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서킷 질주’ 카레이서가 거북이 성화봉송단 운전을 맡은 이유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성화봉송단 핵심 ‘미디어 원’ 운전하는 카레이서 정병민씨

‘질주 본능’ 억누르고 주자 속도 맞춰 시속 3~8㎞ ‘초저속 운행’



한겨레

평창올림픽 성화봉송단 핵심인 ‘미디어 원’ 운전을 책임지고 있는 카레이서 정병민(24·포디엄레이싱팀 소속)씨가 차량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정병민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성화봉송 주자 7500명과 함께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돌며 평창올림픽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2018평창겨울올림픽 성화봉송 행렬에 ‘카레이서’가 떴다. 최고 시속 205㎞로 서킷을 질주하는 현직 카레이서가 평창올림픽 성화봉송단에서 운전을 맡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질주 본능’을 꾹꾹 억누르고 안전을 위해 ‘거북이 운행’에 도전했다.

카레이서 정병민(24·포디엄레이싱팀 소속)씨가 성화봉송단에서 맡은 차량은 보통 ‘미디어 원’으로 불린다. 미디어 원에는 성화봉송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방송 카메라가 장착돼 있다. 성화봉송 주인공인 주자 바로 앞에 있는 차량이다. 성화봉송 주자는 미디어 원만 바라보고 뛰면 된다. 사실상 300m에 이르는 대규모 성화봉송 행렬을 이끄는 핵심 차량인 셈이다.

정씨가 성화봉송단에 선발된 이유는 장시간 운전과 차량 정비에 뛰어난 실력 덕분이다. 그는 2013년 코리아 오픈 카트 내구레이스(KOKER)에서 종합 우승한 실력자다. 내구레이스는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자동차경주를 한 뒤 운전자의 한계와 차량의 내구성을 겨루는 경주다. 지난해 2월 모터스포츠학과를 졸업한 정씨는 운전뿐 아니라 차량 정비에도 능하다. 101일 동안 전국 17개 시·도 137개 시·군·구를 경유해 2018㎞에 이르는 성화봉송길 운행을 책임질 운전자로서 제격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정씨가 아무리 운전에 능숙하다고 하지만 성화봉송 중에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7500명에 이르는 성화봉송 주자들의 달리기 속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정씨가 너무 빨리 달리면 주자가 따라올 수 없고, 너무 느리게 달리면 주자와 부딪칠 수 있다. 뒤에서 달리는 주자 속도에 맞춰 1㎞ 단위로 차량 속도를 섬세하게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특히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축구 스타 차두리가 축구선수 후배 신영록과 함께 성화봉송에 참여했을 때는 몸이 불편한 신씨를 위해 속도 조절에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정병민씨는 “카레이싱 훈련을 하면서 엑셀(가속페달)이나 브레이크를 세밀하게 밟는 연습을 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하면 방송 카메라도 주자를 제대로 찍을 수 없고 주자 안전에도 위협이 된다”고 귀띔했다.

주자 속도에 맞춰 시속 3~8㎞ 정도로 ‘초저속 운행’을 해야 하는 점도 고충이다. 그의 오른발은 가속페달보다 대부분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 성화봉송은 이르면 아침 7시30분에 시작돼 늦게는 저녁 7시 정도에 끝난다. 하루에 정씨가 쉴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 1시간과 오후 30분 정도가 전부다. 나머지는 계속 차 안에서 성화봉송 주자에 맞춰 차량을 운전해야 한다. 하루 최대 10시간 정도 성화봉송 주자를 신경 쓰며 느린 속도로 운전하는 것은 시속 205㎞로 달리는 레이싱 경기보다 훨씬 더 체력 소모가 심하다. 홀로 장시간 운전을 하다 보니 졸음과 사투를 벌여야 할 때도 다반사다. 정씨 옆자리에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성인용 기저귀까지 준비돼 있다.

정씨가 성화봉송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1일. 성화와 함께 전국을 떠돈 지 70일이 넘었다. 주말도 따로 없다. 중간중간 성화봉송이 멈출 때 6~7일 정도 쉰 것이 전부다. 제대로 쉴 수도 없고, 가족을 만나기도 어려운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정병민씨는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생애 첫 올림픽에 작은 힘을 보탤 수 있게 된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정씨는 “개막식 때까지 안전하게 성화를 봉송하고, 다시 꿈을 위해 카레이서 인생을 살겠다. 101일 동안 성화봉송 일정은 평생 가슴에 감동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