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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을 기다려 3분만에 끝난 삼성의 첫 단체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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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총에 전권 위임한 사측···노조 반발로 파행

무려 80년 만에 열린 삼성그룹의 첫 노사 단체교섭이 파행으로 끝나기까지는 채 3분이 걸리지 않았다. 교섭을 하러 나온 삼성웰스토리의 대리인인 한국경영자총협회 측도, 교섭권을 얻어 사측을 만나러온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웰스토리지회도 이 같은 상황을 전혀 예상치 못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상견례’라고 하기에도 민망했던 이날 노사 간 첫 만남은 ‘삼성에서 노조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기도 힘들지만, 노조가 제 역할을 하기까지는 아직까지 넘어야 할 장벽이 너무도 많다는 뜻이다. 사측의 불성실한 교섭태도 등을 이유로 노조 측에서 강경대응을 예고한 가운데 양측 간 대립이 그룹 내 첫 파업 등 노사갈등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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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협권 위임에 노조 반발

삼성웰스토리지회는 2017년 10월 기준 64명의 노조원을 확보해 사측으로부터 다수 노조로 인정받았다. 사측은 지회에 사내 설립된 한국노총 소속 제2노조와의 단체협약 창구 단일화를 요청했고, 양 노조 간 단일화가 실패하면서 다수 노조인 지회 측이 단독 단협권을 가져가게 됐다. 이에 따라 사측과 지회는 단협 개최를 위한 수순에 들어갔고, 이는 삼성그룹 창립 80년 역사상 첫 번째 노사 단협으로 재계와 노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상견례를 한 번 연기한 것부터 께름칙하더라고요.” 삼성웰스토리 임원위 지회장의 말이다. 본래 지난해 12월 개최될 예정이던 사측과의 첫 상견례는 사측의 “다음번에 하자”는 요청으로 한 번 미뤄졌다. 그렇게 해서 다시 잡힌 상견례일이 지난 1월 10일이었다. 하지만 노조 측으로서는 수상쩍은 일이 또 생겼다. 사측이 상견례 장소라며 통보해온 곳이 회사가 아닌 외부 장소였기 때문이다. 회의실 등을 전문적으로 대여해주는 경기도 분당의 한 건물이었다.

“그래도 설마하며 회사를 믿었다”던 임 지회장의 기대가 산산조각난 건 상견례가 열리기 불과 이틀 전인 1월 8일이었다. 회사가 공문을 보내왔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공문 내용을 보면 사측은 “당사는 귀 노조와의 임금 및 단체교섭과 관련하여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사측 교섭대표위원으로 위촉하여 단체교섭권 및 단체협약체결권, 교섭위원 선정권을 위임하였음을 통보하여 드립니다”라고 적었다. 결과적으로 회사가 노조와 직접 대면해 교섭하지 않겠다는 통보였다.

회사가 상견례 장소를 외부로 잡을 때부터 교섭권 위임 가능성을 노조가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이미 삼성전자 서비스지회의 사례도 있다. 그래서 두 달여 전부터 엄동설한에 회사 앞에서 성실교섭을 요청하는 1인시위도 해왔던 터다.

그렇게 시작된 상견례가 잘될 리 없다. 사측 위임을 받아 자리에 나온 경총 관계자들은 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위임장을 내밀었다. 위임장에는 공문과 마찬가지로 단협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경총에 위임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냉랭한 기운이 감돌기도 잠시, 임 지회장 및 상견례를 함께 하기 위해 나온 상급단체 금속노조 관계자들은 “사측과 직접 협상하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삼성웰스토리가 단협과 관련된 전권을 경총에 위임한 건 합법적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9조에서는 노조와 사측 모두 단협권을 위임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위임할 경우 권한의 범위나 그 효력에 대해서는 별도로 명시한 내용이 법에는 없다. 위임한 측에서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위임사실만 통보하면 된다.

노조 측은 위임을 받은 경총과는 테이블에 앉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임 지회장은 “하다못해 작은 중소기업들도 상견례에는 직접 회사 관계자들이 나온다”며 “단협 전권을 제3자에게 위임하고, 상견례조차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사측이 노조를 협상 대상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사측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웰스토리 관계자는 “회사가 단협에 대한 경험이 없고, 지회 역시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와 함께 상견례에 나올 예정인 만큼 경총에 권한을 위임해 단협에 나서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며 “단협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노조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밝혔다.

대기업이 경총에 단협을 위임하는 건 드문 일이다. 경총 관계자는 “최근에는 대기업이 단협권을 위임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면서도 “삼성웰스토리건의 경우 협상이 진행 중이라 구체적으로 경총 입장을 밝히기는 곤란하다”고 전했다.

단협 경험이 없음을 위임사유로 밝힌 사측의 말도 그대로 믿기 어렵다. 지난해 대법원에서 삼성이 작성한 것으로 인정된 ‘S그룹 노사문건’을 보면 삼성은 2011년 그룹 차원에서 인사임원 167명, 협상전문가 192명 등을 대상으로 모의단체교섭을 총 4회 실시한 것으로 나온다. 그룹 인사·노무를 총괄했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게 불과 1년 전 일임을 감안하면 경험문제가 위임의 주된 사유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삼성에스원 단협도 진통 예상

그렇다면 사측이 단협을 경총에 위임한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노동계에서는 노조의 협상력을 떨어뜨리기 위한 전형적인 ‘수법’으로 바라본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단협권을 위임하면 당연히 노조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협상이 진전되지 않고 늘어지게 된다”며 “협상이 어려워질수록 노조의 협상력은 약해지고 이는 곧바로 노조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재계에서는 금속노조가 단협에 참여한 데서 원인을 찾고 있다. 한 대기업 인사노무담당 관계자는 “민주노총에서도 ‘강성’으로 손꼽히는 금속노조와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는 걸 부담없이 받아들일 대기업은 없다고 보면 된다”며 “삼성웰스토리 입장에서는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완충지대’를 마련한 셈”이라고 밝혔다.

분명한 사실은 80년 만에 성사된 삼성그룹의 첫 단협이 앞으로 가시밭길을 걷게 됐다는 점이다. 노조는 사측에 직접 협상을 요구하며 “1월 17일에 회사로 직접 찾아갈테니 거기서 얘기하자”고 일방 통보한 상태다. 사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위임을 통한 협상을 고집할 경우 단협 자체가 무산되고 양측 간 갈등이 격화될 수 있다. 파업 등과 같은 쟁의까지 발생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사측이 법에 규정된 ‘성실교섭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를 놓고 법적 공방도 예상된다.

곧 진행될 삼성에스원의 단협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관건이다. 지난해 출범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삼성에스원은 최근 40명 이상의 노조원을 확보해 다수노조로 인정받았다. 삼성에스원에는 2000년에 설립된 노조가 하나 더 있다. 이 때문에 단협창구 단일화 등이 관건이었지만 사측은 양 노조에 “각 노조와 개별 단협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사측이 복수노조와 각각 단협을 벌이는 건 노동계에서 복수노조가 허용된 이후 가장 경계하고 있는 사안 중 하나다. 어느 한쪽 노조에 더 유리하게 협약을 체결해줄 경우 상대적으로 다른 노조의 결집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삼성에스원 노조도 벌써부터 이를 걱정하고 있다.

노조의 연승종 부위원장은 “2000년에 설립됐다고는 하지만 18년간 아무 활동도, 존재감도 없던 노조와 단협을 하겠다는 사측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며 “단협 차별화를 통해 민주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전략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밝혔다. 노조 측은 삼성웰스토리처럼 단협 직전에 사측이 제3자에게 단협을 위임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에스원 관계자는 “법이 복수노조를 허용한 취지에 맞게 소수노조도 존중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양 노조와 각각 단협을 진행하게 된 것”이라며 “법과 절차에 따라 성실하게 협상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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