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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초등학생이 "앙 기모띠"… 교실에 퍼진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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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서 자라난 여혐-①]'느금마', '맘충' 등 인터넷 통해 무분별하게 습득, 유행어처럼 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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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 기모띠."(気持ちいい: 기분 좋다는 뜻으로 일본 성인동영상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

서울 초등학교 여교사 김모씨(34)는 지난해 아이들에게 자습을 시켰다가 한 남학생의 이 같은 외침을 듣고 식겁했다. 포르노에나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 어디서 이런 말을 들었냐고 채근하자 남학생은 "저희끼리는 다들 쓰는 말"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김씨는 "나중에 알고 보니 인터넷에서 유명한 BJ(개인방송 진행자)가 쓰는 말이었다"며 "여학생들에게도 장난처럼 쓰더라"라고 말했다.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원 교사 이모씨(29)는 남학생들이 서로 싸우는 도중 "니 애미 창X"라는 욕을 내뱉는 것을 들었다. 이씨가 그런 못된 말을 왜 쓰느냐고 나무라자 남학생은 "친구가 열받게 해서 제일 심한 욕을 한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여성혐오적인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여성혐오'(여혐) 표현이 학생들 사이에서 무분별하게 확산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체성이 한창 형성될 청소년기에 자칫 그릇된 성(性)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는 것. 학생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방송·영상 등을 보고 그대로 따라해 '유행어'처럼 자리잡은 실정이다. 하지만 대다수 선생과 학부모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어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온다.

17일 머니투데이가 서울지역 초·중·고 학교·학원 교사들과 학부모, 학생들을 취재한 결과 여혐 표현은 일상화돼 있었다.

고등학교 교사 이모씨(34)는 쉬는 시간 한 남학생이 같은 반 여학생에게 "너도 김치녀(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 아니냐"라며 낄낄거리는 것을 들었다. 여학생이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이 멋있다고 이야기하자 비꼬듯이 얘기한 것이다. 이씨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쓰는 표현을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쓰고 있었다"며 "교사들 중에서도 '김치녀'라는 말을 학생들에게 들은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학부모 유모씨(39)는 최근 딸 아이가 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같은 반 남학생이 "느금마(상대방의 엄마를 비하하는 말)도 맘충(엄마를 뜻하는 맘(mom)에 벌레충(蟲)을 합친 말) 아냐?"라고 놀렸다는 것. 유씨는 "딸 아이가 무슨 뜻인지 잘 몰라서 차라리 다행이었다"며 "큰 상처를 받을 뻔했다. 어린 아이들이 그런 말을 쓰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 같은 표현들은 대다수 인터넷방송이나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성인 동영상 등을 통해 습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여성 비하를 하려는 의도보다 유행어나 장난처럼 쓰이는 실정이다. 서울지역 중학생 최모군(15)은 "스마트폰을 통해 많이 접한다. 친구들끼리 장난처럼 쓰는 말들"이라며 "(평소에 쓰던 말들이) 그런 문제가 있는지 잘 몰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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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표현이 지속적으로 쓰일 경우 잘못된 가치관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아이들은 빠르면 유치원부터 포르노를 접한다고 한다. 스마트폰 각종 영상 등의 검열이 전혀 안되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성에 대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고민하거나 교육을 받기 전에 무분별하게 그런 문화를 접하면 왜곡된 성인식과 세계관을 형성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차별적인 표현을 하지 않도록 성평등 교육을 해야 하는데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교과 과정에 포함시키고, 학부모와 교사들까지 총체적으로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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