ‘높은 연봉과 저녁이 있는 삶’ 중 저녁이 있는 삶을 택하기도 했다. 높은 연봉이 아니더라도 저녁이 있는 삶이 드물었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현재를 넘어 미래는 어떨지 진단해봤다.-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최근 보도된 핀란드의 유연 근로제에 대한 기사에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huzi**** 하..정말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네” “blan**** 급여가 줄어들지만 행복하게 유연근무를 선택했군요... 조그만 한국만 못 하지... 전세계 미주, 유럽, 중국도 여성 경력단절없이 육아휴직 받고 다시 복귀도 잘만 함” “jinu****헬조선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이런 댓글들에 공감을 표한 이들만도 몇 천명에 달한다.

그들에게 이런 질문도 하고 싶다. ‘현재의 우리는 워라밸을 이룰 수 있을까?’ 2018년 트렌드 키워드로 꼽힌 워라밸은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식에 변화를 원한다는 대중의 바람이 반영돼 있다. 누구나 자신의 시간을 갖길 원하며 가족과 저녁을 함께 하는 삶을 꿈꾼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를 실행해갈 수 있을지에는 의문부호가 뒤따른다. 그래서 각계 각층, 다양한 직업군에서 활동 중인 5명의 하루 일상을 들여다봤다. 특별히 고르고 고른 대상자들이 아니다. 앞집, 옆집, 동료, 지인들에게 물었더니 솔직하게 자신의 일상을 알려왔다. 이들의 답변은 핫 키워드로 떠오른 국내 워라밸의 현주소이자 워라밸 열풍 속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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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J씨가 공개한 책상 자리와 차량 누적 킬로수. 바쁜 일상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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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면 뭐하나요 ‘영업은 365일 달린다’


영어강의전문기업 이사 J(남·44)씨 : 1년이 바쁘다. 지속적으로 거래처를 확보해야 하고 관리해야 한다. 틈틈이 회사 강의를 채택해준 관계자들을 만나 관리도 해야 한다. 자칫하면 확보해 둔 거래들마저 잃을 수 있다.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는 시간은 새벽 5시다. 평직원들보다 일찍 회사에 도착해 회의 자료와 하루 일과를 정리해야 한다. 직원들이 출근하고 나면 회의가 이어지고 업무지시가 끝나면 점심시간이다. 그나마 모바일 게임이라도 한판 해서 점심값을 몰아주는 점심시간은 힐링에 가깝다. 오후는 출장이나 거래처 방문으로 채워진다. 전국에 우리 회사 강의가 이어지고 있기에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지방 출장을 가야 한다. 하루에 들러야 할 출장지가 여러 곳일 때도 많아 직접 운전해 다닌다. 얼마 전 중고차 매매상이 내 차 누적 킬로 수를 보고 기함하기도 했다. 출장을 가지 않으면 업무 미팅이 이어진다. 우리의 거래처가 되는 학교나 학원 관계자들의 강의 일정으로 인해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들쭉날쭉인 탓이다. 신학기가 시작되는 겨울은 최대 성수기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주말도 없을 때가 많다. 하지만 주말 하루 정도는 아이와 함께 하기 위해 시간을 내려 노력한다. 평일 저녁을 함께 하지 못하는 날이 많은 만큼 주말 하루는 많은 체험을 시켜주려 한다. 가장 최근의 주말엔 산천어 축제를 다녀왔다. 아이는 썰매를 타서 행복해했고, 나는 해보고 싶었던 산천어 낚시를 해봤다. 나의 워라밸은 1주일 단위, 아직 6: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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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J씨가 제공한 공부방 학생들 교재(위)와 공부방 전경(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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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과 육아 병행은 하드코어, 나의 워라밸은 일시정지 중

공부방 원장 J(여·35)씨 : 결혼 후 학원 강의를 그만뒀지만 첫 아이가 돌이 지나니 내 일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사는 집 거실과 방 하나를 공부방으로 만들고 아파트 단지 내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수업준비와 청소를 마치고 나면 오후 2시쯤부터 학생들이 물밀 듯 들어온다. 미취학 아동인 내 아이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유치원 종일반을 거쳐 태권도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온다. 서둘러 아이 밥을 챙기고 아이를 돌보다 하루를 마감했지만 요즘은 그 때가 그립다. 둘째를 낳았고 학생들이 늘어서다. 학생들 방학인 탓에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8시까지 수업 릴레이가 계속된다. 수업이 끝난 밤에는 육아가 이어진다. 아직 어린 첫째와 신생아인 둘째를 돌보다 보면 날이 밝는다. 당분간 잠은 포기했다. 이게 내 하루 일과다. 하지만 일주일로 보면 월화 목금 주 4일 일한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병원, 은행 등 개인적 일을 보기 위해 수요일을 비웠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는 어릴 적 배우다 말았던 수묵화를 다시 배웠더랬다. 아이가 어리기에 잠시 손을 놓은 상태. 나의 워라밸은 잠시 일시정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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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씨가 제공한 자신의 책상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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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 하루 ‘만나고 쓰고 마시고’

일간지 정치부 기자 P(남·37)씨 : 하루는 일찌감치 시작된다. 규정상 출근시간은 9시이지만 아침 8시 출근해 하루 취재할 주제와 세상에 내놓을 기사 목록을 작성한다. 메신저 회의로 간략하게 이를 보고한 뒤 국회 의원회관을 돌기 위해 나선다. 담당하는 정당 의원들과 보좌관들을 만나 동향을 살피고 질문을 쏟아낸다. 간혹 의원이나 보좌관들의 열띤 홍보나 하소연도 함께다. 오전에 마신 커피만 족히 5잔. 지속적으로 얼굴을 들이밀어야 한다. 그래야 정보 하나라도 더 듣고 단독 거리라도 하나 더 찾을 수 있다. 점심 식사 자리도 취재를 해야 할 사람과 만나는 시간으로 대체될 때가 많다. 맞벌이인 탓에 아내가 야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칼퇴’ 미션에 성공해 아이를 돌봐야 하기에 최대한 낮시간 안에 취재에 필요한 이들을 만나려 노력해야 한다. 오후 2시부터 본격적인 기사 작성을 시작한다. 내일 지면을 채울 기사들을 쓰고 나면 대략 6~7시. 이대로 집에 가면 저녁을 먹고 아이를 씻기고 함께 책을 읽으며 재울 수 있지만 일주일에 최소 2번은 술자리다. 일주일 내내 술자리가 있는 날도 태반이다. 술을 안 마시고도 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다양한 인간군상에 발을 걸쳐둬야 하는 건 기자의 숙명이다. 하지만 금요일 토요일이 휴일인 점은 좋다. 일간지 특성상 월요일자 신문을 위해 일요일에 일하지만 이점도 있다. 금요일은 아내가 일을 하고 아이는 유치원에 가기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직이나 급한 사안이 생기지 않는 한 금요일엔 개인적인 일을 볼 수 있고 운동을 하는 시간이 확보되는 셈이다. 토요일은 가족과 함께 한다. 먼 곳은 아니더라도 가까운 곳에서라도 가족끼리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려 노력한다. 워라밸? 수치로 매기자면 70대 30 정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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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K씨는 회사가 혹시 알 수도 있다며 공개를 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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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주 바쁘지 않은 평범한 직장인” 그 하루는?

제조업 영업직 대리 K(남·35)씨 : 아침 6시 30분 기상해 8시까지 출근한다. 회의를 1시간 정도 하고 나면 9시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영업직이지만 서류작성과 제안서, 전산업무가 많아 오전 시간에 서둘러 처리를 해야 한다. 바쁜 오전을 보내야 하기에 12시 반부터 1시간 동안 점심 시간을 가진다. 오후는 외부 미팅 스케줄이 이어진다. 우리 회사 제품 수요처나 대리점 미팅들이 줄지어 있다. 일부 영업직은 현장 퇴근도 있다고 하더라. 우리 회사는 아니다. 5시에는 본사로 복귀를 시작해야 한다. 퇴근 무렵이라 교통 체증에 지칠 때쯤인 오후 6시 반은 이미 우리 회사 정 퇴근시간인 6시를 넘긴 후다. 하지만 업무는 계속된다. 도착하자마자 외부미팅에 대한 보고를 하고 오전에 미처 끝내지 못한 내근 업무를 마무리지어야 한다. 이 일이 대충 마무리되면 8시에 퇴근이지만 팀장 및 임원들 회의나 미팅이 잡히면 밤중 회의가 이어진다. 빠르면 9시, 늦으면 새벽 2~3시가 귀가 시간이다. 일주일에 정시 퇴근은 잘해야 한두 번. 너무 바쁜 거 아니냐고? ‘아주 바쁘지 않은 평범한 직장인의 하루’라 말하고 싶다. 지치는 하루의 반복이지만 그나마 회사 분위기가 가족적인 편이라 회사에서 직원들끼리 편안해서 다른 회사보다 나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주말에도 거래처에 가야 할 일이 종종 있지만 거래처 인근의 맛집이나 갈 만한 곳을 찾아보고 아내와 데이트 겸 가고는 한다. 내가 두 세 시간 업무를 볼 동안 아내는 책을 읽거나 쇼핑을 할 수 있다. 평소 가지 않던 곳에서 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이틀을 전부 쉴 땐 되도록 여행을 가려고 한다. 최근 몇 주는 가까운 춘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스키장을 갔다. 가족과 밤낚시를 가기도 했다. 평일 저녁에 뭔가를 할 수는 없지만 주말을 활용해 하고 싶은 것들을 즐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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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씨가 제공한 여행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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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먹으면 된다” 쪼개서 즐기는 나만의 시간

중소기업 총무과장 M(여·42)씨 :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9시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처리해야 할 목록이 많지만 직원 수가 많지는 않은 까닭에 정산을 하는 때가 제일 바쁘다. 업무 특성상 세세하게 말할 순 없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야근을 한다. 월말이나 연말이 되면 일주일 풀로 야근을 할 때도 있지만 평소 야근이 없는 날이면 6시 반 퇴근이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수영을 한다. 주말 근무는 없다. 최근에는 사진 동호회에 들었다. 나날이 늘어나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공통된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학 때도 사진에 관심이 많았지만 뭐가 그리 바빴는지 취미 하나 챙길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일이 궤도에 들어서고 내 시간에 투자하자고 마음먹으니 되더라. 회사에 너무 몰두한다고 해서 내 인생이 보상받는 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나니 나를 최우선으로 여길 수 있게 됐다. 책도 그렇다. 원래 책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하루 중 책 읽을 시간을 일정으로 잡았더니 더 많은 책을 읽게 됐다. 같은 방식으로 1년 목표 중 해외든 국내든 여행은 ‘무조건 1회’로 계획을 짰다. 3년째 실행 중이다. 미혼이라는 이점도 있지만 일과 삶의 균형은 대체적으로 맞추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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