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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市場 못 이기는 정부] 설익은 대책에 시장 롤러코스터...블록체인 신사업마저 씨 마를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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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場 못 이기는 정부]

<Ⅴ> 경제팀 위기대응 능력 도마에-가상화폐

법무부 발표 반발에 靑·부처 엇박자로 혼선 키워

시장 투기판화 부채질...애꿎은 피해자만 더 양산

서울경제

지난해 말부터 보여온 정부의 가상화폐 대책은 그야말로 혼선의 연속이었다. 더구나 가상화폐 대책의 중심이 돼야 할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과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가 아닌 법무부가 맡으면서 대책은 강경 일변도로 진행됐다.

문제는 법무부의 스탠스를 그대로 유지하면 논란에도 불구하고 별문제 없이 시장이 조기에 안정화됐을 수도 있었는데 청와대와 다른 부처가 잇따라 ‘다른’ 메시지를 시장에 보내면서 그야말로 시장은 대책이 나왔을 때는 급락했다가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급등하는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했다. 이 때문에 애꿎은 피해자를 더 많이 양산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 거래되는 가상화폐 가격이 글로벌 시장에서 거래되는 동일한 가상화폐보다 30~50% 높게 형성되는 ‘코리아 프리미엄’이 발생하기도 했다. 급기야 한 글로벌 업체가 한국의 가상화폐 시세를 국제시세에서 제외하는 등 한국 가상화폐 시장의 버블이 국제적인 망신을 살 정도로 혼탁해지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가상화폐에 대한 오랜 연구 등을 거쳐 규제방안을 마련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강 건너 불구경’만 하다 뒤늦게 급조해 대책을 내놓다 보니 현실과 맞지 않는 괴리현상도 나왔다. 한 예로 가상화폐 거래에 나선 투자자들이 300만명으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근거법도 없이 가상화폐거래소를 폐쇄한다는 발상이 오히려 시장의 내성만 키우는 꼴이 됐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도 가상화폐나 이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에 대해 학습하는 단계에서 대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며 “정부에서 과열이라며 대책을 내놓으라고 하니 기존 시장에 써먹었던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가상화폐 등은 4차 산업혁명의 단초가 되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데 과거 규제로 이를 잡으려는 발상 자체가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도 “정부 여러 부처에서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며 “매번 느끼는 거지만 당국자 중 이 분야 전문가가 정말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경고했듯 가상화폐 거래가 투기 양상으로 치닫고 사회병리 현상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투기세력만 정교하게 솎아내거나 아니면 시장이 그야말로 초긴장할 수 있는 대책을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여야 하는데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면서 이도 저도 아닌 게 돼버렸다는 것이다.

실제 인터넷 등에서 20~30대 중심의 투자자들이 정부 대책에 반대하는 댓글을 확산시키면서 스스로 정치세력화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도 정부의 정책혼란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일관된 정책을 밀고 나가야 했는데 중간에 댓글 등의 여론을 의식해 자꾸 대책을 바꾸면서 오히려 투자자들의 세만 키워준 꼴이 됐다는 것이다.

정부가 아마추어 같은 대책을 보이면서 시중은행 등 금융권의 블록체인을 활용한 신산업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6월 가상화폐를 활용한 해외송금 서비스 개발을 검토했지만 무산됐다. 해외 중계 은행을 거쳐야 해 통상 1~3일이 걸리는 기존 은행 송금에 ‘S코인(가칭)’이라는 자체 개발 코인 및 거래소를 활용해 송금 시간과 비용을 아끼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금융당국과의 사전 협의에 실패했다. 해외에서 블록체인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신기술로 각광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가상화폐와 동일 개념으로 인식되면서 비난 여론을 의식해 금융권이 스스로 중도에 포기해버렸기 때문이다. 당국의 부정적인 인식도 한몫하고 있다. 괜히 승인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반 상품에 당국이 부정적이 인식을 보이면서 금융권의 사업이 방향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해킹 등 위험에 노출된 거래소 대신 가상화폐를 블록체인 기반하에 안전하게 보관해주는 ‘가상화폐 금고 서비스’도 국내 은행권 최초로 시도했지만 내부 테스트만 진행됐을 뿐 상용화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하나금융그룹 통합 멤버십 포인트 ‘하나머니’를 활용한 해외송금(글로벌로열티네트워크·GNL) 구축에 나선 하나은행이나 ‘위비코인(가칭)’을 개발 중인 우리은행도 당국이나 여론의 부담 때문에 진행속도가 늦춰질 우려가 있는 상황이다. 은행권 고위관계자는 “신사업 검토 단계에서 일단 금융당국의 의견을 묻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가상화폐와 조금만 연관돼 있어도 ‘안 하는 게 좋겠다’는 답이 돌아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적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가상화폐 트레이딩 전담팀을 준비하고 있는 실정인데 정부의 흑백논리로 지금과 같이 중요한 시점에 우리나라 블록체인 기술이 글로벌 흐름에서 뒤처지고 있어 아쉽다”고 설명했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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