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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벌금 20만원 낼 돈 없어 수갑 차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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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뇌병변 장애인인 A씨는 지인에게 통장 명의를 빌려줬다가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벌금을 못 내고 있는 A씨는 길거리에서 경찰관만 보면 골목으로 숨는다.

#기초생활수급자인 B씨는 몇년 전 책임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채 오토바이를 몰다가 2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벌금 낼 돈이 없는 B씨는 스스로 노역장에 유치되기 위해 경찰서에 자수하러 갔지만, 바로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매년 수십만명이 선고받는 벌금형



필자가 일하는 법 센터에서 최근 상담한 사례들이다. 벌금형은 일상생활에서 익숙한 형벌로서, 전체 형벌 중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음주운전을 하거나 예비군 동원 훈련에 무단 불참하여 벌금을 내는 경우를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본다. 재판통계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약식명령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673,015명. 즉결심판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63,155명. 정식 재판을 거쳐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79,488명으로서, 매년 80만명 내외의 사람들이 벌금형을 선고 받는다.

그런데 벌금형의 중요한 특성이 있다. 벌금형은 선고받는 사람의 재산 상태에 따라 형벌의 효과가 달라지는 불평등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즉, 부자에게는 300만원의 벌금형이 교정효과가 전혀 없는 형벌이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몇 달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야 겨우 낼 수 있는 부담스러운 돈이다.

◇벌금을 안 내면 지명수배

벌금을 내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과태료나 세금과 달리 벌금 미납자로 '지명수배'가 내려진다. 그래서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리면 체포되어 검찰청으로 인계된다. '지명수배'하면 보통 흉악범을 연상하지만, 벌금미납자도 지명수배자이다. 사실 '지명수배'에 대한 법률 근거는 명확하지 않고, 검찰이 경찰에게 벌금형 집행에 대해 업무 협조를 요구하는 형식이다. 그러다보니 경찰도 벌금 미납자부터 벌금을 징수하는 업무에 볼멘 소리를 낸다.

검찰과 경찰이 벌금미납자를 쫒는 것은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할 때 벌금 미납시 1일 이상 3년 이하의 기간 동안 노역장에 유치할 것을 동시에 선고하기 때문이다. 일반 서민들은 보통 노역장 유치 1일당 10만원으로 계산하지만, 벌금액이 많은 사람들은 ‘황제 노역’ 논란이 발생한다. 예컨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은 38억6000만원의 벌금 대신 2년 8개월 동안의 노역장 유치를 선택해서 현재 원주교도소에서 청소 노역 중이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약 14억짜리 청소 노역이다.

◇생계형 벌금미납자에 대한 벌금집행시 주의할 점

문제는 소액벌금형을 선고받은 경미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벌금납부가 불가능한 경우 노역장에 유치되면서 사실상 단기 징역형을 살게 된다는 점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형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벌금형도 형벌인 이상, 벌금을 납부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악성 벌금미납자와 생계형 벌금미납자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끝까지 쫓아가서 다 받아내야 하겠지만, 후자는 벌금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벌금 20만원을 내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되기 위해 자수한 사람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것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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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변호사(서울시복지재단 사회복지공익법센터) tanbbang1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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