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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의 음악상담실]나와 세상 사이 그 어디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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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턴 존의 ‘Goodbye Yellow Brick Road’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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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는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가 엘턴 존 최고의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가사도 좋지만, 노래의 구성 때문이죠. 당시의 노래들은 도입부인 A파트의 멜로디를 두 번 반복하고 후렴으로 가거나, 그 사이에 4마디 연결 고리를 넣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A파트의 멜로디가 매번 조금씩 달라서, 4마디마다 정해진 익숙한 길에서 벗어난 새로운 맛을 선물하죠. 그래서 갑작스럽고 색깔이 다른 후렴으로의 도약도 전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깜짝 놀라는 기쁨이 됩니다.

‘Yellow Brick Road’, 노랑 벽돌 길은,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길입니다. 주인공 도로시는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마법의 세계에 불시착합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만나야 하고, 그러려면 노랑 벽돌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배웁니다. 그 노랑 벽돌 길 위에서 도로시는 뇌가 없어서 무시당하는 허수아비, 따뜻한 심장을 원하는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를 만나 친구가 됩니다. 다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역경을 극복하며 노랑 벽돌 길을 꾸역꾸역 따라가죠.

그런데 알고 보니 허수아비는 원래 지혜로웠고, 양철 나무꾼은 마음이 따뜻했었고, 사자도 원래 용감했습니다. 자신들만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었죠. 도로시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별짓을 다 하지만, 구두의 뒷굽을 세 번 울리기만 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되죠. 잘 몰라서 그렇지 결국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내 곁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는 세상이 보편적, 혹은 ‘진실’이라고 제시하는 길과, 내가 ‘나’일 수 있는 길이 다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나의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파악해야, 즉 정체성을 잘 확립해야 헛수고를 하고 그 수고의 보답도 받지 못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죠.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기에 그와 관련된 ‘너 자신을 알라’,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네가 너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빈곤 속에 살게 되리라’ 같은 명언들이 수없이 많죠.

이 노래의 작사가 버니 토핀도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의 평화 사이에서 고민을 했기에 이런 노랫말을 씁니다. 내가 주류 사회를 떠나면 곧 누군가가 그 자리를 메울 것이라고. 나 같은 사람은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찾아 냄새를 맡고 다니는 강아지들같이 흔한 존재라고. 그는 세상의 요구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걷기 위해 엘턴 존을 떠나지만, 다시 돌아옵니다.

한 인간의 정체성은 희망 사항만이 아니라, 장단점 및 기타 구성 요소들과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과의 조화로 결정됩니다. 삶은 현실과 개인 내면의 중간쯤에서 균형을 잡았을 때 가장 안정적이죠. 토핀도 힘든 과정을 거쳐 그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노랑 벽돌 길을 따라갈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자신과 주변을 더 잘 파악하고, 이 노래의 멜로디처럼 내 판단이 옳은지 돌아보고, 변주로 더 잘해보려 노력하고, 다시 돌아와야 할 때는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저의 2018년도 그런 과정의 연속이기를 바랍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