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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게리 올드먼 ‘인생작’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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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영화 ‘다키스트 아워’-

‘덩케르크’ 프리퀄격 정치영화

총리 처칠 내면까지 완벽 재연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수상



한겨레

<다키스트 아워>의 한 장면. UPI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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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요, 어떤 공포에서도 승리요,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승리해야 한다. 승리 없이는 생존이 없기 때문이다.”(윈스턴 처칠)

2002년 <비비시>(BBC)가 국민 100만명에게 ‘가장 위대한 영국인’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셰익스피어, 다윈 등을 제치고 1위에 오른 인물은 ‘윈스턴 처칠’(1874∼1965)이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총리에 취임해 “굴복하지 않는 용기”로 전 유럽을 “암흑의 시간”에서 구해낸 영웅이다. 17일 개봉하는 <다키스트 아워>는 처칠의 이야기를 다룬다.

1940년 5월. 영국군을 비롯한 40만명의 연합군은 독일군의 공세 앞에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다. 벨기에·네덜란드·덴마크·노르웨이가 독일 수중에 떨어졌고, 마지노선이 뚫렸다. 프랑스는 항복하기 일보 직전. 누구보다 앞서 ‘독일의 공습’을 예견했던 처칠(게리 올드먼)은 총리에 임명된다. 영화는 처칠이 총리에 오르고,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밀어붙이기까지 4주간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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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키스트 아워>의 한 장면. UPI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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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라이트 감독의 <다키스트 아워>는 지난해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덩케르크>와 여러모로 비교된다. 내용상 <다키스트 아워>는 <덩케르크>의 ‘프리퀄’이다. <덩케르크>가 영국군을 무사히 철수시킨 ‘다이너모 작전’에 집중했다면, <다키스트 아워>는 작전이 결정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낸다. 장르상 <덩케르크>가 하늘과 바다와 해안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라면, <다키스트 아워>는 의회와 지하벙커 안 워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정치영화’다.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결사 항전”을 외치는 처칠이 “생존이 최우선”이라며 협상을 종용하는 여당 주류파와 대립하는 과정을 그린다. 전개 방식도 상반된다. <덩케르크>가 여러 인물의 시선을 오가며 냉철한 묘사에 집중했다면, <다키스트 아워>는 처칠에만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처칠을 다층적이고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타자 행갈이를 잘못했다며 새 비서(릴리 제임스)를 눈물 쏙 빼게 혼내는 괴팍하고 다혈질인 처칠. 그의 황소고집은 국왕 조지 6세마저 “두렵게” 할 정도다. 작은 키와 뚱뚱한 몸집에 말투는 웅얼거려 알아듣기 힘들다. 시도 때도 없이 시가를 피워 물고 종일 위스키를 홀짝인다. 하지만 처칠은 위기의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어떻게 그렇게 술을 마시냐”는 왕의 핀잔에 “연습을 많이 하면 된다”고 응수하는 식이다. 또한 그는 달변가이자 명문장가다. 종반부, 의회 연설에서 한 의원이 “윈스턴이 달변이라는 무기를 전쟁터로 내보냈다”고 탄식하는 장면은 이를 잘 보여준다. 영화엔 나오지 않지만 처칠은 195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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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키스트 아워>의 한 장면. UPI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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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키스트 아워>는 게리 올드먼의 ‘원맨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주물을 떠 만든 특수 보디슈트를 착용하고, 촬영마다 분장에만 3시간 이상 투자하는 노력 끝에 완벽한 처칠로 재탄생했다. 외모뿐 아니라 목소리와 말투, 손짓까지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또 신념에 차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회의하는 처칠의 내면까지 완벽하게 재현한다. 그래서 영화엔 처칠만 존재할 뿐 게리 올드먼은 보이지 않는다. 골든글로브가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처칠 내면에 집중하다 보니 영화는 시종일관 느리고 묵직하다. 어둡고 탁한 배경도, 계속해서 처칠을 혼자 가둬두는 카메라의 프레임도 그런 무게감을 더한다. 대중성이 약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전철도 한번 못 타 본” 금수저 처칠이 전철 속 평범한 국민과 교류하며 용기를 얻는 장면 등은 ‘민의를 받든 처칠’이라는 서사의 당위성과 감동을 끌어내기 위한 작위적 구성으로 느껴져 아쉽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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