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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박사 없어도 다양한 경력 … 서른에 파슨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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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싱킹 전문가 임정기 교수

인권 운동·정치캠프·스타트업 거쳐

“시간 걸려도 가치 있는 목표 추구”

중앙일보

지난해 7월, 한국인 최초로 30대 초반에 파슨스디자인스쿨 교수로 임용된 임정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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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싱킹은 유행하는 경영 트렌드만은 아닙니다. 도시 정책을 만들고 비영리 단체를 꾸리는 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죠. 핵심은 경제적 이익이 아닌 인간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겁니다.”

87년생 임정기(사진)씨는 지난해 7월 서른 살에 미국 뉴욕의 파슨스디자인스쿨(이하 파슨스) 교수로 임용됐다. 종신 교수직이 아닌 4년 전임 교수직이다. 세계 3대 디자인학교로 꼽히는 파슨스엔 에린 조 교수 등이 몸담고 있지만, 이렇게 젊은 한국인 교수는 최초다.

그가 가르치는 분야는 디자인 싱킹이다. 공감·이타심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 융합적 사고방식을 일컫는다. 구글·애플·테슬라 등 세계 기업이 앞다투어 도입한 혁신적 방법론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몇 년간 내로라하는 경영대와 디자인 학교에서 디자인 싱킹 관련 학과를 양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전엔 기업이 단기간에 높은 경제적 이익을 내는 데 주력했다면 디자인 싱킹은 다르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친환경, 윤리 경영 같은 가치 있는 목표를 둔다. 임 교수는 “새로운 시대의 똑똑한 소비자들은 자기만의 가치관에 따라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밸류 컨슈머(value consumer)의 등장에 따라 기업의 경영 전략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 아웃 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공유 가치를 내세운 식품 기업 네슬레 등이 그 예다.

박사 학위 없이 교수가 된 그는 기술과 미디어·인문학의 통섭을 추구하는 ‘실전형’ 인재다. 열여섯에 홀로 미국에 유학, 고교 졸업 후 뉴욕대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엔 인권 운동에 관심이 많아 한 학기 동안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 정책을 배우는 시간도 가졌다.

졸업 후 한국 국적을 가진 그의 과제는 군 복무였다. 귀국해 공군을 전역한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뉴욕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바쁘게 살아온 20대 중 가장 힘들었던 건 이때였다. “뉴욕 사회와 군대는 언어부터 행동·사고방식까지 모두 달라 적응하기 쉽지 않았어요. 인턴 면접 땐 2년간 어디 있었냐는 질문도 받았습니다.” 그는 “미국에 온 후 매년 한두 번은 한국을 찾았는데, 당시 4년간 한 번도 못 올 만큼 바빴다”고 돌이켰다.

대학원에선 도시 정책을 역사·사회학·건축학·생태학 등 다각도로 접근하는 ‘도시 과학’(Urban Science)을 배웠다. 디자인 싱킹을 토대로 한 신생학과다. 하지만 학교에만 머물지 않았다. 2013년 뉴욕 시의회 인턴이 된 것을 계기로 시장 선거에 입후보한 크리스틴 퀸 캠프에 참여했다. 퀸은 2006년 뉴욕 시의회 의장이 된 레즈비언 정치인이다.

그 후엔 창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영상 제작에 필요한 어플리케이션 스타트업 ‘스텔라’를 만들었다. ‘스텔라’는 대본·스토리보드·예산서 작성 등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다루는 앱으로, 구글의 디자인 싱킹 관련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30 Weeks’에 선발되기도 했다.

그는 파슨스 교수가 된 건 “그간 시작해 온 수많은 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성공보단 실패가 많았어요. 하지만 내 삶과 세상은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달렸습니다. 지금 미국 뉴욕에선 디자인 싱킹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고 있어요. 언젠가 한국에 더 정교하게 발전된 디자인 싱킹을 알리고 싶습니다.”

글=김나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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