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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검색 알고리즘에 ‘찍히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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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구글 검색엔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문아무개 할머니와 강아무개 할머니의 직업을 ‘매춘부’라고 표기해 명예를 훼손한 사실이 최근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사진은 서울 역삼동 구글코리아 본사 내부 모습.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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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올해로 통신·정보기술(IT) 분야를 25년째 담당하고 있는 김재섭입니다. 이전에는 ‘정보통신 전문기자’라는 직함을 썼고, 요즘 제 명함에는 ‘경제에디터석/선임기자’라고 명시돼 있지만 왠지 ‘묵은’ 느낌을 줘 그냥 기자라고 불러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기술·서비스·제품 모두 엄청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중이죠. 제품을 사거나 서비스를 가입하고 돌아서면 바로 구형·구식이 됩니다. 새 스마트폰 사고 집에 와서 새 스마트폰 나온다는 뉴스 보면서 ‘좀더 기다렸다가 저거 살걸’ 하고 후회한 적 많으시죠.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저는 나이로는 이미 ‘아재’ 대열에 들었습니다. 아재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걱정이 많다는 거 아시죠. 흔히 통신·아이티 담당 기자라고 하면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남보다 먼저 써보기를 즐기는 ‘얼리 어답터’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아재라 그런지 ‘걱정’을 먼저 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의 정보인권이 침해되지 않을까, 일자리를 줄이지 않을까, 청소년들의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통신비 지출을 늘리지 않을까, 여론 조작용으로 악용되지 않을까, 기술이 아직 어설픈데 등등.

불행하게도 걱정이 현실화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구글 검색엔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문아무개 할머니와 강아무개 할머니의 직업을 ‘매춘부’라고 표기해 명예를 훼손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게 최근 사례입니다. 문제가 불거진 뒤 구글은 즉각 검색 결과를 삭제하는 조처를 취하고 사과의 말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언론에 전자우편으로 뿌린 사과 멘트 한마디로 풀기에는 할머니들의 황당함과 억울함이 너무 클 것 같습니다.

세계 최고란 소리를 듣는 구글 검색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구글코리아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알고리즘 오류”라는 말만 반복하더군요. 알고리즘이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컴퓨터 명령어의 집합을 말합니다. 그냥 컴퓨터라고 보면 됩니다. 알고리즘이 검색 결과를 바탕으로 인물정보(지식 그래프, 인물 검색 결과를 보여주는 화면 오른쪽에 상자 모양으로 나타남)를 따로 보여주는데 이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오류가 늘 있는 일인지, 왜 발생하는지, 다른 건도 오류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 혹시 특정 세력이 개입되지 않았는지 등을 물어봤으나 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국내 검색업체 관계자와 학계 전문가들에게 물어봤습니다. 한결같이 “구글 검색엔진은 오류를 일으키지 않았고, 잘못도 없다”고 했습니다. 명령어에 따라 검색 결과를 충실히 반영해 인물정보를 보여준 ‘죄’밖에 없답니다. 구글이 오류를 일으킨 거라는 얘기지요.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은 인물정보를 보여줄 때 200여가지(구글 설명) 요인을 반영하는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경우에는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를 집어넣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설명이 맞는다면 그동안 구글 검색으로 나오는 자료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매춘부’란 단어가 병기돼 있거나 연결돼 있던 게 많았고, 또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자료를 찾으면서 ‘매춘부’란 단어를 검색어로 사용한 누리꾼들이 꽤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제국의 위안부>란 책 탓이란 지적도 나왔습니다. 이 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매춘부처럼 묘사했다는 지적을 받아 사이버 세상에서도 크게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사용된 검색어와 사이버 세상에 남겨진 댓글 등이 이번 사태를 불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남자들이 부부싸움 경험담을 얘기하면서 “아내가 나는 기억도 못하는 일까지 하나하나 정확하게 들춰내는 것에 질렸다”고 하는 경우가 많죠. 아내는 그래도 가려서 말합니다. 검색 알고리즘은 이게 아예 불가능합니다. 검색 결과를 날것 그대로 누구에게나 다 보여줍니다. 피도 눈물도 감정도 없습니다. 당연히 배려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알고리즘이 무섭습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브러더’가 연상됩니다.

요즘은 알고리즘이 ‘고객맞춤서비스’까지 제공합니다. 검색 결과를 요약·가공해 보기 쉬운 형태로 만들어주고, 이용자의 취향을 파악해 그에 맞는 것을 우선적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인공지능 기술까지 더해지면서 이런 흐름은 앞으로 더욱 확산되고 고착화할 것입니다.

혹시 유명인이거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분이시라면, 구글·네이버·다음 검색란에 이름을 쳐보세요. 연관 검색어, 자동완성 검색어에 어떤 게 뜨고, 검색 결과가 어떤지 보세요. 알고리즘 눈으로 보는 ‘나’입니다. 다들 알고리즘에 ‘찍히지’ 않도록 조심하시라는 말로 새해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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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 경제에디터석 산업팀 선임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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