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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기자의 시각] '방과 후 영어' 인기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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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연주 사회정책부 기자


교육부가 지난달 27일 초등 1~2년 영어 방과 후(後) 수업에 이어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방과 후 영어 수업까지 금지한다고 발표했다가 "결정 난 바 없다"고 번복했다. 하지만 며칠 후 교육부가 영어 방과 후 수업 금지 자체는 이미 결정했고 당장 올 3월 시행 가능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학부모들과 어린이집 등은 "저렴한 값에 잘 가르치고 있었는데 의견 수렴도 제대로 하지 않고 갑자기 금지하면 어떡하느냐"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교육부가 초등 3학년 이전 영어 수업을 금지하는 핵심 논리는 "어린 시절엔 영어 학습 같은 사교육보다 노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를 살아갈 어린이들이 놀이를 통해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는 점에는 많은 학부모도 동의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엄마들이 영어 교육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선 눈을 감고 있다. 많은 학부모가 초등 3년 때까지 영어를 배우지 않고 학교 수업에 들어가면 따라잡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미리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학교에서 뒤처지고, 주눅 들고, 자신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일찍부터 영어를 가르칠 수밖에 없다. '안 배우고 학교에 가도 괜찮다'는 확실한 믿음이 들기 전까지는 영어 사교육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초·중·고교 영어 공교육 전반에 대한 불신감도 크다. '잉글리시 디바이드(영어 격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어 실력이 대학·취업·직장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공교육만으로 영어 실력을 키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사교육을 안 받는다면 영어 노출 기회는 학교가 유일하다. 그런데 학교 영어 수업 시간은 일주일 2~3번(초등)뿐이고, 그나마 영어로 가르치는 수업은 너무 적다.

여기에다 교육 당국은 누리 과정, 무상 급식 예산이 많이 들어가자 6~7년 전부터 원어민 교사를 줄곧 줄여왔다. 당시 교육부는 "토종 영어 교사들 실력이 매우 좋아졌기 때문에 원어민 교사는 필요 없다"고 했다. 그 결과 초·중·고교 원어민 영어 교사는 2013년 7790명에서 2015년 3260명으로 반 토막 났다.

애초 정부가 '방과 후 수업'을 도입한 것은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에서 저렴하게 해결해주겠다는 취지였다. 지금까지 상당한 효과도 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어 사교육 수요는 변함이 없는데도 방과 후 수업을 없애겠다고 한다. 교육부가 영어 공교육 전반은 개선하지 않고 무조건 조기 영어 방과 후 수업을 금지하면 "정부가 사교육을 늘린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초 3 이전에 자녀 영어 사교육 안 시키는지 조사해야 한다"는 말도 거세질 것이다.

[김연주 사회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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