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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시장도 판매 나선다…美 샌프란은 ‘대마천국’? 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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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샌프란시스코의 필수 관광지 중의 하나인 헤이트-애쉬버리 거리에 나가봤습니다. 기호용 대마초까지 허용됐다고는 해도 공공장소에서 피는 것은 여전히 불법이지만, 히피들의 근거지답게 지난해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모습으로 길거리에서 대마초를 말아 피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담배는 맛이 없고 마리화나가 좋다며 매일같이 피운다고 말했습니다. 부작용은 없냐고 물어보니, 입이 자주 마르고 공복감을 자주 느낀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들의 입술 주변은 하얗게 말라붙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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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헤이트-애쉬버리 거리(Haight-Ashbury St.)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는 사람들. 이 지역은 1960년대부터 히피가 무리 지어 살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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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샌프란시스코 시내뿐만 아니라 베이 지역의 다른 도시에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도 마리화나 냄새는 수시로 코를 찔러댑니다. 분위기가 한층 자유로운 대학가 버클리 다운타운으로 가면 개를 데리고 있는 히피 커플이 길바닥에 둥지를 틀듯 자리 잡고 마리화나를 피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담배 냄새보다 마리화나 냄새가 더 자주 납니다.

사실 기호용 대마초가 합법화되기 전에도 의사로부터 대마초 처방전을 발급받는 일이 그리 까다로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2년 전,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왔을 때 이곳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저녁 식사를 초대받아 트위터 본사 근처로 갔었습니다. 지인은 IT 업종에 종사하는 금발의 미국인입니다. 저녁 식사 후 2차를 위해 자리를 옮기는 길에 그는 담배를 꺼내 물었습니다. 그런데 연기에서 풍겨오는 것은 제가 알고 있는 익숙한 담배 냄새가 아닌, 약초를 태우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pot” (마리화나를 일컫는 속칭)이라고 합니다. 저는 깜짝 놀라 길거리에서 그런 걸 피워도 되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는 거리낌 없이 “물론이지”라고 대답하며 의료용 대마초는 합법이라고 부연 설명을 해 줬습니다. (그는 딱히 어디가 아픈 곳이 없습니다.) 함께 있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었고, 자기도 피우겠다며 달라는 미국인도 있었습니다. 아이 둘을 잘 키우고 있는 건실한 가장이자 IT 기업인이 길거리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는 장면에 저는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은 60년대 히피 문화의 중심지였고 아직도 히피 스피릿이 이들의 생활 속에 남아있기 때문인지, 마리화나에 매우 관대한 분위기입니다. 1996년 미국에서 최초로 의료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주민투표로 통과시킨 것도 이 같은 정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캘리포니아주의 기호용 대마초의 합법화를 이끌어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분위기는 산업적으로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두운 밤, 은밀하게 무언가를 재빨리 주고받는 남자들... 마리화나와 함께 연상되는 뒷골목 갱들이 나오는 영화 속 장면들은 ‘옛날에 그랬지...’가 됐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기호용 대마초가 합법화되면서 문전성시를 이루는 한 대마초 판매점은 넓고 깨끗한 쾌적한 공간에 다양한 제품을 구비해 놓고 고객들을 맞고 있었습니다. 일부 손님들을 인터뷰해보니,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 회사원 등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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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펜서리 (dispensary)라 불리는 마리화나 판매점(동영상 참조)에서는 대마초를 넣고 만든 브라우니, 초콜릿, 사탕 등 갖가지 형태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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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초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앱도 있습니다. 2014년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직원 4명으로 의료용 마리화나 배달을 시작한 Eaze인데요, 실리콘밸리의 벤처 캐피털로 잘 알려진 스눕독으로부터 2천4백만 달러(약 250억 원)를 투자받는 등 창업 2년 만에 5천만 달러를 투자받았습니다.
마리화나에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의 단면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진 콴(Jean Quan)오클랜드 전 시장이 대마초 판매점을 열기 위해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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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100여 개 도시에서 영업 중인 마리화나 배달 앱 Eaze. 마리화나 디스펜서리 운영을 준비 중인 진 콴 오클랜드 전 시장(2011-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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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캘리포니아 주의 기호용 마리화나 산업이 올 한해 37억 달러(약 3조 9천5백억 원)의 수입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주 정부의 세수 증가액은 10억 달러(1조 6백억 원)를 넘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기호용 마리화나에 붙는 세금은 캘리포니아의 경우 15%, 주에 따라 10~37%로 다릅니다.) 마리화나 양성화로 관리, 추적 가능하게 만들어 암시장을 근절하겠다는 겁니다. (소비세 등 여타 세금까지 더하면 38%나 더 붙는다며, 세금이 너무 높아 암시장 수요가 높을 것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대마(大麻) 천국 캘리포니아? 현실은...

이런 사례를 보면 캘리포니아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마리화나의, 마리화나에 의한 천국’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호용 마리화나가 합법화되기 전인 지난해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두 시간 쯤 떨어진 캘리포니아 모데스토에서 고등학생 몇 명이 기절해 응급헬기로 이송된 일이 있었습니다. 당국의 조사 결과 이들은 마리화나가 든 브라우니를 먹었던 것으로 드러나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마리화나 합법화를 반대하는 쪽에서 우려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잠재적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미 연방법에서도 마리화나를 금지약물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사회적인 제약도 많습니다.

지난 10월, 와이너리로 잘 알려진 나파 밸리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당시 피해 지역엔 와인 생산용 포도밭뿐만 아니라 대마밭도 많았습니다. (대마초의 생육 조건이 포도나무와 비슷하고 소비지인 샌프란 베이 지역에 바로 붙어있는 나파, 소노마가 업자들에게 인기가 높기 때문입니다.) 화재 이후 와인 생산자들은 화재보험을 통해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대마재배업자들은 한 푼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연방법에 따라 금지약물로 간주되는 마리화나는 보험 가입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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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파 화재 당시 불에 탄 대마밭. 보험도, 신용거래도 안 되는 높은 위험부담을 떠안고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며 사업을 포기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사진 출처:Sonoma cannabis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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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은행에서 계좌도 만들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용 카드 거래도 불가능하니 오로지 현금으로만 산업 전체가 움직입니다. 이 때문에 각 소매점에서 주 정부가 세금을 거둬들일 때 무장 경비의 삼엄한 감시 아래 현금 상자를 트럭에 옮겨 싣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는 미국 가상화폐 시장이 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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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로드맨의 북한 방문 자금을 대고 자사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입혀 홍보했던 팟코인. 캘리포니아에서 오락용 마리화나를 허용하기 직전부터 팟코인만 거래하는 규모가 8천만 달러(한화 약 8백억 원)로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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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프 세션스 미 법무부 장관이 오바마 정부 당시의 주 정부의 마리화나 합법화에 대한 개입 불가 지침을 폐기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제약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세계 6위의 경제 규모를 갖추고 산업적 문화적으로 미국 내 파급력이 그 어느 주보다 큰 캘리포니아의 올해 기호용 대마 합법화가 어떤 영향을 몰고 올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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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림기자 (garim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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