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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급식체’ 쓰는 마당놀이 ‘심청’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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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남산 국립극장서 3년 만의 공연

현세태 맞게 해학·풍자 업데이트

‘적폐’ 뺑덕·‘알바’ 심청 등 웃음보

김성녀 감독 “모든 세대 공감할 것”



한겨레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국립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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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허세 부리는 철없는 심봉사, 심봉사가 올린 글에 속아 부자인 줄 알고 결혼했다며 억울해하는 ‘봉사 전문 꽃뱀’ 뺑덕어멈,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버지를 부양했지만 인당수에 빠질 때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다고 세상에 일침을 날리는 심청이까지.

3년 만에 돌아온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는 우리가 알던 고전 <심청전> 속 인물과는 면면이 다르다. 원작의 뼈대는 그대로인데 요즘 세태에 맞춰 지극히 현실적이고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 다시 태어났다. 2014년 초연 당시에도 ‘땅콩 회항’ 사건을 풍자해 “청아, 땅콩은 접시에 담아 왔느냐” 등의 대사로 객석을 뒤집어놓은 풍자는 지금 시점에 맞춰 진화했다.

해학과 풍자로 민중의 슬픔을 달랬던 마당놀이답게 <심청이 온다>는 각박한 현실을 비튼다. 심청이처럼 아르바이트하는 소녀 가장들이 떼로 나와 “남은 건 빚뿐, 가진 건 몸뿐, 달리고 달려도 제자리일 뿐”이라고 노래하며 고달픈 청춘들의 현실을 고발한다. 인당수에 빠지는 심청이에게 약해빠진 청년세대라고 나무라는 어른들의 시선엔 심청이도 할 말이 있다. “어서 빨리 뛰어들라 등만 떠밀어놓고, 뭐요? 현실 도피적 자살행위? 오케이, 인정! 나 현실 도피했어요. 그것밖에 길이 없었으니까!” 정치권의 행태를 꼬집는 대사들은 폭소를 자아낸다. 뺑덕어멈은 “선서하고 진실 말하는 놈 못 봤다”며 선서 없이 자기 행동을 변호한다. “적폐청산”을 수시로 외치면서 빼돌린 재산은 뻔뻔하게 ‘특수활동비’로 썼다고도 주장한다. 심봉사는 “세상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비리와 적폐로 꽉 차 있어 스스로 눈을 감았다”며 허세를 떤다.

‘깨알 같은’ 웃음 장치들도 흥미롭다. 요즘 중고등학생처럼 배우들은 ‘오지고 지리고’(엄청나다, 대단하다) 등 ‘급식체’를 쓰고, “공기 반 소리 반”으로 노래하다가도 때때로 힙합 경연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의 참가자처럼 속사포 랩을 쏟아낸다. 심봉사가 도망간 뺑덕어멈을 찾다가 만난 나그네들은 하키채와 성화를 들고 “평창으로 놀러 오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사라지기도 한다.

마당놀이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관객이 함께 참여한다는 점이다. 공연 전에는 엿장수로 분장한 배우들이 실제로 엿을 팔면서 흥겨운 분위기를 띄우고, 극이 진행될 땐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예상치 못한 웃음을 안긴다. 공연 막바지에는 떠들썩한 잔치판의 일부가 되어 춤도 추고 인증샷도 남길 수 있다.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마당놀이는 잔치·축제처럼 함께 즐기는 살아 있는 극이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국립극장 하늘극장, 2월18일까지.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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