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접촉에 “지켜 보자”던 미국
회담 열리자 기대감 표출로 선회
압박·대화 병행하는 딜레마 상황
한·미 “같이 갑시다” 정신이 필요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
이런 딜레마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북한은 가중되는 국제사회의 압박이 약해지거나 무력화되기를 바란다.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선 것은 미국이 경제 제재를 확대한 데 따른 것이라고 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에는 일리가 있다. 북한 주민과 군인들은 굶주림을 피하기 위해 위태로운 목선을 타고 먼바다로 나오고 있다. 최근 일본 해안에서 발견된 배에서 북한 주민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는 지금 북한이 처한 현실을 상징한다. 또 지난해 말 한국으로 귀순한 북한 병사의 영양 상태는 북한의 식량 부족 상황을 분명히 드러냈다. 북한이 남북 대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미국이 북한을 핵무장 국가로 인정하고 ‘파국’과 ‘평화적 공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은 한·미 관계를 해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미 양국 국민의 동맹 관계에 대한 지지는 강하다. 두 나라의 연합방위체제도 그 어느 때보다 공고하다. 하지만 청와대와 백악관은 정치적 갈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시그널을 표출한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공격, 북한을 겨냥한 “분노와 화염”이라는 언급에 청와대는 매우 불편해했다. 문재인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확대,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MD) 가입, 한·미·일 군사동맹 체결에 대해 중국에 “노(No)”라고 얘기했다는 이른바 ‘3불(不) 약속’에 대한 보도는 미국 정부에 깊은 실망감을 안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FTA 재협상 요구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고, 한국 정부는 중국이 주장하는 ‘3불 약속’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북한이 불화 조장 전략이 성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대화에 반대한다면 한·미 관계의 틈은 더 심각한 수준으로 벌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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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올림픽 행사에 북한이 참여한 모습은 많은 한국인과 미국인을 곤혹스럽게 할 것이다. 수만 명의 북한 주민이 요덕수용소에서 학대를 당하고 있으며, 북한 정권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위협적인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박차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서 오는 혼란이다.
여하튼 미국 정부는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으며 올림픽 참여와 관련된 9일의 남북 합의를 환영할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는 남북한의 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비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결국 한국 정부의 방향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미국 정부는 평창 올림픽이 평화롭고 성공적으로 치러지는 것을 원한다. 북한의 인권 문제와 국제사회에 대한 위협을 생각하면 고통스럽지만 그들이 배제된 올림픽은 1988년 서울올림픽 직전에 발생한 테러와 같은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결국 북한에 엄중한 압박이 가해지는 상황이긴 하지만 북한에 대화의 공간을 허락하는 것은 미국 국익에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완전한 배제와 고립은 위험하다.
이것이 트럼프가 안고 있는 딜레마다. 북한이 전 세계에 던진 딜레마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핵무장 국가로 인정받으려는 기만전술을 구사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막연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는 모든 채널을 통해 한국 정부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협력 수위를 높여야 한다. 국방과 외교 모두에 “같이 갑시다” 정신이 필요하다.
마이클 그린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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