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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이완용, 다른 친일파들이 고마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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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 "이완용이 매국노의 대명사 되면서… 다른 친일파들은 잊혀져"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독립운동에 뛰어든 분들.. 민족의 독립 위해 모든 것 내던져
- 싸울 때 뿐 아니라 법정, 감옥, 형장에서도 의연한 모습 보여
- 어느 특정 인물을 내세울 수 없어.. 한 분 한 분이 감동적
- 우리 후손들, 애국자의 삶 바로 알아야
- 3권 까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이승만'
- 日, 잘못은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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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5)
■ 방송일 : 2018년 1월 16일 (화)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박시백 화백

◇ 정관용>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그러면 아마 한 번쯤 안 보신 분들 아무도 없을 겁니다. 모두 300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그러죠. 그 박시백 화백께서 이번에 일제강점기를 다룬 ‘35년’이라고 하는 역시 역사만화책을 펴내셨네요. 그래서 오늘 스튜디오에 직접 한번 초대해 봤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박시백>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조선왕조실록이 총 20권으로 나온 거죠?

◆ 박시백>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게 이제 한 300만 부 팔린 거고. 그런데 이번에 내오신 걸 보니까 제목이 ‘35년’인데 5년 단위로 3권까지 냈더라고요. 그러면 35년이라는 제목 하에는 모두 몇 권이 나와야 합니까?

◆ 박시백> 7권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7권. 그러면 앞으로 4권이 남아 있는 거네요.

◆ 박시백>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러면 제일 먼저 드는 질문이 조선왕조실록은 500년 역사인데 20권에 담으셨는데 35년을 7권으로. 그건 왜 그렇습니까?

◆ 박시백> 아무래도 근현대사이다 보니까 우리 알려져 있는 사건들만 해도 굉장히 많고 등장한 인물들이 많고 그래서 10년, 20년 단위로 1권, 이런 식의 분량으로는 정말 수박 겉핥기밖에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정관용> 왜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어요, 처음에.

◆ 박시백> 처음에는 아무래도 조선왕조실록이 1910년에서 딱 끝나거든요. 그래서 이걸 봤던 독자들의 요구가 우선 컸습니다.

◇ 정관용> 그 이후도 좀 해 달라 그런 요구들이 있었고 저 역시도 아무래도 일제강점사가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시대이고 요즘에도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시대이다 보니까 의미가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정관용> 준비에는 어느 정도 걸리셨어요?

◆ 박시백>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 건 한 2년 반에서 3년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 정관용> 관련 기사를 보니까 조선왕조실록보다 훨씬 그리기가 힘드셨다고 하는데 그랬나요?

◆ 박시백> 아무래도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하는 기본 텍스트가 확실하게 있다 보니까 그것이 조선왕조실록만 열심히 공부를 하면 거기에 기반해서 제가 판단하고 또 요약, 정리를 할 수 있는데 이 시대의 사안은 관련된 사례들이 워낙 많고 그래서 제가 기본 사료를 거의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기본 사료를 연구한 사학자들의 연구서들 단행본으로 주로 나와 있는 책들 위주로 공부를 했는데 그래도 아무래도 기본적인 어떤 텍스트가 있으면 판단이 쉬울 텐데 그렇지 않아서 조금 조심스러운 그런 면이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 정관용> 아니 기본 사료가 아닌 연구자들의 연구서는 연구자들의 시각에 따라 또 제각각이잖아요. 그걸 어떻게 종합하셨어요?

◆ 박시백> 그래서 최대한 어떤 저의 관점 이런 것을 가급적 배제하고 팩트로 확인된 것 위주로 서술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또 실제 그렇게 진행을 했습니다.

◇ 정관용> 그러면서 독자들은 이걸 보면서 뭘 좀 느꼈으면 좋겠다 이런 의도가 있을 거 아닙니까?

◆ 박시백> 그렇죠.

◇ 정관용> 뭡니까?

◆ 박시백> 일단 가장 큰 것은 제가 서두 머리말에도 썼었는데 어렸을 때 그런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우리가 광복되고 우리가 독립된 것은 당시 원자탄과 그리고 미군의, 일본에 대한 미국의 승리로 얻어진 결과이지 우리가 한 게 뭐가 있느냐라고 한 얘기를 어렸을 때 선생님들이나 어른들로부터 꽤 들었던 것 같은데.

독립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거기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시대를 공부하다 보니까 35년이라는 참 짧지 않은 시간 동안에 그야말로 끝도 없이 정말 치열한 독립 투쟁의 항전에 나섰던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어져 나온다는 얘기죠. 굉장히 감동적이었고 이것을 바로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정관용>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좀 제대로 알려보자?

◆ 박시백> 네.

◇ 정관용> 친일파도 다 등장하죠?

◆ 박시백> 맞습니다. 반대편 또한 그런 어떤 시대적인 대의보다 개인의 어떤 일신상의 안위라든가 영달을 위해서 동족을 배반하거나 이렇게 했던 사람들이 또한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해방 이후에 그때 쌓아놨던 지위나 부에 근거해서 더 높은 지위와 부를 누렸고.

◇ 정관용> 친일청산이 제대로 안 됐죠.

◆ 박시백> 심지어 자신들의 과거까지도 독립운동가인 양 세탁한다든가 이런 모습들을 보여왔단 말씀이죠. 그런데 지금에 와서 당시에 친일파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이미 세상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때문에 인적청산이나 이런 것들은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고 그렇다면 최소한 그들의 명예에 대해서라도. 그들이 친일파였으면 친일파였다는 것을 제대로 우리가 알아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이걸 알려야 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 정관용> 이 시기는 독립운동사를 써도 소위 이념 때문에 좌파 독립운동이 워낙 거셌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념 문제 때문에 독립운동사도 상당히 논란이 많고 이질어진 독립운동도 있었고 또 친일인명사전 같은 것을 펴내는 작업도 정말 국가적인 토론을 거쳐서야 겨우. 또 지금도 또 거기에 대해서 문제제기 하시는 분들이 많고 그런 대목은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 박시백> 저는 일단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가령 친일인명사전 같은 경우에는 정말 충분한 연구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작업이라고 생각되고 굳이 제가 이 작업을 하면서 그래도 기본 텍스트에 준하는 텍스트라고 하는 것을 꼽는다면 친일인명사전하고 또 한 가지는 이제 독립기념관에 있는 한국독립운동사라고 하는 60권짜리 자료가 있는데 이것을 가급적 텍스트로 삼아서 정리를 했는데요. 굉장히 조심스러운 부분이 분명하게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사실 자체는 사회주의운동이었던 사람은 사회주의 운동을 했다고 하면 되니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좌우파 배제 없이 또 친일 행적은 친일 행적 그대로.

◆ 박시백>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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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 화백의 '35년' (사진=자료사진)


◇ 정관용> 또 식민지 근대화론 이런 거 있지 않습니까? 그건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 박시백> 그런 측면을 아주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하지만 뭐 다 아시다시피 식민지 35년 과정을 통해서 우리 경제라든가 사회가 일정하게 근대화된 이런 것들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들의 목표가 아니라 자신들의 식민지 통치 혹은 대륙 침략 이런 틀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나온 일종의 부산물 적인 성격이 있지 않나, 그렇게 보면 되는 것이죠.

그것을 어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근대화가 거기서부터 근대화가 가능했다고 하는 긍정적인 평가의 여지는 없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식민통치의 필요 때문에 취해진 정책의 결과 우리 사회가 조금 변화되고 달라진 건 있다, 그건 인정한다?

◆ 박시백> 그렇죠.

◇ 정관용> 그러나 그 목표와 의도는 식민통치의 수탈 때문이었다, 이런 거.

◆ 박시백> 그렇습니다.

◇ 정관용> 제가 이 책을 지금 이 앞에 두고 보는데 매 권마다 5년 단위로 한 권씩, 한 권씩 나오는데 맨 앞장이 그 5년 시기의 국제정세예요, 세계정세. 그걸 맨 앞에 다룬 이유는 뭡니까?

◆ 박시백> 아무래도 동시대, 그 시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우선이었고요. 또 한 가지는 실제 당시에 독립운동 진영들도 노선이나 이념 이런 것을 막론하고 누구나 다 자신들이 갖는 독립운동의 방략, 전략과 전술을 세계정세에 대한 면밀한 검토 하에서 출발한다라는 것이죠.

가령 독립전쟁론을 편다라고 하면 그야말로 이 무력 대 무력으로 맞서 싸운다, 이런 개념이 아니라 정세판단을 어떻게 하냐면 어쨌든 일본이 갖고 있는 야욕 때문에 언젠가는 중국이나 러시아나 미국과 일전을 벌이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라고 판단을 하는 것이죠.

◇ 정관용> 그러니까 우리도 무장투쟁을 준비하자?

◆ 박시백> 그러한 때가 바로 독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고 우리는 그때를 준비하면서 꾸준하게 실력을 배양해 나가야 한다는 게 베이스에 깔려 있었다는 것이죠.

그 외에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3. 1운동 과정에서 파리 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한다든가 하는 외교론도 마찬가지로 모든 독립운동 진영들이 그런 세계사적인 흐름에 굉장히 면밀하게 검토하면서 민감하게 반응을 했다라고 하는 것이죠.

◇ 정관용> 그런데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그 노선 투쟁이 심각했잖아요. 그 노선투쟁 중에 어느 것이 옳았다 이런 판단까지 하셨습니까 아니면.

◆ 박시백>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해당한 시기에 어쨌든 그들로서는 자신들이 판단한 범주 내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안들을 냈었을 것이고 이것들 사이에서 같은 마음, 가령 사회주의면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 내에서도 노선 투쟁이 있고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또 민족주의 진영 내에서도 있고 이런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지 않겠나라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매권마다 등장인물이 어마어마합니다.

◆ 박시백> 그렇습니다.

◇ 정관용> 모두 몇 명쯤 등장합니까?

◆ 박시백> 글쎄, 세어보지 않아서. (웃음) 자세히 모르겠고 또 워낙 많아서 저 역시도 이런 인물이 뒤에 만약에 2권이나 3권에 새로운 인물을 그리려고 하는데 이 사람이 나왔었는지 판단이 좀 안 서고 그래서 앞에 뒤져보는 일에 굉장히 시간을 많이 소요하고 그랬습니다.

◇ 정관용>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누굴까요?

◆ 박시백> 3권까지 갔을 때는 아무래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아닌가 싶습니다.

◇ 정관용> 제일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요?

◆ 박시백> 아무래도 이승만, 초기에는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많이 했는데 왜냐하면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자리하는 곳에서는 늘 분란이 일고 그리고 내분이 일고 이런 것을 이제 적어도 이 시기에서는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그러면서 또 한 가지 이승만이 대두되는 게 3. 1운동 전후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인데 실제 이승만이 그동안에 어떤 쌓아왔던 업적이라든가 행적으로 봤을 때 그 정도 레벨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모든 임시정부를 세우려고 하는 진영들은 하나같이 이승만을 첫 손가락이나 두 번째 손가락 안에 대표자로 이승만을 선정하더라라는 거죠.

왜 그럴까라고 봤을 때 그 시대 상황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나오고 이것으로부터 외교를 통해서 뭔가 독립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하는 기대가 퍼져 있는 상황인데 이승만은 그 이전에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난 적도 있고 또 심지어 프린스턴대학을 나오면서, 나왔을 때 그 프린스턴대학 총장이 당시에 윌슨 대통령이었거든요.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윌슨 대통령과 되게 친하다더라 이런 소문들이 나오고 한 것들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라고 생각이 들고 문제는 그런데 그렇게 해서 이승만을 선전한 그 순간부터 곧바로 이승만에 대한 반대론자들이 등장하고 이것이 임시정부 내부에 중요한 내분의 원인이 되죠.

◇ 정관용> 가는 곳마다 내분이 심화된 원인은 어디 있다고 보세요?

◆ 박시백> 이거는 판단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인데 제가 봤을 때는 이런 어떤 대의를 위해서 나서는 사람들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대의잖아요. 그 대의를 위해서 자기의 사적인 이익을 양보한다든가 접는다든가 하는 것이 일단 출발일 텐데 이승만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어떤 지위라든가 자신의 입지 이런 것이 굉장히 앞선 인물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사실상 하와이에 정착하는 과정을 보면 자신을 초청해 주고 자리잡게 해 준 후배 박용만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오히려 이 박용만을 제압하면서 제압하는 과정도 굉장히 더티한 방식도 많이 사용하고 이런 모습들을 보여주거든요. 이런 것으로 볼 때 그런 개인적인 야망, 야욕 이런 것들이 분란을 일으킨 원인이 됐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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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 화백 (사진=시사자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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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관용> 독립운동가, 여러 분들이 등장할 거 아닙니까? 박시백 화백 개인적으로 이분이 가장 훌륭하다 그런 분 있나요?

◆ 박시백> 그렇지는 않습니다. 거의 뭐 독립운동에 뛰어든 대부분의 분들이 거의 모든 분들이 참으로 깊은 감동을 줄 만큼 그야말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던진 사람들이었고 또 초기에 그야말로 의병투쟁이 거의 끝물이었는데 의병투쟁의 지도자에서부터 그 외 의열단원들이나 또는 독립군들이나 하나같이 가령 싸움에서 뿐만이 아니라 싸운 다음에 법정에서건 감옥에서건 또는 형장에서든 끝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참으로 감동적이지 않나 싶고 어느 특정한 인물을 내세울 게 아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 정관용>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존경스럽더라. 여기 이완용 매국노부터 시작해서 친일파도 많이 나오잖아요.

◆ 박시백> 많이 나오죠.

◇ 정관용> 제일 나쁜 사람이라면 누가.

◆ 박시백> (웃음) 사실 이제 이완용 같은 경우에는 대단한 친일파죠, 사실. 한일합방 강제병합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중요한 우리가 아는 을사조약부터 시작해서 정미7조약 또 그 전 과정에서 개입했던 인물이고 또 그 이후에 일관되게 그 길을 갔던 인물인데 저는 크게 차이가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당시 작위를 받고 친일파 행세를 했던 많은 사람들하고 크게 다르지 않고 오히려 이완용이라고 하는 이름이 마치 어떤 매국노의 대명사가 되면서.

◇ 정관용> 나머지를 잊어버리게 하는.

◆ 박시백> 오히려 그런 효과가 있지 않나. 그래서 어찌 바라본다면 해방 이후에 수많은 친일의 과거를 안고 있던 사람들에게 가장 고마운 존재가 이완용이 아닐까 이런 생각까지 듭니다.

◇ 정관용> 이게 7권을 목표로 하니까 1945년에 딱 끝나는 거죠?

◆ 박시백> 그렇죠.

◇ 정관용> 그 7권 완간은 언제쯤입니까?

◆ 박시백> 우선 올해 2권을 생각하고 있고 내년 말까지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웃음) 항상 하는 일이 그렇듯이 이 목표라는 게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왕왕 있어서.

◇ 정관용> 그나저나 박시백 화백 원래 언론사에서 시사만평 그리시던 분이잖아요.

◆ 박시백> 맞습니다.

◇ 정관용> 어쩌다가 이 길로 가시게 됐어요?

◆ 박시백> 시사만평이 어려워서? (웃음) 왜냐하면 시사만평을 몇 년 하다 보니까 이것이 주는 이제 스트레스가 대단히 컸고.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몇 년을 했었는데 그런 작업을 몇 년 더 할 수는 있겠는데 정말 10년 넘게 혹은 평생의 직업으로 하기에는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뭔가 대체할 수 있는, 하지만 또 내가 할 수 있는 게 만화밖에 없으니까 만화로 계속할 수 있는 게 뭔가 없을까라고 찾다가 이 조선사하고 맞는 것 같아요.

◇ 정관용> 역사를 제대로 읽을 수 있도록 대중화시키는 데에 내가 기여한다, 이런 거겠죠, 제일 큰 건.

◆ 박시백> 에이, 그런 사명보다 우선은 밥벌이 하자라고 출발했고요. (웃음) 하다 보니까 사명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조선왕조실록도 처음 시작할 때는 그런 거창함보다는 기왕에 할 바에는 조선왕조실록에 기초해서 하자 이것이 출발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우리한테 익숙한 여러 유명한 기존에 나와 있던 책들이 이거는 조선왕조실록을 제대로 공부 안 했네라고 하는 게 너무 많이 보이는 거예요.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사건들이 적당히 야사를 버무려서 정리한 것들이 많았고 그럴수록 이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하는 우리 선조들이 남겨놓은 유산이 참 위대한 유산인데 이것이 너무 소개가 안 돼 있구나 하면서 제대로 알리자라고 하는 사명감이 이후에 들었고.

이 35년 역사도 물론 처음부터 일제강점사를 제대로 알리자라고 하는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공부하면서 아까 말씀드린 그런 수많은 애국자들의 삶 속에서 정말 우리가 후손들이 이들을 바로 알아야 한다라는 이런 생각이 더 강력하게 들었고 때문에 저로서는 더 잘 알려야 한다, 많이 알려야 한다라는 사명감이 뒤따랐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보니까 점점 더 두꺼워지는 거군요. 일제시대 다룬 만화를 그리셨기 때문에 요즘 현안 가운데는 위안부 문제, 문재인 정부의 후속 대책 아베 정부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러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한 말씀 하신다면?

◆ 박시백> 아주 단순한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 이 문제는 지난 합의 과정이 얼마나 국민들에게 어떤 여론을 수렴하지도 않았고 당사자였던 할머니들과의 동의는 물론 상의 한마디 없이 진행된 거였지 않습니까? 그만큼 합의로서의 불충분함은 이미 다 드러난 상황인데 그런 것보다 지난 정부의 잘못 이런 것보다 일본 정부의 태도가 참으로 이제 용납이 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이런 사안들은 가해자가 진실된 사죄를 하는 것부터 이제 출발해야 되는데 어떻게든 이것을 모면해 보려고 여러 가지 요령을 피우는 모습들을 보이다 보니까 어떻게든 만들어놓은 이 합의서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려 하고 이것을 우리 측에서 깬다고 역으로 공격해들려고 하는 상황인데 참으로 옳지 않는 태도다, 그들이 진정한 용기가 있다고 한다면 역사를 바로 응시하고 잘못은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모든 독립운동가 한 분, 한 분이 전부 다 존경스럽더라, 저는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군요. 그런 감동을 독자들이 다 같이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해 보고요. 남은 후속 작업 차질 없이 잘 진행하셔서 빨리 빨리 속편이 나오기를 바라겠습니다.

◆ 박시백> 고맙습니다.

◇ 정관용> 오늘 고맙습니다.

◆ 박시백> 수고하셨습니다.

◇ 정관용> 박시백 화백 함께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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