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기자수첩]필요한 '관치'를 주저할 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은행권은 지난주 혼란에 빠졌다. 정부가 은행을 통해 가상통화 거품을 없애려고 하면서 여론의 역풍에 내몰리기도 했다.

지난 8일 금융감독원과 금융정보분석원(FIU)이 가상통화 거래용 가상계좌 특별검사에 나서고, 11일 법무부가 ‘가상통화 거래사이트 폐쇄’ 방침을 발표하자 은행들은 ‘눈치’을 보기 시작했다. 이튿날 신한은행이 실명확인계좌 서비스 도입을 미루기로 하고 15일부터 입금을 금지하기로 결정하기로 한 건 각종 규제에 단련된 은행의 당연한 결정이었다.

당국의 칭찬을 예상했던 은행은 불매운동이라는 뭇매를 맞았다. 청와대에 몰려가 가상통화 거래사이트 폐쇄 반대를 주장한 투자자들이 은행을 상대로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12일 금융당국이 주재한 ‘긴급 회의’에서 은행들은 당국이 해법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당초 가상계좌 실명확인 시스템 구축 실무를 맡은 IT 담당 직원들이 참석할 계획이었지만, 불매운동이 확산되는 등 심상치 않은 여론을 의식해 각 은행은 급을 높여 책임자가 회의를 찾았다.

그러나 참석한 은행들은 기대했던 ‘가이드라인’을 얻지 못한채 ‘빈손’으로 돌아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IT 시스템 구축이 잘 되는지 점검하는 수준으로, 궁금증은 조금도 풀지 못했다”고 밝혔다.

은행권은 “어디로 가라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마땅한 규제 수단이 없는 정부가 은행의 가상계좌 서비스를 고리로 간접 규제하면서 은행도 가상화폐 논란에 휩쓸려 들어갔는데, 정작 금융당국이 ‘이정표’를 제시하는데 머뭇거린다는 불만이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2003년 ‘카드대란’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관치금융’ 논란이 일자 나온 말이다. 이 발언으로 김 전 위원장은 여전히 관치금융의 화신처럼 회자된다.
머니투데이

그러나 시장 원리가 작동하지 않고 경쟁의 ‘룰’이 깨진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말의 속뜻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올바른 ‘타이밍’을 찾아 적절한 수단을 강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잘못되면 멍에를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건 자신이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이 판단을 주저하는 이유다. 그러나 책임을 외면하고 결정을 주저하다 올바른 정책의 타이밍을 놓친 결과는 더 참혹하다는 사실을 공직자는 알아야 한다.

변휘 기자 hynews@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