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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새벽부터 관중석 채우라더니… 사진도 못 찍고 쫄쫄 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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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심 이용 MBC '아육대' 갑질 논란

"녹화 내내 아무것도 못하게 해"

일부 아이돌은 경기 중 다치기도

청와대 게시판엔 '폐지' 글 올라와

MBC 설 특집 간판 예능인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가 폐지 논란에 휩싸였다. 17일 오후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아이돌은 인권도 없느냐"며 프로그램 폐지를 청원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트위터에는 '아육대 폐지' 요구 계정까지 생겼다.

2010년 추석 특집으로 시작된 아육대는 아이돌이 나와 달리기, 양궁, 허들 등 격렬한 스포츠 경기를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첫 방송이 16.6%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작년 설에도 11.8%의 시청률이 나온 '명절 인기 예능'이다. 하지만 연예인들이 격한 스포츠 경기에 나서면서 부상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잦고, 아이돌을 따라다니는 청소년 팬들을 이용해 손쉽게 방송을 만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기획사들은 소속 연예인들이 다치거나 팬들이 고생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면서도 매주 음악 순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사 말을 들을 수밖에 없어 '갑(甲)질'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조선일보

지난해 1월 남자 아이돌들이 MBC ‘2017 아이돌 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에 참석해 달리기를 하는 장면. 2010년 처음 시작된 아육대는 출연자들의 부상이 잦은 데다가 청소년 팬들을 동원한다는 문제로 청와대 게시판에 폐지 청원까지 올라왔다. 아래 사진은 비닐 시트지로 만든 육상 트랙. 부상의 원인이 됐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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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 동원해 손쉽게 만드는 방송

지난 15일 경기도 고양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아육대 녹화장. 트와이스, 비투비, 레드벨벳 등 50여 개 아이돌 팀이 등장했다. 녹화장엔 3000여 명의 팬도 참가했다. 녹화는 오전 8시부터 시작됐지만 출입자 확인은 새벽 5시부터 이뤄져 일부 팬은 전날 밤을 꼬박 새웠다. 김주은(16)양은 "첫차를 타도 출입자 확인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전날 체육관 앞에 텐트를 치고 밤을 새웠다"고 했다. 중학생 유기은(14)양도 아육대 관람을 위해 길거리에서 2박 3일을 보냈다. 유양은 "녹화가 자정 넘어 끝났는데 막차가 끊겨 역 근처 카페에서 첫차가 다닐 때까지 기다렸다"고 했다. 팬들은 직접 준비한 빵이나 기획사에서 나눠 주는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다. 사진을 찍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카메라라도 꺼내면 바로 퇴장이었다. 박성준(22)씨는 "화면을 채울 방청객이 필요해 팬들을 불러놓고 아무것도 못하게 해 '감금'이라는 말까지 나왔다"며 "다른 프로그램 방청을 갔을 땐 물이나 간식을 나눠 줬는데 여기에선 아무것도 제공되지 않아 당황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행사에 초대되지 않은 일부 아이돌 그룹 팬 카페에선 '경축! 아육대 불참!' '출연할까 봐 마음 졸였는데 다행' 같은 댓글이 올라왔다.

"부상 걱정되지만 안 나갈 수 없어"

기획사들도 씁쓸해했다. 아육대는 경기 도중 부상 위험이 많은 '혹사 프로그램'으로 통한다. 종목 준비 기간만 한 달이 넘고 연습 과정에서 손목, 발목 통증을 호소하는 이가 많다. 이번 녹화에서도 보이그룹 '임팩트' 멤버 웅재가 에어로빅 경기 후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이송됐다. 소속사 관계자는 "녹화 당시 너무 무리를 했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부상은 끊이지 않았다. 2016년엔 '엑소' 멤버 시우민이 풋살 경기에서 무릎을 다쳤고, 2014년엔 AOA 설현이 컬링 연습 도중 다리를 다쳐 전치 6주 진단을 받았다.

이날 녹화에선 체육관에 계주 트랙을 만들기 위해 미끄러운 비닐 재질의 붉은색 시트지를 붙였다가 넘어지는 가수들이 속출하기도 했다. 걸그룹 '오마이걸' 미미가 계주를 하다 심하게 미끄러지는 장면을 찍은 영상이 트위터에 올라오기도 했다. 미미는 넘어진 직후 울음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사들로선 방송사에 잘못 보였다가는 음악방송 출연 기회를 잡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출연시킬 수밖에 없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MBC 예능국 차원에서 추진하는 프로그램에 어떻게 협조를 안 하겠느냐"고 말했다. MBC 측은 "부상 위험이 큰 허들이나 풋살 같은 종목은 다 없앴다"며 "안전성을 미리 검증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했다.

[이해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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