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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로사의 신콜렉터] 유령이 되어 돌아온 이 남자의 미스터리한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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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스트 스토리’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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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 바깥에선 간간이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낮은 조도의 조명 아래 소파에 겹쳐 누운 C(케이시 에플렉)와 M(루니 마라)은 서로에게 속삭이고 있다. M이 말한다.

“나 어렸을 때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쪽지에 글을 적고, 아주 작게 접어서 구석구석에 숨겨두곤 했어. 그러면 돌아가고 싶을 때, 거기에 내 일부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돌아간 적 있어?”

“아니. (…) 그럴 필요 없었으니까.”

“뭘 썼어?”

“그냥 노래 가사나 시들. 지금도 기억이 나. (…)”

“왜 이사 갔어? 왜 그 모든 집들을 떠난 거야?”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잠깐의 암전 후 다음 장면. 어디선가 벽을 긁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이 집에선 이상한 소리가 들려.”

M이 말하고, C가 무심코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을 때, 살아있는 듯 일렁이는 색색의 빛 그림자가 벽을 타고 올라간다. 이윽고 그것은 영원을 품은 광대한 우주의 빛으로 바뀐다.

어떤 유령의 이야기

이후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영화 <고스트 스토리>는 얼핏 사랑하는 연인을 떠난 남자가 유령이 되어 돌아오는 흔한 러브 스토리처럼 보인다.

음악가인 C는 미국 텍사스 한적한 교외의 오래된 주택에서 아내인 M과 함께 살고 있다. M은 이사하기를 바라지만 C는 오래된 집에 대해 알 수 없는 애착을 보인다. 결국 둘은 이 집을 떠나기로 하지만, 이사하는 날 비극이 일어난다. 남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것이다. 여자는 영안실에서, 흰 시트에 덮인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자리를 떠난다.

이후 카메라는 아주 오랫동안 영안실을 비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남자는 시트를 뒤집어쓴 채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서 밖으로 걸어 나간다.

두 개의 구멍이 뚫린 시트를 뒤집어쓴 유령은 처음엔 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그 농담 같은 존재가 말없이 드넓은 평원을 가로질러 집까지 성실히 걸어가는 이미지는 알 수 없는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마침내 집에 돌아온다. 그러나 관객의 예상과 달리 여자와 대화를 나눌 수 없다. 그는 여자의 눈에 보이지조차 않는다. 그는 그렇게 홀로 남은 그녀의 슬픔을 바라보는 과묵한 목격자가 된다.

유령이 집에 머무르는 동안 세계는 변화한다. 슬픔을 견디던 여자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결국 집을 떠나간다. 쪽지에 무언가를 적어 문지방 사이에 숨겨둔 채로. 이후 새로운 가족이 이사 오고, 또 다른 젊은이들이 이사 와 파티를 열고, 유령은 줄곧 여자가 숨겨둔 종이쪽지를 꺼내려 애쓴다. 빈 시간을 거쳐, 집은 철거된다. 세계는 억겁의 시간을 지난다. 유령은 그러는 동안 이 집에 갇혀, 영원을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처음과 만나게 된다.

영화의 사유가 확장하는 것은 이때부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나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상실과 슬픔에 대한 탐구로만 보였던 영화는, 인간의 필멸과 영원성에 대한 탐구로 나아간다.

나는 한순간 살다가 죽을 것이고,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 뒤에는 유구한 시간이 남을 것이다. 왜 우리는 이곳을 떠나야 할까? 내가 떠난 뒤 이곳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 쪽지에 무언가를 적고, 작게 접어서 숨겨둔 그것이 유구한 시간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감각할 수 있을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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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는 세계의 감각

우리의 삶은 임시적이고 부서지기 쉽다. 그 삶의 너머에는 무엇이 남는가? <고스트 스토리>는 이런 감각을 으스스하고 낯선 방식으로 체험하게 하는 이상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영화다.

영화의 원제가 ‘어 고스트 스토리(A Ghost Story)’인 것은 이것이 특정한 유령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를 떠도는 모든 유령의 이야기. 유령으로 형상화한 그것은 고요히 세계 곳곳에 고여 우리가 마주쳐주기를 기다리는 미스터리한 모든 것이다.

영화는 밤중에 집이 내는 알 수 없는 소리, 어두운 벽에 일렁이는 빛 그림자와 같은 미세한 것들로 이런 신비로운 감각을 체험하게 한다. 무엇보다 영화의 카메라는 종종 아주 오랫동안 무언가를 바라본다. 그것은 보통 영화에서 삭제되거나 생략되는 과정, 경계나 틈새에 있는 것들을 마주하게 한다. 홀로 된 여자가 빈집에서 무표정하게 파이를 먹는 장면은 장장 5분간 이어진다. 살아있는 동안 두 남녀가 침대에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얼굴을 부비는 시간, 영안실에 누운 남자가 유령이 되어 일어서기까지의 시간 역시 상당히 긴 롱테이크로 보여진다. 이 같은 장면들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 프레임 속 인물이 아니라 거기에 고인 시간임을 일깨워준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1시간 반 동안 이런 감각을 체험하는 행위에 가깝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내가 사라진 세계 그 너머의 긴긴 유구한 시간을 흘끗 넘겨다본 기분이 된다.

감독 데이비드 로워리는 한 인터뷰에서 <고스트 스토리>를 찍는 동안 자신이 존재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인류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었고, 세계가 종말에 와 있다고 느꼈다. 영화는 말하자면 이러한 문제에 대한 감독의 대답이다.

세계는 끝에 다다랐고, 자신의 존재가 위태롭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야 할까? 영화의 중간에는 이 집에 잠시 머물렀다 떠난 한 물질주의자의 장광설이 등장한다.

“우리는 자신의 유산을 쌓아올리며 생각하지. 이걸로 그들이 나를 기억해줄 거야. 그래서 우린 아직 책을 읽고 노래를 불러. 베토벤은 교향곡이 있고. 모든 사람이 그걸 계속 듣겠지. 하지만 우리는 다 죽을 거야. 하나의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나 해수면은 상승하고 인류의 90%는 사라질 거야. 사회의 질서는 붕괴하고 인류는 청소부, 사냥꾼, 채집가로 돌아갈 거야. 그중 누군가는 어느 날, 옛날의 멜로디를 흥얼거릴지도 모르지.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을 흥얼거린다.) 그리고 모두에게 작은 희망을 심어주겠지. 인류는 멸종의 위기에 직면하는데, 조금의 유예를 갖게 된 거야. 누군가 동굴에 울려 퍼지는 멜로디를 들었기 때문에. 물리적인 귀의 울림으로써. 공포나 기아, 증오가 아닌 뭔가 다른 그 너머의 감정으로. 인류는 살아남지. 그리고 문명의 꽃이 다시 필 거야. 넌 여기서 책을 마치고 싶어지겠지. 그러나 오래가지 않을걸. 지구는 또 소멸하게 될 테니까. (…) 모든 것이 반복되지. 젠장, 다 아무 소용이 없어.”

영화 전체는 이 물질주의자의 주장에 대한 느리고 구슬픈 반박처럼 느껴진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그 자체로 ‘동굴에 울려 퍼지는 멜로디’가 되기를 꿈꾸는 듯하다. 그리고 영화가 경험하게 하는 낯설고 미스터리한 것에 대한 사소한 감각은 이상하게도, 이 끝장난 세상을 버티는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가슴속의 빛을 던져준다.

<고스트 스토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소설 ‘유령의 집’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며(“문득 잠에서 깨어 눈을 떠보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곳곳에 그 영향이 짙게 드리워 있다. 유령이 억겁의 세월을 넘어 비로소 발견한 것, 여자가 쪽지에 적어 숨겨둔 것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이것이 아니었을까?

“착! 착! 착!” 집의 맥박이 마구 뛴다. 나는 눈을 뜨고 소리친다.

“아, 이게 당신들이 숨긴 보물이에요? 가슴속의 이 빛이(The light in the heart)?”(버지니아 울프 ‘유령의 집’ 중에서)

경향신문

<이로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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