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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두 달 전 총성 울리던 판문점… 北예술단 대거 방남 길목되나(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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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여명 판문점 경유 이례적…"'北은 평화존중' 메시지 발신 의도" 관측

경의선 육로 대신 판문점 선택…개성공단 이용된 경의선 복원 거부감 가능성

연합뉴스

판문점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북한군 병사의 귀순에 총성으로 얼룩졌던 '분단의 상징' 판문점이 대규모 북한 예술단의 방남 경로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은 15일 열린 남북 실무접촉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 북한 예술단 140여 명의 방남 경로로 판문점을 경유해 서울-평창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방안을 거론하면서 남측에 수송수단 등의 편의 제공을 요청했다.

판문점을 통해 140여 명이 한꺼번에 내려오는 건 이례적이다. 정부는 유엔군 사령부와의 협의를 거쳐 판문점을 통한 북한 예술단의 육로 방남을 확정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예술단의 방남인 만큼 큰 문제가 없다면 이들의 판문점 경유는 성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판문점에는 출입경 시설이 없지만, 유엔사의 협조가 확보된다면 남북 간 사전협의로 해결 가능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북측이 출입경 시설이 대규모로 갖춰진 경의선 육로 대신 판문점을 선택한 배경도 주목된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 북한 방문단의 행보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상황에서 대규모 예술단이 판문점을 넘는 모습을 연출해 파견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16일 "판문점은 정치적 상징성이 워낙 큰 곳"이라며 "예술단의 판문점 경유를 통해 북한이 평화를 존중하는 정상적 체제라는 메시지를 국제사회, 특히 미국에 발신하려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개성공단 출입경에 주로 이용되던 경의선 육로의 경우 개성공단을 남측이 끊은 상황에서 우리가 요청하면 몰라도 먼저 (방남경로로) 택하고 싶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1998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판문점 군사분계선 넘는 소떼



통일부에 따르면 판문점을 통해 남북이 오간 사례는 1998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500마리를 몰고 방북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이 판문점을 통과한 역사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1985년 남북이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 151명씩 서울과 평양을 교환방문할 때도 판문점을 거쳤고, 1984년 남측에 큰 수해가 났을 때는 북측이 판문점을 통해 지원물자를 보내기도 했다.

1989년에는 임수경 전 의원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평양에 갔다가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1990년 9월 서울을 방문한 1차 남북고위급회담의 북측대표단과 같은 해 10월 서울을 찾은 남북통일축구 북측선수단 등도 판문점을 통과했다.

2003년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가 뚫린 이후부터는 남북 간 인적·물적 왕래가 그쪽으로 집중돼 굳이 판문점을 이용할 이유가 없었다. 2010년 8월 한상렬 목사 등 불법으로 방북했던 인사가 귀환하거나 표류중 구조된 북한 어민들이 송환될 때 가끔 이용되는 정도였다.

드물기는 하지만 미국 정부 인사들도 방북 시 판문점을 거친 적이 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1차 북핵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94년 6월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을 때도 판문점을 이용했다. 2007년 9월 북한과 핵시설 불능화 방안 협의차 방북한 미국 대표단도 판문점을 거쳤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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