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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진상규명을 말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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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는 내년이면 10주기가 된다. 참사 당시 용산4구역 철거대책위원장이었던 이충연씨는 “참사 10주기가 다 돼가도록 진상규명은 한 발도 내딛지 못하고 있고, 정치권과 구체적인 이야기도 진행이 안 되고 있다”며 “10주기가 지나면 용산참사는 그냥 과거 속에 묻히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앞으로 진상규명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이 진상규명을 이야기할 마지막 시기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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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보고서의 7가지 과제

법적으로 용산참사는 당시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하던 철거민들의 화염병으로 인해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끝났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경찰 진압작전의 지휘 책임자였던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현 자유한국당 의원) 등 경찰 지휘관에게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다. 반면 현장에서 생존한 철거민 등 25명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용산 철거민들은 비극의 책임을 온전히 자신들에게만 돌리는 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입장이다. 시민단체가 구성한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진상조사단(현재는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은 2009년 2월 23일 355쪽에 달하는 진상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충연씨는 “당시 제기했던 진상규명 과제들 중 무엇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당시 보고서에서 진상조사단은 7가지의 진상규명 의제를 제안했다. 조사단은 무엇보다 경찰의 진압작전 전반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봤다. 용산참사 전날인 2009년 1월 19일 열린 경찰의 현장대책회의에서 경찰 특공대 투입이 결정됐다. 경찰은 백동산 당시 서울 용산경찰서장이 특공대 투입을 건의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보고서는 “(검찰이) 전적으로 경찰의 주장에 동조했을 뿐 객관적인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즉, 경찰 수뇌부 중 말단이었던 백 전 서장에게만 책임을 돌리고 경찰 윗선에 대해서는 수사가 부실했다는 것이다.

용산참사 당일 경찰 특공대 진압과정도 진상규명의 대상이다. 보고서는 경찰이 1차 진입 시도 당시 망루에서 이미 화재가 발생했고, 남일당 건물 옥상에 다량의 인화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2차 진압을 시도했고 결국 참사가 발생했다. 진상조사단은 이 과정에 대한 수사가 불충분했다고 보고 있다.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부실수사도 진상규명 과제 중 하나다. 참사 이후 검찰 특수수사본부는 김 의원에 대해 두 차례 서면조사를 실시했다. 다른 경찰 간부들은 김 의원이 특공대 투입이 논의되던 현장대책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의원도 경찰 진압작전 당시 무전기를 켜놓지 않아서 상황을 몰랐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외에도 진상조사단은 용산4구역 재개발조합과 철거용역업체에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봤다. 진상조사단은 용역업체 직원들이 철거민들의 옥상 농성이 시작된 이후 건물 3층에서 폐타이어와 목재 등을 태워 연기를 위로 올려보내고 방화를 시도했다고 밝혔다. 또한 용역업체 직원이 농성자들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하고 그 옆에서 경찰이 방패로 용역업체 직원을 보호하는 장면이 방송사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이에 진상조사단은 용역업체와 경찰이 사실상 ‘합동작전’을 벌였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검찰은 용역업체 직원 몇 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참사 직후 진상조사단은 재개발조합, 용역업체와 용산구청, 조직폭력배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재개발 업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용산구청이 재개발조합과 철거민들의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용산 철거민들은 용산참사의 가장 큰 쟁점인 화재의 원인에 대해서도 국가기관이 객관적인 자세로 재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적으로는 철거민들의 화염병이 화재의 원인이다. 그러나 철거민들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다른 요인으로 인한 화재 가능성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참사 당시 망루 2층에는 10㎾ 규모의 발전기 한 대가 있었다. 철거민들은 경찰 특공대의 진압과정에서 망루가 기울어지면서 발전기와 인화물질이 접촉해 화재가 났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참사 직전까지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었다는 철거민들의 증언도 있다. 이 말대로라면 참사의 책임을 온전히 철거민들에게만 씌울 수는 없는 것이다.

반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발전기 스위치가 꺼진 상태였다고 밝혔다. 철거민들의 변호인이었던 김형태 변호사는 발전기가 실제로는 켜져 있었을 가능성에 주목했으나 황당한 이유로 진실을 밝히는 데 실패했다. 김 변호사의 2013년 저서 <지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은 “검사에게 발전기 스위치를 제출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이 황당했다. 국과수에서 발전기 스위치를 분실했다는 거였다”라고 적혀 있다. 이 외에도 철거민들은 유독 화재가 발생한 전후에만 경찰 채증 영상이 보이지 않는다며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화재 원인에 대한 재조사 요구

참사 발생 당시만 해도 정치권이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움직인 흔적이 남아있다. 철거민들과 유가족들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요구했고, 당시 야권이었던 민주당·민주노동당 등이 이에 호응한 것이다. 그해 6월 7일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 등 민주당 의원들은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정세균 대표는 “용산참사의 피해자를 가해자로 바꿔놓고 진실을 은폐하는 이명박 정권은 정말 비정한 정권”이라며 “국회가 열리면 제1야당으로서 유족과 국민의 억울함과 사태의 진상을 밝히고 끝까지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선 2009년 4월 22일에는 이정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과 야당 의원 65명이 용산참사 진상규명 특별검사법을 발의했다. 특검법은 김석기 전 서울청장 등 당시 경찰 수뇌부뿐만 아니라 용산4구역 재개발조합, 철거 용역업체, 건설사 등을 수사대상으로 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용산참사 직후 검거된 연쇄살인범 강호순을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을 잠재우는 데 활용했다는 의혹도 특검의 수사대상이었다. 하지만 특검법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논의대상에조차 오르지 못한 채 2012년 5월 국회 임기가 종료됨에 따라 자동 폐기됐다. 현재 20대 국회에서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관련한 법안이 발의된 것은 없다.

용산 철거민들은 2월 임시국회에서 용산참사 진상규명 법안에 관한 논의가 시작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철거민들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와 비슷한 형식의 조사위원회에서 참사의 진상규명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경찰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와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도 용산참사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지만, 경찰·검찰과 독립적인 기구에서 조사를 해야 객관적인 조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용산 철거민들은 2009년 특검법과 세월호 특조위법을 참고한다면 용산참사 특별법을 이른 시간 내에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충연씨는 “조사위원회에 강제로 수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9년간 용산참사 진상규명위도 자체적인 진상규명을 시도했다. 2013년 출소한 철거민들을 한데 모아 현장을 재구성하기도 했고, 용산참사 당시 경찰관과 시공사·용역업체 직원과의 접촉도 시도했다. 그러나 민간 차원의 진상조사는 쉽지 않았다.

용산참사 철거민 김성천씨(당시 정금마을 철거대책위원장)는 “철거민들의 마음속에는 용산참사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다. 사면·복권과는 별개로 진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용산참사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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