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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What-美가 휘두르는 칼 ‘지원금’] 원조금을 협상 판돈으로···트럼프의 잔인한 갑질

글자크기

[지원금 덫으로 글로벌 흔드는 美]

"예루살렘 선언 반대땐 유엔 예산↓"

부시·오바마도 자국 이익 위해 ' 칼춤'

원조금이라 쓰고 투자금이라 읽을 판

[세계 최대 원조국서 발빼는 美]

작년 대외원조에 419억弗 썼지만

유엔 예산 삭감·유네스코 탈퇴 등

올핸 전년 대비 30% 줄여 편성

[트럼프의 욕심, 소탐대실 될수도]

"말 안들으면 지원 중단" 노골적 협박

국제사회서 美 리더십 약화 초래

글로벌 패권 노리는 中은 영향력↑

서울경제

“저들은 수억·수십억달러를 가져가면서도 우리에게 반대표를 던진다. 그들이 미국에 반대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돈을 많이 아끼게 될 것이다.” (2017.12.2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을 백지화하는 결의안 표결에 앞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미국의 결정에 반대하는 국가들의 이름을 적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데 이어 보다 노골적인 압박에 나선 것이다.

세계 각국이 유엔에서 행사하는 독립적인 투표권에 대해 이처럼 직접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무기는 ‘돈’이다. 미 일간 LA타임스 등에 따르면 2017회계연도에 미국이 해외 각국에 제공한 원조금은 전체 예산의 약 1%에 해당하는 419억달러(약 44조9,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182억5,000만달러가 전 세계 92개국에 경제원조로, 182억3,000만달러가 총 143국에 안보원조 명목으로 지원됐다.

유엔 같은 국제기구부터 세계 곳곳의 빈곤국들에 미국이 제공하는 원조금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실현하는 ‘휴머니즘’의 일환으로 미화되기도 하지만 실상은 미국이 입김을 강화하고 자국 안보를 지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배정하는 ‘투자금’이다. 불안정한 빈곤국에 제공되는 미국의 ‘공짜 돈’은 미국의 우호세력을 확보하거나 테러리즘의 온상이 될 수 있는 국가, 미국의 적대국과 대립하는 국가로 흘러 들어가 미국이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냉전시대인 지난 1961년 미국 대외원조를 담당하는 국제개발처(USAID)가 설립된 후 이 기구를 통해 제공된 원조금은 옛소련 붕괴 이후 감소했다가 2000년 9·11테러 직후 증가했다. 2015년 현재 미국 안보지원의 주요 수혜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이집트·파키스탄 등이었다는 사실도 이러한 설명을 뒷받침한다.

이 때문에 지원 대상이 미국의 가치나 뜻을 거스르려 할 때 이 돈은 이를 관철하기 위해 미국이 휘두르는 칼이 된다. 1990년 조지 H W 부시 전 행정부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 철회를 압박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투표에서 예멘이 반대표를 던지려는 조짐을 보이자 수천만달러의 지원금이 끊길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2011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나이지리아 정부가 동성애금지법을 통과시키면 원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압박한 바 있다.

하지만 대외원조금을 볼모로 삼은 미국의 위협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극에 달하고 있다. 대놓고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이 ‘남 좋은 일’은 그만하고 앞으로 자국의 이익 증진에 몰두하겠다며 유네스코 탈퇴, 유엔 예산부터 특정 국가에 대한 지원 삭감 또는 중단을 강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출범 이후 첫 예산안을 짠 트럼프 행정부는 2018회계연도 대외원조금을 전년 대비 30% 삭감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유엔총회에서 미국의 ‘예루살렘 선언’에 반대하는 결의안이 압도적으로 채택된 뒤 미국은 유엔 분담금을 최대 40%까지 깎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2018~2019회계연도 유엔 예산이 전 회계연도 대비 2억달러 줄어드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유엔에 따르면 유엔 예산분담금 가운데 미국의 몫은 6억1,084만달러로 전체의 22%를 차지했다. 이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상임이사국인 중국(7.971%), 러시아(3.088%)의 분담금을 합한 액수보다 많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스라엘 선언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반발이 계속되자 팔레스타인 인권보호를 위한 지원금도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파키스탄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트위터로 “미국이 어리석게도 지난 15년 동안 파키스탄에 330억달러를 지원했지만 그들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쫓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고 불만을 토로한 후 군사지원을 중단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지원 삭감 위협과 실행이 해당 국가들을 미국의 입맛에 맞도록 움직이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보다는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흔들고 해당 국가의 내셔널리즘을 자극하는 결과만 초래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 국무부 관료인 제임스 도빈스는 미 의회 매체인 더힐과의 인터뷰에서 “과거에도 지원금을 내세워 외국 정부를 압박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경우는 원조금을 내세운 노골적인 위협이자 약자 괴롭히기라는 점에서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한 뒤 “해외 국가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지원 중단으로 위협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비생산적이며 미국의 영향력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터키 국영방송 TRT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외원조를 중단하면 국제패권을 노리는 중국이 그 구멍을 메우면서 개도국에서의 영향력을 키우는 발판으로 삼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2000~2014년 인도적 대외 지원금을 3,500억달러까지 늘리며 3,940억달러를 기록한 미국을 거의 따라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최근 미국이 파키스탄에 대한 군사지원을 중단하자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과의 정보공유를 중단하는 등 대미 강경태도를 보이며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나섰다.

스튜어트 패트릭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외교적 현실을 무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중단 위협은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부동산 거래처럼 보인다”며 “부동산 거래에서는 계약을 파기하고 가 버리면 그만이지만 상대 국가들이 남아 있는 외교에서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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