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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또 하나의 ‘서유기’, 리메이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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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권경률 칼럼니스트] [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74 – 전기수 : 거리에서 소설을 읽고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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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는 끊임없이 리메이크된다. 사람들은 이미 아는 내용이라도 재미가 있고 마음을 움직이면 계속 찾는다. 단, 익숙한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이나 기법으로 풀어나가는 것을 즐긴다. 그것이 리메이크다. 장르를 넘나들며 이야기는 다시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동양 최고의 판타지 고전 ‘서유기’는 오늘날 리메이크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화유기’는 ‘서유기’라는 환상의 세계를 한국 시청자의 구미에 맞게 재구축했다. 이 동양고전은 삼장법사와 세 제자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불경을 구하려고 서역으로 향하면서 겪는 고난극복 스토리다. 드라마는 주인공들에게 더욱 현실적인 소명을 부여하고 판타지의 보는 재미, 호러의 긴장감, 로맨스의 설렘, 코미디의 웃음을 버무렸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이야기에는 수많은 목소리가 담겨 있다. ‘서유기’는 명나라 사람 오승은의 1인 창작물이 아니다. 당나라 승려 현장의 실제 인도여행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설화와 구전들이 오랜 세월 켜켜이 쌓였다. 그 주역은 저잣거리에서 행인들에게 ‘썰’을 푼 이야기꾼들이다. 그들의 리메이크에 의해 이야기는 더욱 풍부해지고 세련되게 발전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이야기꾼들이 있었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며 이 땅에 재미있는 직업이 나타났다. 하얀 두루마기를 걸치고 머리엔 ‘산(山)’자 모양의 정자관을 쓴 채 번화가 모퉁이에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사람들! 바로 ‘전기수(傳奇叟)’였다. 길을 지나는 머슴, 여종, 노인, 코흘리개 아이들을 모아놓고 전기수는 부채를 휘두르며 소설을 읽었다.

그냥 국어책 읽듯이 읽은 게 아니었다. 소설을 노래하듯 읊조리면서 등장인물들을 1인 다역으로 연기했다. 일종의 이야기극인 셈이다. 구경꾼들은 전기수의 입담에 웃고 울면서 극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대목에 이르러 긴장이 최고조로 치달으면 이야기꾼은 입을 다물고 딴청을 부렸다. 뒤가 궁금한 구경꾼들은 동전을 던져 다음 대목을 재촉했다.

전기수는 눈길, 표정, 자세를 관중들에게 맞추고 감정선을 읽었다. 이 소통의 기술이 빼어날수록 유명세를 얻고 돈을 잘 벌었다고 한다. 고관대작의 부름을 받아 명문가에서 ‘썰’을 푸푸는 스타 전기수도 연이어 등장했다. 그들은 대갓집 마나님들의 독서모임에 출장 나가 이야기 뷔페를 차리고 자신만의 극적인 기량을 뽐냈다.

전기수의 사업 밑천은 통속소설이었다. 조선의 소설 열풍은 ‘서유기’, ‘삼국지’, ‘수호전’ 등 임진왜란 무렵 명나라에서 들어온 중국소설로부터 시작되었다. 17세기 이래 ‘홍길동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등 국문소설의 인기도 높아졌다. 나아가 방각본과 세책방의 출현은 18세기 통속소설의 전성기를 열었다.

방각본은 소설책을 대량으로 값싸게 찍어내는 목판인쇄였고, 세책방은 책을 베껴서 손님에게 빌려주는 대본소였다. 당시 소설에 빠진 독자들 가운데는 부녀자가 많았는데 반지, 은비녀, 놋그릇 따위를 맡기고 책을 탐독했다고 한다. 전기수는 이 소설 열풍을 극으로 리메이크하면서 골목 구석구석 이야기를 퍼뜨렸다.

전기수의 이야기극은 지금의 영화나 드라마처럼 인기를 끌었다. 반응이 뜨겁다보니 사건사고도 적지 않았다. 정조 임금 때 어느 전기수가 담뱃가게 앞에서 소설 ‘임경업전’을 공연하고 있었다. 임경업 장군이 간신 김자점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에 이르자, 격분한 관중 한 명이 담배 써는 칼을 들고 나타나 이야기꾼을 찔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채제공, 정약용 등 당대의 유명 인사들은 소설과 전기수가 사회기강을 흐린다며 ‘쓴소리’를 남겼다. 담백한 필치로 시대를 주름잡은 서얼 출신 문인 이덕무도 비판자 중 한 사람이었다. 아들 이광규의 회고를 살펴보면 그가 무엇을 걱정했는지 알 수 있다.

“일찍이 ‘서유기’, ‘삼국연의’를 보는데 아버님께서 크게 꾸짖으시기를, ‘이러한 잡서는 정사(正史)를 어지럽히고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엄한 아비이며 스승인데 어찌 자식이 나쁜 길로 들어가게 하겠는가?’ 하므로 그 훈계를 받들어 감히 다시는 가까이하지 않았다.” (청장관전서)

하지만 소설 읽어주는 전기수의 활동은 시대흐름을 대변하고 있었다. 18세기 조선은 인구가 크게 늘고 도시가 성장하며 상품경제가 발달했다. 오랜 세월 신분질서와 유교윤리에 억눌려 있던 백성들에게도 문화적 욕구와 변화의 열망이 꿈틀거렸다. 전기수의 이야기극은 민초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면서 답답한 가슴을 뚫어주고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했다.

그렇다면 ‘서유기’에서 삼장이 짊어졌던 소명은 이 땅에서 리메이크되며 어떻게 변해갔을까? 19세기 이후 조선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지배층의 부정부패와 가렴주구는 날이 갈수록 극심해졌고 외세의 파도가 거세게 덮쳐왔다. 백성들은 불경을 가져와 중생을 구제하

려 한 삼장의 소명에서 도탄에 빠진 현실을 떠올렸을 것이다.

전기수는 요괴와 고난에 맞선 손오공의 활약을 시대에 맞게 되살려냈다. 이야기극은 관중들에게 짜릿한 재미를 제공하는 동시에 난세를 평정하는 영웅을 갈망케 했다. 그들의 리메이크 정신은 이런 식으로 구한말 근대적 자아 형성에 기여하고 일제 강점기 무성영화 변사들에게 이어졌다.

리메이크는 장르를 뛰어넘어 계속된다. 드라마 ‘화유기’에는 흉사(凶事), 즉 좋지 않은 일을 미리 보여주는 항아리가 소품으로 나온다. 그 불길한 징조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오랜 소명이란다. 그리하여 마침내 흉사를 경사(慶事)로 바꾸는 게 인간의 역사란다. 판타지 호러와 로맨틱 코미디로 거듭난 또 하나의 ‘서유기’에 나지막이 흐르는 전기수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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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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