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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시각각] 586들, 서울 올림픽 기억 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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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고착된다’며 반대 열 올려

평창에선 성숙한 접근 보여주길

중앙일보

강찬호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창 올림픽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올림픽’ 한마디로 한·미 연합훈련 허들을 제치고, 단박에 운전대를 잡았다. 입버릇 험한 트럼프도, 한국을 홀대해 온 시진핑도 “올림픽을 계기로 월척(북한) 한번 낚아보라”며 힘을 실어준다. 문 대통령이 간만에 꽃길을 걷게해 준 복덩이가 올림픽이다.

한데 문재인 정부의 주력군인 586 보좌진들은 실은 ‘반(反)올림픽’의 선봉이었다. 이들은 딱 30년 전인 1988년 NL(민족해방파) 운동권 대학생으로 전대협을 주도하던 시절, 이 땅에서 개최돼 평창 올림픽의 모태가 된 서울 올림픽을 ‘분단 고착 올림픽’이라며 격렬히 반대했다.

청년 특유의 통일에 대한 열정은 나무랄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북한의 올림픽 와해 공작과 궤를 같이하는 행위였다. 당시 북한 실권자 김정일은 우리 정부의 올림픽 초청장을 거부하고 소련과 중공, 동구권에 특사를 보내 올림픽 불참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87년 11월 KAL 858기 폭파 테러를 벌여 115명의 목숨을 앗아 간 것도 올림픽 무산을 노린 만행이었다.

하지만 시대의 대세는 서울이었다. 80년 모스크바, 84년 LA 올림픽이 잇따라 반쪽 올림픽으로 치러지면서 12년 만의 88 서울 올림픽은 모든 나라가 참가하는 축제가 돼야 한다는 게 지구촌의 열망이었다. 특히 막 페레스트로이카와 흑묘백묘에 나선 소련과 중국이 북한의 만류를 뿌리치고 서울행을 결단하는 대형 ‘사고’를 쳤다. 덕분에 서울 올림픽은 참가국이 역대 최다(160개국)를 기록하며 탈냉전의 서막을 연 역사의 무대가 됐다. 유시민이 “축산물 수입 규격조차 없던 한국이 글로벌 국가로 도약한 계기가 서울 올림픽”이라고 했을 만큼 진보 진영도 성과를 인정하는 5·6공의 최대 히트작이었다.

그러나 당시 전대협 586들만은 예외였다. 북한은 올림픽 무산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물타기로 ‘남북 공동 개최’ 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말로만 떠들었을 뿐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제안을 한 적은 없다시피 했다. 이홍구 당시 통일원 장관의 증언이다. 당연했다. 최소한의 경기장 시설도 갖추지 못한 데다 죽자고 반대해 온 올림픽을 느닷없이 앞장서 치르겠다는 변덕이 먹힐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소련 올림픽위원회조차 “서울에 24개 전 종목 520명(역대 최다)을 보내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한국의 완벽한 준비에 안심해서다. 북한? 자신들이 알아서 결정하라”고 발표(88년 1월 12일)했다. 상황 끝이었다. 서울 올림픽에 북한만 빼고 공산권 국가가 총출동한 이유다.

그런데도 전대협은 줄기차게 ‘올림픽 공동 개최’를 요구하며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서울 올림픽을 ‘매국, 매춘 올림픽’이라 비난하며 경기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마라톤 등 장외경기를 방해하겠다고 선언했다. 공동 개최를 반대한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에게 “뇌물 먹었느냐”는 공갈 편지가 날아들기도 했다. 결국 국민이 분노했다. 시위하던 학생들에게 “너희들 하는 짓이 바로 매국”이라며 피켓을 빼앗았다. 한때 공동 개최론에 장단을 맞췄던 김대중 평민당 총재마저 입을 다물었다. 결국 전대협은 ‘올림픽 준비 기간 중 시위 자제’를 선언하며 물러서야 했다.

그 586들이 30년 만에 다시 열리는 올림픽엔 태도를 180도 바꿔 분위기 띄우기에 여념이 없다. 그사이 불량 국가 북한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586들도 현실을 직시하고 글로벌 표준을 존중하는 쪽으로 진화한 방증일 것이다. 그런 만큼 올림픽을 국제 규범에 맞게 반듯하게 치러줄 것으로 믿는다. 유엔의 대북제재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북한 대표단을 대접하는 균형 감각을 보여주리란 기대가 그것이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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