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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박정민, "특수학교 봉사…그게 제 진심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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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②] "스스로 학대하는 성향…언젠가 들통나게 돼 있다는 생각"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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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동생 오진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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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이 내 세상' 속 박정민의 연기는 철저히 밀착된 관점에서 이뤄졌다. 그가 출연을 결심하고, 장애 학생들이 있는 학교에 봉사활동을 가면서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박정민은 책에 쓰여진 대로 그들에게 치매 환자 대하듯이 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고 느낀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를 온전히 아이들과 보내면서 조금이나마 그들의 삶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증상 외에 연기에 아이들의 특성을 참고하거나 흉내내서는 안된다는 원칙도 마음에 심었다.

그는 연기를 못하는 배우가 아니다. 오히려 잘하는 축에 속한다. 그 말인 즉슨,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 자료를 보고 자폐증을 가진 이들의 몸짓이나 말투를 얼마든지 답습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박정민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흉내가 아닌 삶 속에서 알아가기를 택한 탓이다.

다음은 박정민과의 일문일답.

▶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학교로 봉사활동을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된 건지 궁금하다.

- 오진태를 연기하는 박정민이 보여줄 수 있는 한 가지 진심이 무엇일지 계속 생각하다가 봉사활동을 해보자 싶었다. 고민이 많았다. 외부인이 어느 날 갑자기 연기하겠다는 식으로 교실에 들어와서 누군가를 관찰하고 이런 것 자체가 무례한 일일 수도 있지 않나. 그렇게 2~3주 고민을 하다가 학교에 내 직업을 밝히고 전화를 걸었다. 자원봉사를 해도 될까요, 물었더니 너무 좋아하시는 거다. 학급에 정말 인력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7교시를 전부 다 하겠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놀라시더라. 그 때는 왜 그런가 싶었는데 아이들 대하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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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동생 오진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연기 때문에 간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 중에 아이들의 사소한 습관이나 이런 것들이 연기에 녹아들 수도 있었겠다.

- 아이들을 보며 집에 가서 연습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내게 혹여나 말씀드리지만 우리 반에 있는 아이들의 특성을 따라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었다. 누가 봐도 어떤 아이의 특성인지 보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라. 그 때 나도 '아차' 싶었다. 그래서 책과 영상을 보며 그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해주고, 진태로서 가져가는 걸 창조해서 만들어냈다.

▶ 해당 학급의 아이들과는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갔는지 궁금하다.

- 일단 자폐를 가진 분들과 그 가족 분들 그리고 복지사 분들, 그런 분들이 영화를 볼 때 불쾌하지 않아야겠다는 게 첫 번째 원칙이었다. 5명 친구들에게 그 전 주에는 똑같이 '뭐했어', '밥 먹었어?' 이러다가 내 친구로, 친한 동생으로 대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게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 말을 이해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농담을 하니까 아이가 씩 웃더라. 그렇게 평범하게 대한 순간, 아이가 스스로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내게도 진태를 연기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들을 존중해나가는 또 하나의 과정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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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동생 오진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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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모그래피를 보면 쉬운 영화가 하나도 없었다. 일부러 그렇게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작업을 찾아서 하는 편인가.

- 계속 그런 걸 하니까 그냥 팔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작품들을 만나면 아주 큰 장점으로는 기술이 생긴다는 거다. '전설의 주먹'을 찍고 복싱이 재미있어서 몇 년을 했으니까 아마 액션씬이 있으면 크게 훈련하지 않아도 해낼 수 있을 거고, 피아노도 집에서 계이름 적어가며 연주하는 취미가 생겼다. '변산' 같은 경우도 래퍼니까 거기에 나오는 노래 가사들 중에 상당 부분을 제가 썼다.

▶ 그렇게까지 본인이 힘든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 마음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는 불안감. 그게 나를 갉아먹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거 때문에 소파에서 일어난다. 나는 좀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칭찬을 들으면 자신감이 생기지만 내 안에는 '웃기지마. 언젠가는 들통나게 돼 있어'라는 마음이 크다. 그러니까 안심하지 말라는 마음이 내 안에 있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어도 뭔가 정립된 것이 아니라 항상 흔들리니까 내 또래 배우들도 주변에 보면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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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동생 오진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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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치열하게 일한 후에 또 재충전의 시간이 없으면 안될 것 같다.

- 친한 배우들이 있다. 배성우 형, 이제훈 형, 류덕환, 뭐 그런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신다든지 한다. 아니면 집에서 운다든지, 힘든 운동을 한다든지 하루 동안 미친 척하고 한 가지 일만 해본다든지, 여행을 다녀온다든지 털어내고 다시 시작하는 거다. 그러다가 내가 뭐하는거지 하는 마음이 들어야 다시 돌아가니까. 최근에는 피아노가 도움이 되더라. 한 곡을 치다 보면 어느 새 두 세 시간이 훌쩍 가 있다. 요즘에는 그림도 많이 그린다. 가까운 형들 얼굴 그려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연하장도 드렸다. 이병헌 선배는 '그림도 잘 그리니?' 이렇게 답을 주시더라. (웃음) 재능은 없고 욕심만 있어서 이것 저것 한다. 어차피 세상에 보여줄 게 아니고 나 혼자하는 거니까 재미있다.

▶ 원래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눈물이 많은 편인지, 아니면 최근에 와서 늘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 그러게. 눈물이 많이 없는데 요즘에 약간 그렇다. 복합적인 마음인 것 같다. 나는 이 일을 좋아했던 사람인데 어느 순간 일에 치이고 있어서 슬플 때도 있고…. 그렇게 울어버리면 털어지는 게 또 있더라. 예전에는 끝까지 참고 울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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