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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119를 위한 119는 없다’ 스스로 심리치료사가 된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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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남양주소방서 박승균 소방관


한겨레

“생명을 살렸을 때 그 희열은 평생 가요. 언론에 안 나오고 아무도 몰라도, 나는 생명을 살리고 있다는 걸 알아요. 그거 하나가 굉장한 자부심이에요.” 경기도 북부소방재난본부 남양주소방서 소속 박승균 소방관은 지난해 심리상담사 자격을 가진 소방관들이 동료들의 심리상담을 해주는 ‘소담팀’ 개설을 이끌어 팀장으로 활동하다 올해 1월부터 다시 구조현장에 출동하고 있다. 남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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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활동 10여년 동안
수시로 참혹한 장면에 노출
평소 스트레스 방치한 결과
참기 힘든 고통 겪으면서
심리상담에 관심을 갖게 돼


상담심리치료 대학원 진학
국내 최초 소방관으로 구성된
상담전문팀 개설 이끌기도
전체 소방관 가운데 6% 이상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경험


슈퍼맨이 한국에 왔다면 과로사하지 않았을까. 배트맨도 장비 부족으로 발이 묶였을지 모른다. 낡아빠진 마스크와 망토를 제때 교체할 수 없어 사비로 구입해야 했을 것이고, 거의 모든 재난현장에 쉴 새 없이 투입되면서 부상과 질병, 수면 부족과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슈퍼맨과 배트맨은 오지 않는다. 필요한 일은, 우리 평범한 인간들이 평범한 인간들을 구해서 해결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소방관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라가 존재하는 첫번째 이유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고 그 역할을 최일선에서 해주는 분들이 소방관들”이라며 “소방관들이야말로 국가 그 자체”라고 그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새 정부는 42년 만에 행정안전부 산하 외청으로 소방청을 독립시켰고, 2022년까지 법적 기준에 부족한 현장 인력 2만명을 보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단계적인 증원을 위해 편성한 추가경정예산안은 ‘포퓰리즘’이라는 야3당의 비난과 반대 속에 대폭 축소되었고,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은 지방자치단체장과의 협의 틀 안에서 여전히 삐걱거리고 있다.

소방관들은 2018년 새해를 어떻게 맞이하고 있을까? 슈퍼맨도 배트맨도 아닌 그들은 제천 화재 참사를 보며 어떤 마음일까? 소방관들이 가슴속에 담아온 남모를 상처와 울분, 소망은 어떤 것일까? 평범한 소방관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박승균(48) 소방관은 경기도 북부소방재난본부 남양주소방서 소속의 19년차 소방관이다. 그는 현직 소방관 신분으로 상담심리치료 대학원에 입학해서 석사학위를 얻고, 지금은 박사과정에 진학해 소방관의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예방과 긴급심리상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2016년 소방공무원들의 심리치료에 기여한 공으로 소방안전봉사상 대상을 수상했고, 지난해에는 국내 최초로 소방공무원으로 구성된 상담전문팀 ‘소담팀’의 팀장을 맡아 동료 소방관들의 심리상담과 교육을 진행했다.

지난 3일,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한 ‘휴(休)119힐링센터’에서 박승균 소방관을 만났다. 과거 소방서 건물을 개조해서, 도내 소방관을 위한 생활관과 심리치유실, 운동치유실로 꾸민 공간이었다. 그가 안내한 심리치유실에는 편백나무로 만든 반신욕조와 안마의자, 간단한 서가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가 동료 상담을 할 때 종종 이용하던 곳이라 했다.

한겨레

지난 1월3일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휴119힐링센터’에서 남양주소방서 와부119 안전센터 1팀장 박승균 소방관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휴119힐링센터는 과거 소방서 건물을 개조해 도내 소방관을 위한 생활관과 심리치유실, 운동치유실로 꾸민 공간이다. 남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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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은 누가 구조하나


“황금 개띠 해라는데, 개 잡으러 갔다가 놓쳤어요.”

그가 껄껄 웃으며 오늘의 첫 출동 이야기를 털어놨다. 올해 1월1일부로 소담팀 팀장에서 일반 현장팀으로 소속이 바뀌었는데 유기견을 잡아달라는 신고를 받고 나갔다가 못 잡고 돌아왔다고 했다. 이제 그의 직함은 소담팀장이 아니라 남양주소방서 와부119 안전센터 1팀장이다.

―첫 출동에서 허탕 치신 거예요?

“예. 제가 개띠인데, 좀 봐주란 뜻인지….(웃음)”

―소방관들은 안 가는 데가 없군요. 화재나 재난 현장만이 아니라 싸움 났다고 가고, 교통사고나 조난사고에도 가고, 멧돼지나 말벌이 나와도 가고…. 옛날보다 소방관 업무 범위가 넓어진 거 아녜요?

“지금은 공공안전서비스에 대한 건 다 하죠. 다른 공무원들은 자기 분야 업무가 따로 있지만, 우린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건 다 하고 있다고 봐야죠.”

―예전엔 유기견 잡아달라고 부르진 않았던 것 같은데요.

“신고하신 분은 자기 자녀가 초등학생인데 물릴지도 모른다고 신고하셨어요. 근데 가 보면 자녀는 안 보이고 개만 있어요.(웃음) 100번 중의 99번은 그래요. 그래도 100분의 1, 1000분의 1 확률로 생명에 위협이 가해질 수 있으니까, 안전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나가야죠.”

―명절이나 연휴에는 일이 더 많아지나요?

“명절에는 가족 불화가 생겨서 출동하는 경우도 많아요. 싸우면 아주 피 터지게 싸워서 응급처치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가족끼리 치고받고 싸워요?

“그럼요. 명절에 시댁 다녀와서 부부싸움도 많이 해요. 죽네 사네 하고 이혼까지 가기도 하잖아요. 최근엔 엄마랑 아들이랑 다툼이 생겨서 출동하기도 했어요. 자식이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하니까 엄마가 놀라서 신고했는데, 아들이 엄마 협박한 거죠. 무사히 해결됐어요.”

―하는 업무로 보면 ‘소방’공무원이란 말에 어폐가 있네요.

“119가 소방공무원의 대명사가 되었잖아요. 이럴 거면 차라리 소방대원이란 말 지우고 119대원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아요.(웃음) 모든 서비스 다 하고, 대신 그만큼 대우해주면 좋을 텐데. 소방이란 건 지방자치 일이다 해서 국가직 전환은 안 된다고 하고, 지방직 틀 안에 가둬놓는 거예요. 다른 안전업무를 다 하는데도….”

―현장에서 주민들한테 폭행이나 폭언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면서요?

“술김에 구급대원을 때리기도 하고, 현장에 나갔는데 부부끼리 싸우다가 그 화풀이를 소방관한테 하기도 하고, 그렇게 풀어요.”

―아이코, 그럼 어떻게 하세요?

“소방관은 사법권이 없잖아요. 그냥 대민봉사지. 민원인이 얼토당토않은 시비를 걸어도 웬만하면 받아주죠. 소방관은 힘이 없어요.(웃음)”

화재·재난 현장뿐 아니라
유기견 잡아달란 신고 받거나
명절날 불화 일어난 가정까지
국민 안전 관련된 곳곳에 출동
“하는 만큼 대우해주면 좋을 텐데…”


올해 1월부터 구조현장 복귀
“불을 보면 굉장히 용감해져
나도 죽겠구나 생각도 들지만
생명 살려야겠다, 그런 힘이…
소방관은 직업이 아니라 사명”


오늘날의 소방관은 불만 끄는 소방관이 아니다. 집안에 분란이 일어나도, 자살 소동이 일어나도, 아픈 사람이 생겨도 달려간다. 그가 쓴 책 <골든타임 1초의 기적>(2017년)에는 우리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재난에 대해 어떻게 골든타임 안에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상세한 매뉴얼이 소개되어 있다. 화재, 전쟁, 지진 같은 대형 참사뿐 아니라 봄철 황사나 미세먼지, 여름철 폭염, 가을철 산행과 조난사고, 겨울철 한파나 대설과 같은 계절별 재난, 어린이 안전사고와 응급처치, 자살예방에 대한 요령 등 다종다양한 사고의 대처요령이 기술되어 있다.

―소방관으로 책도 쓰시고 상담도 하시고, 이젠 다시 현장에 출동하시네요.

“현장 출동해야죠. 전 현장이 정말 좋아요.(웃음) 소방관은 현장을 느껴야 진정한 소방관이 돼요. 물론 전 상담분야 공부를 계속할 거지만요. 그 일도 현장에서 사람을 구해내는 일만큼이나 제겐 짜릿한 보람을 느끼게 해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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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초, 유일의 소방관에 의한 전문상담팀


박승균은 지난해 4월3일 경기도 북부소방재난본부 산하에 심리상담사 자격을 가진 소방관 3인으로 구성된 소담팀의 개설을 이끌었다. 소담팀이란 ‘소방공무원을 상담하는 팀’ 그리고 ‘소곤소곤 담소하는 팀’이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현직 소방관 신분으로 심리상담사 자격을 갖춘 이들이 동료 소방관을 상담하는 것은 국내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라고 했다.

―초대 팀장님이 빠져도 소담팀은 그대로 유지되는 겁니까?

“그럼요. 처음에는 활동계획 잡고 매달 실적 보고하는 틀 만들고 하는 것 때문에 일이 많았는데, 제가 있을 때 기본 틀은 만들어놨고요. 이젠 어느 정도 팀이 정상화되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빠져도 큰 지장은 없습니다. 이게 임시적인 태스크포스팀으로 출발했는데, 아직 공식 조직으로 편제되지 못한 게 좀 아쉽긴 하지만요.”

―처음에 어떻게 소담팀을 만들게 되셨어요?

“소방관들이 처참한 장면을 목격하거나 죽음과 마주하는 일이 많다 보니까 외상이 될 만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요. 근데 그걸 제때 예방하거나 긴급치료하지 않으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지죠. 2012년에 경기도 소방학교에서 동료 상담에 대한 교육을 처음 받았는데 전 그 이후로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동안은 이곳 상담실에서 주로 근무외 시간을 내서 동료 상담하는 일을 했었는데, 저 말고 전문상담 경험이 있는 동료 둘이 있어서 같이 뜻을 모아 우리 본부장님께 제안을 한 거죠.”

―다른 두 분도 소방공무원이세요?

“네, 이숙진 상담사는 구급대원인데 상담심리사 2급 자격증을 갖고 있고, 최지선 상담사는 전문상담사로 특채되었다가 현장 출동대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어요.”

―전문상담사로 특채되었는데 현장 출동을 했다고요?

“불 끄는 데 같이 나가서 불 끄고 그랬어요. 상담사로 특채를 해놓긴 했는데, 상담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 이 사람을 어떻게 써야 할지 그 당시에는 윗분들도 난감하니까. ‘우선 (현장팀에) 배치해놓고 있어’ 이렇게 된 거죠.”

―상담사가 화재진압요원이 되었군요.

“근데 그것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실 상담사가 현장에 나가보지 않으면 모를 일들이 많아요. 출동벨이 울리면 심장이 쫄깃해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직접 나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걸요. 우리는 직접 경험을 했기 때문에 소방관들이 뭘 힘들어하는지 대번에 알아들어요. 일반 상담사의 경우엔 ‘왜 그랬어요?’ ‘소방관들은 어떻게 생활해요?’ 이런 걸 묻는데, 그럼 대개의 소방관들은 상담할 마음 딱 사라지거든요.”

―그렇게 세 분이 모여서 제안을 하니까 본부장님이 바로 오케이 하신 거예요?

“‘우리 셋이 팀을 꾸려서 활동하고 싶습니다’ 건의를 드렸어요. ‘소방관으로 근무하고 남는 시간에 비상설팀으로라도 상담활동 하면 어떨까요?’ 했는데 본부장님이 흔쾌히 ‘그럼 태스크포스팀 만들어서 상담에만 전력해봐’ 하신 거죠. 이런 사례가 대한민국에 없어요. 본부장님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정말 힘들었던 경험이 있어서 아주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신 거죠.”

한겨레

지난 1월10일 남양주소방서 와부119 안전센터에서 박승균 소방관이 출동 준비를 하고 있다. 남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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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님이 외상후스트레스로 고생하셨어요?

“저희 경기북부 김일수 본부장님이 세월호 참사 때 진도 팽목항에서 중앙119구조단 단장으로 현장 총책임자셨어요. 배가 뒤집혔을 때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하던 모습, 그러다 주검들이 나오는 모습을 다 보셨고, 소방관들이 잠수해서 구조하는 모습도 보셨죠. 뭣보다도 충격적이었던 건, 세월호 수색에 참여했던 강원 소방헬기가 광주 시내에서 추락했잖아요. 그분들이 마지막으로 ‘헬기 귀대해도 되겠습니까?’ 무전했을 때 ‘귀대하라’고 답을 한 게 김일수 당시 단장님이셨거든요. 근데 3분 뒤에 ‘헬기가 안 보입니다’ 보고를 받으셨고 광주 시내에서 추락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현장에 달려가서 그 모습을 직접 보신 거예요.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세월호 얘기만 나오면 귀 닫고 입 닫고 안 보시고,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심장이 막 뛰어서 전화도 못 받으시고 그랬대요. 그래서 치료도 계속 받으셨다는데, 누군가 소방 후배가 자신 같은 상황일 때 만나서 얘기를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신 거죠.”

―그런 베테랑 소방관들도 트라우마 때문에 고생을 하시는군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한 소방관이 전체 소방관의 6%를 넘는데, 이것은 일반인 유병률의 10배 가까이 된다는 보도(KBS 뉴스 2017년 1월30일)를 봤어요. 우리 사회에서는 정신상담 받는 걸 흠으로 생각하거나 터부시하는 경향이 남아 있어서 실제 수치는 이보다 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추측도 가능하지요. 그래서 소방관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고 교육이 필요해요. 특히 45~60살 연령대의 관리자급일수록 힘들어도 쉬쉬하고 내색을 안 하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 권위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칠까봐.”

2014년 전국의 소방공무원 3만7093명을 대상으로 소방방재청이 실시한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알코올 사용 장애는 33%, 우울장애는 13%, 수면장애는 37%나 차지하고 한 가지 이상 장애를 가진 경우도 38%나 된다. 알코올 장애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가 꼽히는데, 그 이후 전수조사가 정기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어서 최근의 정확한 통계는 알기 어렵다.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시달리는 분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셨어요?

“그럼요. 저도…. 제가 그것 때문에 상담에 관심을 가지게 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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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상담하는 소방관’이 보험설계사를 벤치마킹한 이유


박승균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가 어떻게 사람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1970년 강릉에서 3남2녀의 넷째로 태어났다. 열살 때 아버지를 여읜 뒤 ‘후레자식 소리를 들으면 안 된다’는 말이 가슴에 맺혀서였을까, 사춘기 때도 유순하고 의젓한 아들로 좀처럼 어머니 속을 썩이는 법이 없었다. 중학교 때 서울에 취직한 누나를 따라 상경해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숭실대 법대에 입학했다. 소방관에 지원하게 된 건, 간호사를 하던 아내가 소방서 구급대 지원을 하면서 같이 소방관 시험을 준비해 보자고 권유한 데 따른 것이지만 그럭저럭 지내다 보니 동료 소방관들과도 애틋한 정이 생기고 하는 일에도 이력이 붙어 스스로 잘 적응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의 의지와 다르게 마음의 고통은 심해져갔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현장에 가면 참혹한 장면을 수시로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런 상황이 10년 넘게 이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 더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되었던 것 같아요. 평소 스트레스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괜찮겠거니 방치한 결과죠.”

―소방관들만 아는 아픈 기억들이 많이 있군요.

“화재진압을 하러 갔는데, 기와 올린 재래식 주택이었어요. 불이 나서 지붕이 홀랑 내려앉은 거예요. 거기 사람이 깔린 거죠. 구조를 할 때는 삽으로 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만지면서 퍼내야 하거든요. 처음엔 아무것도 안 보이다가, 어느 순간 팔이 보이고 얼굴이 보이고…. 그게 굉장히 큰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아!…

“상상이 안 되실 거예요. 한번은 아파트 화재 현장에 출동을 했어요. 현관문이 열려 있는데 하얀 마네킹 같은 게 누워 있더라고요.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사람이었어요. 소화기로 진화하려다가 가루를 뒤집어쓴 모양이에요. 불 끄고 나오다가 헉! 하고…그제서야 알았죠. 화장실 문이 잠겼다는 신고를 받고 나간 적도 있는데, 안쪽 문고리에 줄을 걸고 남편이 자살한 거예요. 제일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 그 끈을 자르는 일도 했죠. 그런 것들이 자꾸 생각나는 거예요.”

―그런 무서운 장면이 자꾸 반복해 떠오른다고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증상 중 하나가 과거의 상황들이 가만히 있어도 자꾸 재현이 되는 거예요. 그때 냄새와 기억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꿈에도 나타나서 깜짝 놀라 깨고. 뭐든지 부정적으로 생각이 들고. 어떤 소방관이 심장이 안 좋아서 쓰러졌다는 얘기 듣고는 갑자기 제가 집에서 가위 눌린 것처럼 일어나질 못하고…. 나중에야 그게 외상후스트레스라는 걸 알았어요.”

―그런 경우엔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나요?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말을 하면서 정리하도록 하는 거예요. 이야기 치료 방법이죠. 내담자에게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고, 지극히 정상적인 몸의 반응이라고 알려줘요. 모든 스트레스가 다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가는 건 아니고요, 적절히 연결고리를 끊어주고 스트레스를 다른 방식으로 풀게 하면 질병 단계로 진행되는 걸 예방하거든요. 내가 그런 일을 겪고 나서 소방관 동료나 선후배에게도 뭔가 도움을 주고 싶어졌죠.”

지난해 소담팀이 구성된 이후 11월말까지 소담팀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예방교육과 ‘찾아가는 개인심리상담’ 등을 통해 소방관과 그 가족 등 총 3789명에 대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한 직원을 상대로 72시간 이내에 ‘긴급심리상담’을 진행하거나 현장의 위기상황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교육하는 일은 수시로 재난 상황에 맞닥뜨리는 소방관들에게 특히나 필요한 프로그램이었다.

―소방관들이 상담을 회피하거나 근무기록에 남을까봐 두려워하진 않나요?

“그게 아주 중요한 포인트인데요, 그간 단기계약으로 외부에서 오시는 상담사들은 실적을 남기기 위해서 기록을 하고 한 명당 얼마씩 돈을 받아 갔어요. 그것 때문에 마음을 닫아건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우린 비밀보장각서를 쓰고 시작해요. 내담자가 얘기한 내용이나 증상에 대해선 절대 누설하지 않고, 만일 누설하면 법적 책임을 지겠다고.”

―고과나 근무기록에도 영향을 안 미치고요?

“없어요. 그 문제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어요. 외상을 경험해도 스트레스를 잘 관리해주면 질병으로 진행이 안 돼요. 그걸 부정하고 방어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병이 되는 거죠. 마음을 열어서 잘 풀어주는 게 중요해요.”

소담팀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건 보험설계사였다. 소방관들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여러 번 방문하고 가벼운 인사 나누기로 낯을 익혀서 서서히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 같은 소방관 출신이라는 동질감은 마음의 빗장을 푸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되곤 했다. 미국이나 일본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되어오던 방법이지만 소담팀의 동료 상담 사례는 국내 소방관의 심리적 안정과 치유에 특히 좋은 전형이 될 듯한데, 아직 국내 다른 지역에서 이런 상담 방식을 공식적으로 채택한 사례는 없다. 그래도 박승균은 최근 전남에서 소방관 전문상담사를 9명 규모로 늘리고 소담팀 사례를 문의해온 것에 희망을 갖는다.

―소담팀 사례가 더 확산될 수 있을까요?

“소방청 차원에서도 전국에 상담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 모아서 긴급심리지원단 같은 거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제천 사건만 해도 소방관들이 심리적 케어를 거의 못 받고 있거든요. 인명구조에 실패하면 누가 뭐라고 비난하지 않아도 소방관들 스스로가 엄청난 자괴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려요. 심리지원단이 생겨서 전국 어디든 다니면서 상담치유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가진 올해의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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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은 무엇으로 사는가


―아까 현장에 가는 게 좋다고 하셨죠? 그렇게 신체적·심리적으로 위험요소가 많고 때론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데, 뭐가 좋다는 겁니까? 대부분의 소방관이 이 힘든 일을 계속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겠지요?

“고기가 물을 만나면 행복해요. 소방관이 현장에 있으면 내가 살아 있다는 그런 느낌을 받는 거예요.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현장이 있다는 거, 진짜 필요할 때 불을 빨리 꺼서 국민의 재산을 지켜냈을 때, 그분들의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에 모든 걸 날려 보내죠. 생명을 살렸을 때 그 희열은 평생 가요. 나만 알죠. 언론에 안 나오고 아무도 몰라도, 나는 생명을 살리고 있다는 걸 알아요. 그거 하나가 굉장한 자부심이에요. 출동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염라대왕과 천사 사이에 소방관이 끼어 있어요. 염라대왕이 데려가면 소방관이 못 살리지만, 항상 갈 때마다 기도하죠. 제발 살릴 수 있게 해주세요….”

―인간이 그런 희열과 보람에 모든 걸 걸 수도 있는 존재인가요? 심지어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도? 소방관도 가족이 있고 생계를 걱정하는 평범한 인간인데요.

“그건요.(웃음) 이거 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박승균은 한동안 난감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의 얼굴엔 소방관의 희열과 보람을 기억하는 미소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 맛’을 어떻게 소방관이 아닌 내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불을 보면 순간 사람이 모든 게 확 변해버려요. 굉장히 용감해져요. 평범할 때는 굉장히 일반적인 사람의 모드로 살다가 소방관이란 옷을 입으면 확 바뀌어요. 생명을 살리러 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도 모르게 그런 모드가 되는 거예요. 9·11 테러 때 소방관들이 그랬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다 안전한 지대로 가지만, 나는 무너진 저쪽으로 걸어간다.’ 당당하게 걸어가는 거예요. 물론 인간이니까 오만 가지 생각이 들겠죠. 무너지면 나도 죽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소방관이니까 생명을 살려야겠다’ 그런 힘이 있는 거죠. 그만큼 소방관이라는 고귀한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소방관은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에요.”

―그런 생각은 소방관이 되고 나서 하시게 된 건가요? 소방관이 아니었다면 달랐을까요?

“사회 친구들 만나면 다 ‘돈’이에요. 돈, 돈…해요. 저희 소방관이 사실 그런 데 굉장히 무지한 편이죠. 우리는 내일 어떻게 될지 몰라. 선생님과 제가 지금 만났지만 이후에 어떻게 될지 몰라. 이 순간이 중요하고 소중한 거예요.”

―박사학위 마치면 뭐하실 거예요? 대학에 가실 수도 있을 테고….

“대통령이 소방관을 위한 복합치유센터 짓겠다고 하셨는데, 소방관들의 심신건강을 위해서 뭔가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저는 정년 지나도 정부에서 주는 연금은 받을 테니까 꾸준히 이 일을 하고 싶어요. 좀 외로운 건 있어요.(웃음) 이런 일을 해본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처음에 나가는 사람은 밤새 내린 눈이 가슴팍까지 쌓여 있단 말예요. 마실을 가려면 한 사람이 눈길을 내고 지나가 줘야 하거든요. 그래야 뒤에 오는 사람이 조금 편해질 테니까. 난 작지만 눈길을 내는 사람이고 싶어요.”

별빛 가득한 겨울밤, 보석처럼 반짝이는 흰 눈 사이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새로운 재난안전시스템의 설계는 탁상 위의 숫자놀음이나 정치적 공방이 아니라 현장 소방관들의 지혜와 진정 어린 마음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녹취 이수현




박승균을 만든 시간들

한겨레

사랑하는 딸과 아내. 가족은 삶의 활력소이자 행복의 원천이다.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준 아내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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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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