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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레 미제라블` 만들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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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500만명 돌파한 영화 '1987' 장준환 감독

매일경제
"한국의 '레 미제라블'을 만들고 싶었어요."

지난 13일 관객 500만명을 돌파한 영화 '1987' 장준환 감독(48)은 자신의 연출작을 한국의 '레 미제라블'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 영화가 배경으로 삼는 6월 항쟁이 프랑스 혁명에 견줄 만큼 찬란한 역사라는 뜻이다. "민중들이 그 서슬 퍼런 시기에 비록 미완일지라도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토대를 만들었잖아요. 역사의 아름다운 한순간을 통해 우리 현재를 비출 수 있는 거울 같은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 감독은 '1987'을 '레 미제라블'급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도 영화의 리듬감에 집중했다.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데도 관객이 호흡을 유지하면서 따라올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 오래 걸렸어요. 파일 제목은 '최종고'로 잡아 놓고 뒤에 날짜만 바꾼 시나리오가 수십 개예요."

'1987'은 특히 주동-반동 인물 간 대립 구도 설정이 탁월하다는 평가다. 관객이 감정이입하며 보는 배우가 하정우, 이희준, 유해진, 김태리, 김의성, 고창석으로 분화하는 동안 그 반대편에 선 배우는 김윤석으로 고정돼 있다. "박 처장(김윤석)이라는 악의 축에 대항해 모든 사람들이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 싸움을 하는 구도에 관객을 동참시키는 게 제 바람이었어요. 그런 도전적인 부분이 없었다면 저를 움직이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장 감독에게 큰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전작 '지구를 지켜라'(2003), '화이'(2013)로 호평을 받고도 흥행을 맛보지 못했던 그가 만든 첫 대박 영화기 때문이다.

앞의 두 작품에 없었던 흥행 공식이라도 찾았냐는 질문에 그는 "그 영화들이 없었으면 오늘의 '1987'은 없었다"고 답했다. "'지구를 지켜라' '화이'가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인간성을 탐구한다면 '1987'은 망원경으로 전체 인간 세상을 조망하는 작업이죠. 하지만 현미경을 사용해본 경험이 없었다면 과연 망원경을 잘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한 현미경을 쓰든 망원경을 사용하든 인간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건 같은 작업이라고 생각하고요."

정작 감독이 걱정했던 부분은 흥행 스코어가 아닌 개봉 전 열린 영화 속 실존 인물 대상 시사회였다.

"그 부분이 항상 마음의 짐이었는데 열사님, 유가족들에게 혹시 폐가 되지 않을까 굉장히 노심초사했던 것 같아요. 당일 박종철 열사 형님하고 누님이 와서 '그동안 이 소재를 가지고 영화, 연극이 기획됐는데 제대로 만들어진 게 없어서 기대를 많이 안 하고 오셨다'고 하더군요. 상업성에 집중해 감정에만 호소할까봐 걱정된다고. 그런데 영화를 본 다음에 '정말 잘 봤다'고 말씀해주셔서 시름을 크게 덜었어요. 그건 제게 흥행보다 중요한 거였어요."

그를 긴장하게 만든 또 한 번의 시사회가 있었다. 바로 아내인 배우 문소리가 참여한 기술 시사회다. "문소리 씨가 영화를 본 후 많이 울고 가더군요.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았는데도 그 안에서 여러 가지 감정과 이야기가 전달됐습니다. 같이 울어준 게 큰 칭찬처럼 느껴졌어요."

장 감독은 이날 숫자 1987이 또렷이 새겨진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문소리가 스태프 모두에게 나눠 쓰라고 주문 제작한 모자다. "스태프 모두가 좋아했죠. 그런데 알고보니 김태리 씨도 모자를 몰래 준비하고 있었더군요. 현장에 모자 풍년이 났습니다."

일각에서는 '1987'이 386세대의 무용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6월 항쟁을 주도한 사람들은 왜 아파트값을 올려놓았으며, 30년 뒤에 우리는 왜 또 광장에 나가야 했느냐는 비판 말이죠? 저는 '1987'이 (역사를) 완벽히 정리하는 영화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김태리와 강동원이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을 부르면서 영화가 끝나는 것처럼 우리 앞길도 그렇게 선명한 것 같진 않아요. 하지만 오래된 앨범에서 어렸을 때 순수한 얼굴만 봐도 에너지를 느끼고,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되잖아요. 그런 오래된 사진첩 같은 영화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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