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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모든 바이러스 꼼짝 마"… 독감 '꿈의 백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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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국 질병관리센터(CDC)는 "이번 겨울 독감(인플루엔자) 백신 예방 효과는 10%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예년 평균이 45~50%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는 백신 효과를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올해 유행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예측에 실패한 것이 원인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달 들어 독감 사망자가 줄을 잇고 있다.

기존 백신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 제약계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바이러스 종류와 유전자 변이 여부와 관계없이 한 차례 접종만으로 모든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범용 백신(universal vaccine)' 개발에 뛰어든 것. 매년 새 백신을 개발할 필요가 없고, 신종 바이러스가 갑자기 출몰해도 대처가 가능한 기술이다.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르러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에 돌입한 백신도 있다. 수천 년간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고전하던 인류가 드디어 막강한 대항 무기를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다.

'꿈의 백신' 범용 백신 현실로

범용 백신 기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가장 상용화에 근접한 기술은 바이러스의 중심부에 있는 코어(core·핵심) 단백질을 공격하는 방식이다. 기존 백신은 단백질로 구성된 바이러스 표면의 돌기에 맞춘 형태의 항체가 생산되도록 한다. '열쇠-자물쇠' 조합처럼 돌기와 모양이 맞는 항체가 바이러스에 달라붙어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키는 원리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돌기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매년 새로운 백신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 변이가 일어나도 형태가 바뀌지 않는 코어 단백질을 직접 공격하는 방식이다.

영국 백신 개발 기업 백시텍은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로 코어 단백질을 공략하는 범용 백신을 개발해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진행했다. 백시텍은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진이 2010년 설립한 벤처 기업이다. 백시텍은 지난해 영국 성인 145명을 대상으로 한 첫 임상 시험에서 백신의 안전성을 확인했고, 올해 말부터는 백신의 효능을 구체적으로 검증하는 임상 두 번째 단계에 돌입한다. 백시텍은 지난 15일(현지 시각)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으로부터 2700만달러(약 290억원)를 투자받았다.

바이러스의 표면 돌기에서 형태 변화가 거의 없는 기둥 부분만을 공격하는 범용 백신도 개발되고 있다. 표면 돌기는 머리와 기둥으로 이뤄져 있는데 머리에 비해 기둥이 상대적으로 유전자 변이가 적다. 다시 말해 적군의 무기나 옷은 매번 바뀌지만 신발이 늘 같다면, 그 신발로 적군을 파악하고 그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도록 아군(항체)을 훈련하는 식이다. 미국 제약사 얀센과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는 최근 바이러스 돌기 단백질의 기둥 부분을 공격하는 백신을 만들어 동물실험에서 예방 효과를 확인했고, 올해 내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도 시작할 예정이다.

DNA(유전자) 백신도 주목받고 있다. DNA 백신은 여러 바이러스의 유전자 일부를 모방한 DNA 조합을 사람에 주사하면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항체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다른 백신과 달리 바이러스를 직접 넣지 않고 기능하지 않는 DNA만 넣기 때문에 일반 백신에 비해 훨씬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세운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과 삼성의 지원을 받은 미국 바이오 벤처 이노비오가 DNA 백신 개발의 선두주자이다.

암·메르스·말라리아 등에도 적용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개발 속도라면 2023년에는 범용 백신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범용 백신은 단순히 독감 예방에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 조류인플루엔자(AI)나 신종플루, 지카·메르스 등 예상치 못한 전염병이 갑자기 유행해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기존 방식은 환자로부터 바이러스를 추출해 배양한 다음 백신을 개발한 뒤 대량으로 생산하는데 이 과정에 최소 6개월이 걸린다. 반면 범용 백신은 개발 속도가 기존 백신에 비해 16배가량 빠르고, 대량 생산이 용이해 생산 비용은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김우주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상용화에만 성공하면 전 세계 보건의료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인준 기자(pe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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