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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여행기자의 미모맛집]38 강릉 사람들의 소울푸드 우럭미역국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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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해수욕장 인근 옛태광식당

산모, 기 허한 사람 보양식으로 먹어

국물 고소하고 바스러진 살 씹는맛도

요즘 겨울올림픽 관련 뉴스를 보면 바가지 문제가 거의 매일 터져나온다. 모텔 하룻밤 숙박료가 30만~40만원을 호가하고, 음식값이 10~20% 올랐다는 소식이 익숙하다. 그러나 싸잡아 매도할 일은 아니다. 강원도 평창이나 강릉에 바가지 식당만 있는 건 아니다. 부담없는 가격에 맛나고 영양가 높은 서민음식을 파는 식당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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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태광식당에서 먹은 우럭미역국과 밑반찬. 우럭을 사골처럼 푹 고아 살점이 거의 바스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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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강문동 옛태광식당(033-653-9612)이 그런 집이다. 예부터 강릉 사람들이 보양식으로 먹은 우럭미역국을 파는 집이다. 집에서도 뚝딱 끓여 먹을 수 있는 미역국을 강릉까지 가서 먹어야 하냐고? 안다. 강릉까지 갔으면 생선회를 먹든 오징어를 씹든 순두부를 떠먹든 해야 한다는 걸. 그러나 우럭미역국을 먹어보면 그 깊은 맛에 생각이 달라진다. 무엇보다 가격이 8000원으로 저렴하다. 강릉 여행 내내 값비싼 음식을 먹을 순 없기에 집밥이 생각날 때 찾아가면 좋다.

우럭미역국을 먹고 싶다 생각한 건김애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실린 단편 ‘가리는 손’을 읽고서였다. 소설에 우럭미역국 끓이는 내용이 섬세하게 묘사돼 있다. “비늘과 내장을 제거한 우럭을 들통에 깐다. 거기 대파와 생강, 청주를 넣고 팔팔 끓인다. 익은 살은 따로 발라 한곳에 두고, 몸통뼈와 대가리만 다시 삶는다.” 주인공은 강릉 출신인 어머니가 끓여주던 맛을 기억하며 생일을 맞은 아들을 위해 국을 끓인다. 소설 내용과는 별개로 우럭미역국이 나오는 대목마다 침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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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미역국은 곰탕처럼 국물이 진하다. 우럭을 2시간 이상 푹 끓여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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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태광식당은 경포해수욕장에서 가깝다. 해변도로인 창해로를 따라 씨마크호텔을 지나 강문교를 건너면 바로다. 이른 아침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니 구수한 미역국 냄새가 진동했다. 손님 대부분이 미역국을 먹고 있었다. 외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보다 강원도 사투리를 쓰면서 밥을 먹는 사람이 많았다.

우럭미역국을 주문했다. 다양한 생선탕과 생선회도 있었지만 아침식사로는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미역국과 여섯 가지 반찬이 나왔다. 뽀얀 국물에 미역이 듬뿍 들어 있었고 바스러진 우럭 살도 보였다. 국물을 떴다. 으어. 탄성이 나왔다. 두 숟갈, 세 숟갈 들 때마다 옅은 탄성이 이어졌다. 구수하고 개운한 맛이 늘 먹던 소고기미역국과는 결이 달랐다. 국 한 사발에 깊은 바다의 맛이 농축돼 있는 것 같았다. 강릉 사람들이 우럭미역국을 ‘소울푸드(영혼의 음식)’으로 꼽는 이유를 알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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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째 강릉 강문동에서 우럭미역국을 끓이고 있는 원송죽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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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송죽(72) 사장은 강문해변에서 30년째 미역국을 끓이고 있다. 원 사장은 “제가 갓난아이 때부터 어머니가 우럭미역국으로 죽을 쒀서 먹였대요. 70년 이상 이걸 먹은 셈이지요.” 우럭미역국은 산모나 기가 허한 사람에게도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며칠 전에는 서울 강남의 유명 산부인과에서 대량으로 국을 사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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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사람들이 소울푸드로 꼽는 우럭미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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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미역국을 끓이는 방법은 대충 이렇다. 우럭을 왕창 들통에 넣고 30분 정도 끓인다. 그리고 살코기만 발라내 국물과 함께 2시간 이상 푹 끓인다. 그 다음 기름에 볶은 미역과 함께 끓이는 건 다른 미역국과 비슷하다.

찰기가 좔좔 도는 밥과 깔끔한 반찬도 맛있었다. 동해안 횟집에는 반찬을 사다 쓰는 집이 많지만 이 집은 손수 만든 반찬을 낸다. 직접 재배한 배추를 1년 이상 숙성한 젓갈에 담근 김치와 강릉 토속음식인 삭힌 오징어젓갈이 특히 맛있었다. 고등어구이 한 도막까지 깨끗이 발라먹으니 세상 부럽지 않은 포만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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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태광식당의 대표 메뉴는 우럭미역국이지만 생선탕과 생선회 메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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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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