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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AI영재고 만든다더니…결국 없던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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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영재 정부보고서 단독 입수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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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영재고(AI 영재고) 신설, 미래형 대학 입학 전형 도입 등 정부가 추진했던 인공지능(AI) 영재 육성 정책이 '교육평준화'라는 정치 논리에 밀려 대거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대신 기존 초·중·고에 있는 영재학급과 영재교육원, 영재고를 중심으로 AI 영재 교육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정보기술(IT) 분야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데, AI 영재를 발굴하고 키워내는 교육 정책은 평준화 논리에 밀려 뒷걸음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이달 말 발표 예정인 '제3차 과학영재발굴육성 종합계획'에 AI 영재고 신설, 미래형 대학 입학 전형제도, 지능정보대학원 신설 등 IT 분야 영재 육성 핵심안이 모두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과기정통부는 지능영재 교육 정책수립을 위해 지난해 5월 이재호 경인교대(컴퓨터교육과) 교수팀에 연구 용역을 발주했고 최근 용역이 마무리됐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이 교수 연구팀의 '국가를 선도하는 지능정보영재 양성을 위한 교육방안 연구' 보고서는 "'영재학교'를 새로 설립하는 것은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면서 "기존의 '영재학교' 체제를 유지하면서 이들 가운데 '지능정보기술 창조교육'에 특화된 영재학교를 선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AI 영재고 신설은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우려가 있어서 일단 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며 "특목고 설립 또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하는 부분이어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미래형 대학 입학 전형 도입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AI 특기자, SW 인재를 위한 대입 전형을 새롭게 검토한다는 안이었는데 입시제도를 바꾸는 것은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한 부분이고 대학과도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어서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교육정책을 책임지는 교육부가 교육 평준화에 쏠려 있기 때문에 과기정통부가 SW 인재 집중 육성을 원한다고 해도 부처 간 이견이 크면 추진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그는 "현재 정부 분위기상 이번에 발표될 '영재 발굴 종합계획'은 새로운 것을 더하기보다 기존 교육 체계상에 보완하는 게 주안점이 될 것"이라며 "특목고나 특목중이 아니라 초·중·고에 있는 기존 영재학급과 영재교육기관을 활용해서 영재수업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2016년 정부는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한 지능정보사회 중장기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구글 AI 개발사 딥마인드가 만든 알파고가 바둑 고수 이세돌을 4승1패로 가볍게 이기면서 사회가 '알파고 쇼크'에 빠진 상태였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겠다며 "'지능정보 종합대책'은 경제, 사회, 교육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최초 혁신 플랜"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지능정보 종합대책'에서 교육 부문을 담은 '미래교육 혁신안'이 관심을 모았다. 알파고를 만든 데미스 허사비스(딥마인드 설립자) 같은 'AI 천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매일경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기정통부)는 "창의적 지능정보 영재 5만명을 조기 발굴하겠다"고 했다. 그 방법으로 AI 영재고 신설, 미래형 대학 입학 전형제도 실시, 지능정보대학원 신설을 추진할 것을 검토한다고 했다. AI 교육에 특화된 고등교육기관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1년이 지난 지금 이 계획이 다 무산됐다. 그리고 기존 초·중·고에 있는 영재학급과 영재교육원, 영재고를 중심으로 AI 영재교육을 강화한다는 정부안에 대해 전문가들은 "하나 마나 한 정책"이란 평을 내놓고 있다.

기존 영재교육 기관은 영재고와 과학고를 뜻하는데 이곳에서는 수업이 수학과 과학 등 대입 전형 중심으로 짜여 있어 지능정보사회에서 요구되는 역량을 습득하기 어렵다. 영재고에서 정보과학 시수는 전체 수업 중 13.3%로, 수학(23.8%), 과학(62.9%)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과학고의 '정보과학' 시수는 학교에 따라 3.1%에서 6.8%로, 과학이 65%, 수학이 30%인 것에 비해 너무 적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대한민국에서 특목고 커리큘럼은 대입을 기준으로 짜여 있다"며 "대입 전형을 바꾸지 않은 채 정보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교사는 "컴퓨팅 분야는 특출난 소수가 변화를 이끈다. 이러한 영재를 일찍 발굴하고 차별된 교육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정부 정책이 사교육 부작용이 두려워서 수월성 교육을 포기한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SW 정책도 표류 중이다. 올해부터 중학교에서는 SW 교육이 의무화됐다. 하지만 이를 위한 준비는 부족하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조사한 '2016학년도 초·중학교 교육정보화 실태 조사·분석'에 따르면 전체 중학교 가운데 정보·컴퓨터 교과 담당 교사를 확보한 비율은 약 30%에 불과하다. 중학교 10곳 가운데 7곳은 정보·컴퓨터 교과 담당 교사가 없어 타 과목 선생님이 컴퓨터를 가르쳐야 한다는 얘기다. 교육에 필요한 자재도 없다. 중학교 전체 학교 가운데 PC(데스크톱)를 보유한 비율은 62%에 그쳤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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