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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권 천만원어치 산 유커들 "가즈아~ 면세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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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서울 명동의 롯데백화점 앞에 있는 A상품권 점포. 30대 중국인 여성 관광객이 대형 여행 가방을 끌고 점포 앞에 섰다. 그는 여행 가방에서 검정 비닐봉지를 꺼내 진열대에 올려놓더니 “請給我1000万元的樂天百貨商店商品券(1000만원어치 상품권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검은색 비닐봉지에서 1만원·5만원짜리 현금다발을 차례차례 꺼냈다. 1000만원어치 상품권을 사면서 그가 낸 현금은 990만원. 매장 주인에게 상품권을 받은 그는 곧바로 면세점으로 향했다. 한 시간 뒤 그는 한 손엔 여행 가방, 다른 손엔 흰색 명품 쇼핑백을 들고 나타났다.

A상품권 점포 주인은 “요즘 상품권을 사는 손님 10명 중 7~8명은 중국 관광객”이라며 “여행 가이드나 중국 유학생들이 한국에선 상품권을 써야 싸게 쇼핑할 수 있다고 인터넷에서 소문을 내면서 상품권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롯데면세점의 명품 브랜드 직원은 “중국 관광객들은 알리페이(중국의 모바일 결제 수단)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전체의 60% 정도는 상품권을 쓰고 그 비중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6조원대 국내 3대 백화점 상품권 시장에 중국 관광객(유커)들이 ‘큰손’으로 부상하면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유커들이 선호하는 특정 백화점 상품권은 수요가 넘쳐 할인율이 거의 없다시피 비싸게 거래되는 반면 유커들이 사지 않는 백화점 상품권은 예전보다 싸졌다. 명동의 한 상품권 가게 사장은 “2016년 9월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상품권을 찾는 한국 손님들은 크게 줄었지만 그 자리를 중국 관광객들이 채워가고 있다”면서 “중국인들의 상품권 수요가 높아지다 보니 한국인을 사장으로 내세우고 상품권 가게를 여는 중국인도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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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서울 명동의 롯데백화점 앞 상품권 판매 점포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하고 있다. 최근 중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한국에선 상품권을 써야 싸게 쇼핑할 수 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이들이 많이 찾는 롯데상품권 수요가 크게 늘었다./김연정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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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권으로 알뜰 쇼핑하는 유커들
‘롯데 상품권, 어디에서 싸게 살 수 있나요?’ ‘백화점 바로 앞 빨간색 작은 가게에서 사세요.’
중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한국 여행 정보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질문과 대답이다. 한국 면세점이나 백화점에서 쇼핑할 때 현금·카드보다는 상품권으로 사는 것이 이득이란 내용이다. 이때 상품권은 정가가 아니라 할인받아서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 재테크의 핵심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선호하는 백화점 상품권은 롯데다. 롯데 상품권은 현대· 신세계 백화점 상품권에 비해 용처가 많다. 예컨대 롯데 상품권은 롯데와 신라면세점에서 모두 쓸 수 있는데, 두 면세점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1, 2위다. 수요가 많다 보니 명동 일대에선 롯데 상품권 구하기가 쉽지 않다. 9일 명동에 있는 유명 상품권 점포 3곳을 모두 찾아갔는데, 2곳에선 롯데는 물량이 부족하다며 소액 매입만 가능하다고 했고, 나머지 한 곳은 아예 동났다고 했다. 상품권 가격이 차이 나는 이유에 대해 공급 시스템의 차이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는 그룹에서 상품권을 일괄 발행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할 수 있지만 신세계 상품권은 신세계와 이마트가 각각 발행하고 경쟁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발행 규모나 가격 통제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유커가 바꾼 백화점별 상품권 가격
2~3년 전만 해도 롯데·신세계·현대 등 3대 백화점의 상품권 시세는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관광객들이 롯데 상품권을 대량 구매하고, 알뜰 쇼핑 정보를 공유하면서 격차가 벌어졌다. 그렇게 해서 시장에 생긴 게 ‘일이삼 법칙’이다. 롯데 1%, 신세계 2%, 현대 3%의 할인율이 적용되어 거래된다는 의미다. 강남의 상품권 가게 사장은 “롯데 상품권이 가장 비싸게 거래되고 현대 상품권이 홀대받는 건 일종의 시장 원리”라면서 “롯데는 면세점 수가 많고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명품 브랜드도 많이 입점해 있는 반면 현대는 상품권을 쓸 수 있는 곳이 백화점 정도에다 점포 수도 적어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다”고 말했다. 롯데 상품권이 비싸지자 장롱 속 상품권을 팔겠다는 소비자도 있다. 주부 이모(45)씨는 “작년만 해도 9만5000원도 못 받았던 10만원권 롯데 상품권을 지금은 9만8300원씩 높게 쳐준다고 하니 현금으로 바꿀 생각”이라고 했다.

[이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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