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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있어빌리티·탕진잼… 30대, 일회용품처럼 행복을 소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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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피로사회] [2]

남에게 인정받아야 행복 느껴… '일단 쓰고 보자' 소비 방식 늘어

75년간 '행복' 연구한 하버드대 "좋은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

지난해 2030 세대 신조어 가운데 '있어빌리티(있어 보이는 능력·'있어 보인다'와 'ability'의 결합어)'와 '탕진잼(탕진하는 재미)'이 크게 유행했다. '홧김에 생각지 않았던 일을 시작한 비용'이란 뜻의 '시발(始發) 비용'이란 말도 있는데, 해석이 그럴듯할 뿐 사실은 욕설 섞은 신조어다. 모두 행복은 멀지만 행복해 보이고 싶은 욕구가 반영된 유행어다. 지속성 없는 '일회용 행복'을 위해 돈과 시간을 소비하는 풍토를 드러낸다.

이런 소비 행태는 30대에 가장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비영리 연구소인 희망제작소가 작년 11월 전국 만 15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30대는 현재 삶의 만족도, 정신과 신체 건강, 경제 상태를 비롯한 거의 모든 항목에서 평균보다 낮은 만족도를 보였다. 미래에 대한 희망 점수 역시 10점 만점 중 개인(5.96점)·사회(4.86점)·국가(5.43점)·세계(4.83점) 등 모든 분야에서 전 세대 평균보다 낮았다. 희망제작소는 "30대는 집단 우울증이 의심될 만큼 모든 항목에서 만족도가 낮았다"고 밝혔다. 직장인 김자현(30)씨는 "'내가 내 돈 벌어서 쓴다는데 누가 말릴 거야' 하는 일종의 반항적 심리가 있다"며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어 위로 삼아 돈을 쓰지만 통장 잔액을 보면 다시 우울해진다"고 말했다. 이들은 '텅장(텅 빈 통장)'이란 말도 만들어냈다. 다른 30대 직장인 강모씨는 "비우는 삶이 좋다고 아무리 말들 해도 '너희는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라'고 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경북대 심리학과 김지호 교수는 "과거엔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으며 행복해했다면 요즘엔 아이에게 비싼 유모차를 사주고 이를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행복을 느끼는 식으로 주객이 전도됐다"며 "남의 기준에 맞는 행복을 일회용 물품 구하듯 찾다 보니 피로도가 심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쓸데없는 소비를 가리키는 개그맨 김생민의 유행어 '스튜핏' 역시 자신이 결정해 실행한 것을 남이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사회 분위기를 방증한다. 학자들은 이런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을 '자기 감시(self-monitoring)'가 지나치게 강한 것으로 해석한다. 한국 사회가 겉으로는 서구처럼 개인주의화한 것 같지만, 여전히 남들의 시선을 삶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는 1939년부터 2014년까지 장장 75년간 행복 연구를 수행했다. 하버드대 재학생 286명과 보스턴 빈민층 자녀 456명을 대상으로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관찰한 결과다. 하버드 성인개발연구소 로버트 월딩어 교수는 "가장 명확한 한 가지 사실은 좋은 인간관계가 건강과 행복에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눈에 보이는 요소보다 주변과 나누는 친밀감과 사랑이 행복의 필수 조건이란 것이다. 이미 1922년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일본의 한 호텔 벨보이에게 팁 대신 이렇게 쓴 메모를 건넸다. "조용하고 소박한 삶이 끊임없이 불안에 얽매인 성공 추구보다 더 큰 기쁨을 준다."

[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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