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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제천 여성학살? 여혐반대 시위, 女기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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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 꺼져" 여성 불안감 투영 …전문가들 "극단 주장 위험, 사회적 의미는 고민해야"]

머니투데이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걷고싶은거리에서 제천 화재 참사를 '여성 학살 사건'으로 규정하는 시위가 열렸다./사진제공=여초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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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한남(한국 남성에 대한 비하 표현)이다!", "몰카충(불법촬영하는 사람을 경멸하는 말) 꺼져라!"

여성 시위 참가자들이 시위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찍던 한 남성을 향해 소리쳤다. 원치 않는 관심에 대한 불쾌감을 넘어 남성을 향한 혐오마저 느껴졌다. 남성은 억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걷고싶은거리에서 열린 '제천 여성 학살 사건' 시위 현장의 모습이다. 워마드 등 극단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결성된 집회 주최단체(여초연합)는 충북 제천 화재 참사가 피해자들을 여성이란 이유로 구조하지 않은 여성 학살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날 시위 참가 자격은 '여성'이었다. 관련 온라인 카페에 가입할 때 승인을 위한 질문은 "트랜스젠더는 여성입니까?" 등이다. 성 소수자를 거르기 위한 질문으로 보였다.

이날 오후 2시 30분쯤 참가자가 10여명이 모이자 시위가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피켓과 응원가·구호가 적힌 종이, 깔개를 받고 자리를 잡았다. 오후 3시가 되자 주최 측 포함 50여명이 모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제천 화재가 여성 학살 사건이자 여성 혐오 사건이라는 주장을 유명 아이돌 노래에 담았다. "여성 학살 가해자는 너야 너, 너야 너! 끝까지 진상규명 해라 해, 해라 해!"라고 불렀다.

이들은 "제천참사 여성혐오 재난이다", "대한민국 여성안전 확보해라"는 구호도 외쳤다. 사고 당시 남성 관리자가 2층 여탕만 빼고 대피하라 했으며 사고 이전에도 여탕은 관리인이 없었고 안전점검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여성으로서 느껴왔던 평소 불안과 공포, 피해의식이 여성 피해자가 유독 많았던 이번 제천 참사에 투영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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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걷고싶은거리에서 '제천 여성 학살 사건' 관련 시위가 열렸다./사진제공=여초연합




시위에 참여한 모습에서도 여성의 '불안감'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행여 신원 노출로 불이익을 받을지 몰라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마스크를 갖고 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다른 참가자들이 마스크를 나눠주기도 했다. 여성끼리 서로 보호해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한 참가자는 "예전 강남역 살인 사건 시위에서는 얼굴을 가리지 않고 참가했지만 온라인에서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아 이제는 마스크를 꼭 끼고 나온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사진을 찍는 행인들을 볼 때마다 비난하며 소리 질렀다. 행인에게 달려가 사진을 지우게 하는 게 이날 주최 측의 주된 임무였다. 일부 행인들은 "사진 찍는 것 자체가 불법도 아닌데 왜 지워야 하나"며 반발했다.

시위에 반대하는 남성들이 접근하기도 했다. 어떤 남성은 옷 위에 "여성차별이 잘못이라면 남성차별도 잘못입니다" 등의 글귀를 적은 종이를 붙였다. 다행히 시위는 이날 오후 5시쯤 별다른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전문가들은 제천 화재 참사를 젠더 문제로만 환원하는 건 불필요한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모든 문제를 여성혐오로 환원하고 남성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인식이 퍼질 수 있는 위험성이 도사린다"며 "남성도 여기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서 또 다른 폭력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극단 성향 집회라도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곱씹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민숙 전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의도적으로 여성을 노린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제천 참사를 여성혐오 사건이라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할 것이란 불신이 강해 '제천 화재도 여자라서 피해 입었다'는 의구심이 생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허 전 교수는 "이런 시위를 흥미 위주로만 보기보다 이들이 왜 이런 생각을 갖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극단적 주장이라도 사회에 던져주는 고민거리를 살펴야 사회 갈등을 줄이고 성숙한 사회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보라 기자 purpl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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