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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어설픈 남북 단일팀, 실리도 명분도 다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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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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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논란이 뜨겁다. 정부는 추진 의지를 재차 밝히고 있지만 여론은 냉랭하기만 하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면 우리 선수는 23명 그대로 출전한다. 이에 더해 북한 선수단의 출전 규모를 플러스 알파로 IOC와 협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세계 랭킹이 22위이고, 북한이 25위로 경기력이 비슷하다”며 “북한의 우수한 선수를 참가시키면 전력이 보강되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도 장관은 15일 국회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및 국제경기대회지원 특별위원회에도 참석해 “선수교체가 자주 이뤄지는 아이스하키 특성상 우리 선수들이 출전 못 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 장관은 아이스하키에 대해 나름 해박한 지식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도 장관은 현장에서 뛰는 선수나 감독이 아니다.

게다가 도 장관의 발언에는 빠진 부분이 있다. 평창 올림픽만 바라보고 땀과 열정을 바친 우리 대표팀 선수들의 마음이다.

대표팀은 대한민국의 유일한 여자 아이스하키팀이다. 현재 대표 선수들은 엘리트 선수 출신이 아니다.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 4년간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

어떤 선수는 생업을 중단했고 또 다른 선수는 학업을 멈췄다. 한국과 별로 인연이 없었던 재외동포 선수도 기꺼이 귀화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4년 전만 해도 오합지졸이었다. 하지만 선수들이 뼈를 깎는 노력을 거듭한 끝에 올림픽 무대까지 나서는 성과를 이뤘다. 아이스하키는 개최국에 올림픽 출전권을 자동으로 주지 않는다. 우리 선수들은 당당히 실력을 키워 평창 무대를 밟는다.

그런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적인 논리로 단일팀을 구성하는 것은 무리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표팀에 북한 선수 몇 명 들어간다고 크게 달라지나’고 반문할 수도 있다. 아이스하키는 철저한 팀워크의 스포츠다. 선수 교체 시 1, 2, 3, 4라인으로 나눠 팀을 통째로 바꾼다. 야구나 축구처럼 선수 1~2명을 바꾸는 게 아니다.

현재 대표팀은 수년 전부터 손발을 맞추면서 조직력이 꽉 짜여진 팀이다. 여기에 북한 선수가 들어온다면 아예 팀을 다시 짜야 한다. 그동안 쌓아온 팀워크와 전술이 무용지물이 된다. 북한 선수 개개인 능력이나 북한 대표팀의 국제적 수준과는 별개 문제다..

“아이스하키는 선수 교체가 자주 이뤄져 괜찮다”는 도 장관의 발언은 너무 모르고 하는 얘기다.

아이스하키에서 선수 교체는 단순히 여러 선수를 고르게 기용하는 목적이 아니다. 다양한 작전의 변화나 상대 흐름을 깨기 위해 선수 교체를 한다. 어느 승부처에서 어떤 라인을 내세우느냐가 감독이 펼칠 수 있는 중요한 전술이다.

남북 단일팀이라는 정치적 결정 속에서 정작 당사자인 선수는 찬밥 신세다. 정부로부터 어떠한 결정도 들은 게 없다.

선수들은 남북 단일팀 논란이 나올 때마다 “할 말이 없다”, “그냥 내가 할 일만 하면 된다”고 말을 아끼고 있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도 장관은 국회 특별위원회에서 “선수들과도 상의하고 양해를 구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올림픽이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해 대표 선수들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없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도 장관은 ”전체 엔트리를 23명에서 30명으로 늘려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에 우리 선수에게 피해가 없다“고 했다.

도 장관의 말은 틀렸다. 전체 엔트리를 확대한다고 했도 아이스하키 실제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선수는 22명뿐이다. 규정이기 때문에 떼쓴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북한 선수에 밀려 출전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한 선수는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 해당 선수들은 물론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 선수들의 마음도 무너진다.

미국의 전설적인 수영 영웅 마크 스피츠는 ”훈련은 체력이 90%, 정신력이 10%지만, 경기는 체력이 10%, 정신력이 90%다“고 말했다. 팀 스포츠에서 사기의 중요성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사기가 무너지면 경기는 하나마나다.

국민적 반응도 반대 목소리가 높다. SBS가 지난 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해 72.9%가 ‘무리해서 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선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반대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아이스하키 관계자는 ”단일팀을 만들면 정치인들은 좋겠지만 팀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단일팀을 만들어 0-10으로 패하면 그때도 웃을 수 있을까“고 안타까워 했다.

1991년 탁구 남북 단일팀의 주역이었던 현정화 렛츠런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강압적인 단일팀 추진은 곤란하다. 단일팀을 추진하더라도 선수들과 충분한 대화를 하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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