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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매뉴얼대로 최선 다했지만… 죽고싶을 만큼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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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화재 김종희 지휘팀장 인터뷰]

- 2층에 왜 즉시 진입 안 했나

그렇게 사람이 많을 줄 몰랐다, 3층 매달린 사람 먼저 구해야 했다

- 유리창은 왜 깰 수 없었나

열기 뜨거워 접근 엄두 못 냈다… 사다리 고정끈 다 녹아내린다

- 비상구로 진입할 수 없었나

비상구쪽 창문 뜯어냈을 때 이미 연기 심했고 열기도 강했다

조선일보

충북 제천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난 12월 21일 제천소방서 김종희 지휘조사팀장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언론사 사진기자가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을 눈여겨보다 촬영한 사진이다.


29명이 숨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작년 12월 21일)에 대해 11일 소방합동조사단은 "현장 지휘관의 대응 부실로 피해가 커졌다"고 발표했다. 조사단이 말한 '커진 피해'란 20명이 희생된 2층 여자 사우나 참사를 말한다. 제대로 대응했다면 이들을 상당수 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소방 선발대는 화재 신고 접수 7분 후인 4시 현장에 도착했다. 처음 지휘한 소방관은 김종희 제천소방서 지휘조사팀장이었다. 그는 16분 후 도착한 제천소방서장에게 지휘권을 넘겼다. 공교롭게 2층 희생자들의 육성 전화가 끊긴 시각이 4시 16분이다. 이른바 '골든타임' 동안 지휘권이 그에게 있었다. 유족의 비판이 그에게 집중되는 이유다. 정말 그는 무능했고 부실한 소방관이었나?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2층 상황을 전달받고 즉시 진입하지 않았는데.

"2층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 하지만 그렇게 많다는 건 몰랐다. 3층엔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6층과 옥상에도 사람이 구조를 기다렸다. 주차장만이 아니라 건물 상층부까지 화염이 번졌다. 불길은 바람을 타고 LP 가스통으로 향했다. 주차 차량을 빼야 했다. 아비규환이었다. 당시 상황에서 모든 층에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럴 때 소방관의 최선은 매뉴얼에 있는 대로 눈앞에 보이는 위급한 사람을 먼저 구하는 것이다."

―2층에 사람이 '많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는 건가.

"기억에 없다. 하지만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그래서 3층에 매달린 사람을 먼저 구했나?

"3층에 사람이 매달려 있다고 주변에서 소리쳤다. 불기운이 거셌다. 불길이 치솟으면 위험했다. 구조대는 도착하지 않았다. 펌프차에 있던 스펀지 매트를 옮겼다. 떨어져도 죽지는 않게 해야지."

―구조대를 분산할 수 없었나?

"얼마 후 구조대가 왔다. 에어매트를 가져오라고 했다. 100㎏, 설치 시간이 12분에서 보통 10분 이상 걸린다. 공기를 주입할 때 사방에서 끌어당기면서 해야 한다. 구조대 4명이 매달려야 한다. 안 그러면 얼어붙는다. 이 사람을 두고 다른 구조를 했다면, 그래서 눈에 보이는 그가 희생됐다면 또 다른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구조대에게도 2층 상황을 알리지 않았는데.

"3층 구조가 가장 급했다. 사이에 옥상 구조요청도 있었다."

―무전기가 망가져서 못 알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있을 수 없다. 인명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는 연락을 수없이 했다."

―대원이 적어서 그랬다면 화재 진압 대원이라도 투입할 수 없었나?

"불길이 위협하는 LP 가스통은 2t짜리다. 현장 주변도 상가와 아파트가 몰려 있었고, 주민도 많아 LP 가스통이 폭발한다면 대형 참사는 불 보듯 뻔했다. 건물 관리인과 주민들도 얼른 불을 꺼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당시는 LP 가스통을 방어하며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소방 매뉴얼에 맞는 조치인가?

"지휘팀장이 화재상황과 연소확대위험 등을 고려해 전략을 선정하라고 돼 있다."

―2층 유리창은 깰 수 없었나?

"화재 초기 연기로 건물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열기도 뜨거워 접근이 어려웠다.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 상황에 사다리를 놓는다면 고정끈이고 뭐고 다 녹아내릴 것이다. 출입구 쪽까지도 열기가 매우 강했다. 서장에게 지휘권을 넘겼을 때도 열기가 매우 강했다. 그래서 서장도 유리창을 깰 수 없다고 판단하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구조대도 모자랐다. 구조대가 증원된 시간은 오후 4시 33분쯤이라고 들었다. 이후 불기운이 약해지면서 유리창 진입을 시도한 것 같다."

―방범카메라에 찍힌 화재 상황을 보면 2층 창문 중 화면 오른쪽, 냉탕 창문은 비교적 멀쩡해 보인다.

"영상은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그곳 열기도 강했다."

―비상구로 진입할 수 없었나.

"이미 많은 연기가 있었다. 인근 방범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보면 오후 4시 10분쯤 비상구 쪽에 화염도 있었다. (오후 4시 20분 전후) 구조 대원들이 비상구 쪽 2층 창문을 뜯어내고 배연 작업을 시도했을 당시에도 열기가 강했고 연기도 심했다는 말을 들었다. 화재 초기 상층부에 불이 옮아 붙으면서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아래로 역류한 것 같다." 소방합동조사단도 같은 입장이다. 조사단 관계자는 "계단 쪽 벽면의 페인트 등 표면 박리 상태를 보면 열기가 강했거나 화염이 근접했던 것은 맞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심정은 어떠한가.

"16분 동안 매뉴얼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 출발 시부터 가용 차량 모두 출동을 요청했고, 비상소집 명령도 요구했다. 무전에 회답하지 않은 구조대에도 전화를 걸어 출동을 요청했다. 출동하면서 인명 구조도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위험 요소를 판단해 조치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 떠나 유가족분들의 고통만 하겠는가. 유가족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하고 싶다."

[제천=신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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