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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이슈+] “집값 올리자”… ‘아파트 네이밍’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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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논란 / ‘이미지·가격에 영향’ 인식 확산 / 신도시·부촌 이름 넣어 명칭 변경 / 시공사의 프리미엄 브랜드 넣기도 / 표지판·행정 표기 등 수정 불가피 / 혼란 유발·지역 고유성 훼손 우려

세계일보

경기 수원시 광교신도시의 한 아파트는 입주 후 6년 만에 이름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LH휴먼시아’에서 ‘LH해모로아파트’를 거쳐 지금은 ‘광교해모로’로 불린다. 아파트 관계자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를 뺀 이유에 대해 “일반분양 아파트인데 LH가 들어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임대아파트로 보기도 하고 집값도 떨어진 것 같아서”라고 설명했다. ‘광교’를 집어넣은 건 신도시 이름을 넣으면 아파트 가격 상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고 한다.

성남시 중원구의 ‘LH 연꽃마을’이 ‘어울림 연꽃마을’로, 수원시 권선구의 ‘능실마을 LH’는 시공사의 아파트 브랜드를 넣어 ‘호매실 스위첸 능실마을’로 변경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최근 전국에서 아파트 이름을 바꾸는 ‘아파트 네이밍’이 잇따르고 있다. 아파트 명칭이 아파트의 이미지와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다.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는 빼고 긍정적인 요소는 더하는 방식의 변경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름 변경에 따른 표지판이나 행정관서 등의 변화도 불가피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낳는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16일 각 지방자치단체와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행정구역 명칭은 입주민들이 빼고 싶어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서울 서대문구 아파트 ‘아현역 이편한세상’의 주민들은 ‘아현’이라는 이름이 ‘아기들 무덤’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며 아파트에서 1.6㎞ 가까이 떨어진 ‘신촌’을 넣어 아파트 이름을 ‘이편한세상 신촌’으로 바꿨다. 인근의 다른 아파트 주민들도 신촌을 넣으려고 하고 있어 행정구역에 대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세계일보

건축이 오래된 아파트의 주민들은 시공사의 프리미엄 아파트 브랜드로 바꾸는 걸 선호한다. 삼성물산의 ‘래미안’, 현대건설의 ‘힐스테이트’, GS건설의 ‘자이’ 등이 인기다. 아파트 이름이 입주민의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 등을 대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2005년에 입주한 수원 매탄동의 현대홈타운 주민들은 수년간 명칭 변경을 신청해 ‘매탄동 현대힐스테이트’로 바꿨다. 주민 이모(42·여)씨는 “과거 홈타운에 산다고 했을 때와 달리 힐스테이트에서 거주한다고 하면 사람들 눈빛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좋은 아파트 명칭에 대한 욕구가 높다보니 같은 동네 주민들이 프리미엄 아파트 이름을 두고 갈등을 벌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2015년 서울 강남구 자곡동의 ‘자곡포레’ 주민들이 래미안을 넣으려고 하자 인근의 ‘래미안강남힐즈’ 아파트 주민들이 반발하며 구청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자곡포레 아파트가 ‘래미안포레’로 바뀌며 갈등은 표면적으로 일단락됐다.

아파트 명칭의 변경은 소유주 75% 이상의 동의를 받아 지방자치단체에 건축물 변경을 신청하면 가능하다. 주민들의 의견만 모이면 가능한 셈인데, 주변의 각종 안내표지판과 행정관서의 표기까지 수정해야 해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지자체 관계자는 “금액으로 추산은 어렵지만 아파트 명칭이 바뀌면 크고 작은 비용이 나가는 건 사실”이라며 “게다가 외지인에게 혼란을 주거나 지역의 고유성이 사라지는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아파트 명칭이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무분별하게 아파트 이름을 바꾸기보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 이미지로 개선하는 게 아파트 가격에 더 직접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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