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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혈액-게놈-인공지능까지 활용… 치매 조기발견에 연구 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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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최전선]치매

<2> 사전 포착이 관건… 진단에 총력

동아일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람과 정상인의 뇌를 양전자단층촬영(PET)으로 검사해 보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은 초반에 급격히 증가하지만(아래 세 그림), 타우 단백질은 시간에 따라 서서히 증가함을 알 수 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는 이 현상을 이용해 치매 조기 진단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를 2016년 세계적인 학술지 뉴런에 발표했다. 사진 출처 UC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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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제약사 화이자가 이달 6일 자체 개발 중이던 치매 치료제 연구를 전면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8일에는 글로벌 제약사 악소반트 사이언스도 치매 치료제 개발을 포기하고 사업부를 전면 정리하기로 발표했다. 작년 9월부터 11월까지 국가치매연구개발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묵인희 서울대 의대 교수는 “오랫동안 투자를 했는데 임상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기술력에 자신이 있는 회사들을 제외하고는 임상시험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치매 연구가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다. 그렇다고 치료제 연구가 침체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은 국가 차원에서 공격적으로 연구비를 늘리고 있다. 9일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국립보건원(NIH)이 지원한 치매 연구비는 2013년에서 2017년 사이에 세 배 늘었다. (제약사들의 후퇴에도 불구하고) 초기 조치를 중심으로 과학 연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치매를 조기에 진단하기 위한 연구가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치료가 어려운 만큼 초기에 발견해 진행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암을 비롯한 모든 난치병이 조기 발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치매는 더욱 특별하다. 인류는 아직 치매의 여러 종류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을 제대로 모른다. 사전 진단을 위해 무엇을 측정해야 할지 그 항목을 정하는 것부터가 연구 과제다.

그렇다 보니 치매 진단 기술 연구는 춘추전국시대를 떠올리게 할 만큼 다방면에 걸쳐 있다. 오랫동안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생각해 온 뇌 속 노폐물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를 전용 양전자단층촬영(PET)으로 찍어 확인하는 게 현재의 진단법이다. 이나마 임상에서 진단에 활용하기 시작한 지 5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묵 교수는 “치매의 증상인 인지 저하가 나타나기 최장 20년 전부터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가 쌓이기 때문에 이것을 사전에 눈으로 확인한다는 것은 조기 진단 분야의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 쌓인 양이 시간에 따라 일정하게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검출이 돼도 아밀로이드가 언제부터 뇌에 쌓이기 시작했는지 알 방법이 없다. 또 비싸기 때문에 젊은 정상인이 미리 진단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65세 이상 검사자의 80%는 이미 치매 증상이 나타난 뒤인데 이 단계에서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진행된 단계일 때가 많다.

현재 조기 진단 분야는 크게 두 가지 전략을 연구 중이다. 하나는 초기 치매의 단계를 추정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를 개발하는 것이다. 아밀로이드 베타 대신 또 다른 뇌 속 노폐물 단백질인 타우 단백질의 농도를 측정하는 연구가 대표적이다. 타우 단백질은 아밀로이드 베타와 달리 시간에 따라 일정하게 축적량이 늘기 때문에 그 양을 측정하면 치매 단계 추정이 가능하다. 현재 세계 여러 연구팀이 이 특성을 진단에 활용하기 위한 기초연구를 진행 중이다.

다른 하나는 고가인 PET 대신 좀 더 간편하게 진단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크게 세 분야가 널리 연구되고 있다. 먼저 혈액 검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한국에서는 묵 교수와 이동영 서울대 의대 교수 팀이 지난해 10월 혈액을 이용한 진단 도구를 개발해 국내 특허를 받고, 국내 기업에 기술을 이전한 사례가 있다. 묵 교수는 “혈액 속 아밀로이드 베타를 측정하면 농도가 들쭉날쭉한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가지런하게 정리하는 처리 기술을 개발한 것”이라며 “네 종류의 추가 지표 단백질도 발굴해 뇌 속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의 침착 여부를 더 정밀하게 알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검사 예측 정확도는 최대 90%에 이른다는 게 묵 교수의 설명이다.

새로운 진단 단백질을 탐색하는 연구팀도 있다. 뇌에 아밀로이드 덩어리가 쌓일 때는 신경세포가 모여 ‘엑소좀’이라는 주머니에 단백질을 담아 혈액 내에 방출한다. 최영식 한국뇌연구원 뇌질환연구부장은 “이 엑소좀을 분석해 사전 진단이 가능한 단백질 후보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타우 단백질을 뇌척수액이나 혈액에서 검출하려는 시도도 있다. 아밀로이드에 비해 혈액 내 단백질 농도가 더 낮기에 진단에 이용하기가 훨씬 까다롭다. 하지만 보다 간편한 검사가 가능한 장점이 있어 많은 연구팀이 연구 중이다. 영국 랭커스터대 연구팀은 팔에서 뽑은 혈액에서 혈장을 분리한 뒤 빛을 통과시켜 성분을 분석하는 기법을 작년 9월 개발했다. 치매 환자에게 많은 혈액 물질이 검출되면 치매를 사전 진단할 수 있다. 작년 7월 미 오하이오주립대 연구팀도 뇌척수액과 혈액을 이용해 사전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해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하기도 했다.

게놈 데이터를 이용한 예측법도 연구 중이다. 알츠하이머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를 파악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캐나다 맥길대 연구팀은 지난해 10월 뇌세포 사이에 신호 전달을 하도록 유도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물질(RNA)이 치매 환자의 경우 정상인보다 빨리 분해됨을 확인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연구책임자인 하메드 나자파바디 맥길대 인간게놈학과 교수는 “게놈 데이터를 수학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으로 RNA 분해 패턴을 예측할 수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치매를 조기 진단하는 기법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영상 진단법도 진화하고 있다. 최 연구부장은 “세계적으로는 의료 영상이나 유전정보 데이터에 인공지능을 결합해 사전에 치매를 예측하는 연구가 크게 유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 분야 국내 대표적 연구자인 이종민 한양대 전기·생체공학부 교수는 “PET나 자기공명영상(MRI)과 딥러닝, 유전자 연구를 접목해 치매 고위험 유전자를 찾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이를 통해 치매를 조기 진단하고 병의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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