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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피아니스트 백혜선 "교수로서도 연주자의 삶 포기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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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뉴잉글랜드음악원 교수 임용된 피아니스트 백혜선

매일경제

"학장님께서 크리스마스 전 급히 뉴욕에 와서 만나야 될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그 만남 이후 이틀 만에 뉴잉글랜드음악원 교수로 임용됐습니다. 정말 빠른 결정이었죠."

피아니스트 백혜선(53)이 미국 뉴잉글랜드음악원(The New England Conservatory·NEC) 피아노과 교수로 임용됐다. 1867년 설립된 NEC는 보스턴에 위치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 음악대학이다. 러셀 셔먼, 로런스 레서 등이 이곳에서 교수직을 맡아 쟁쟁한 음악가들을 길러냈다. 오랜 역사만큼 명망도 높다. 오디션을 통한 입학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첼리스트 문태국,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등 장래가 촉망되는 한국 연주자들도 이 학교에서 수학했다. 백혜선 자신의 모교이기도 하다.

"NEC 교수직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 건 교수로서도, 연주자로서도 충실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교수에게도 연주를 굉장히 권장합니다. '선생이 학교에 고여 있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다면 연주를 얼마든지 다녀야 한다'는 주의죠. 학생 숫자도 조정이 가능해요. NEC에서는 열 명의 학생만 가르치면 되죠."

1994년 한국 국적 최초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1위 없는 3위에 입상했던 백혜선. 이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입상, EMI와 인터내셔널 음반 최초 발매 등 화려한 경력을 일궜다. 30세 때는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됐다. 하지만 10년 만에 돌연 사직서를 내고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를 회상하며 백 교수는 한국 대학제도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한국 학교는 규율과 규제가 많아 교수와 연주자로서 두 삶의 균형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너무 많아 하나만 고르기가 어렵다며 재학 시절 추억 보따리를 끊임없이 풀어놓았다. 그런데 정작 피아노 이야기는 없었다. "글도 써야 했고, 미술관도 꾸준히 가야 했고, 과학 잡지를 12권이나 읽었죠. NEC에 있는 모든 선생님은 제게 인문학적 소양을 피아노 연습만큼이나 강조하셨어요. 돌아보면 그때 그 지식을 쌓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연주를 못했을 것 같아요."

지난해 11월, 4년 만에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한 백혜선은 당시 베토벤의 '디아벨리 왈츠에 의한 33개 변주곡'을 선보였다. 올해도 베토벤이다. 3월 1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와 협주곡 전곡 사이클의 첫 연주회를 가진다. "베토벤은 음악가들에게 엄청난 용기와 희망, 그리고 도전을 주는 작곡가예요. 알고 있다고 생각되다가도 막상 연주하면 늘 힘들어요. 기교가 아니라 정신을 요구하기 때문일까요. 자만하면 필히 망하는 참 이상한 작품이에요." 2년간은 베토벤에게 몰두할 예정이라고."제가 꼭 넘어야 할 산이라, 너무 늙기 전에 빨리 한 번 넘어보려고요"(웃음).

"이 일이 나를 위한 건가, 학생들을 위한 건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아닐까." 작년만 해도 음악가로서 고민이 많았던 그다. 새해에는 훌훌 털어버리고 '최선'을 다짐했다. "이번을 계기로 돌아보니 제게는 남들보다 기회가 많이 주어졌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보니 감사해야 하는 일이란 걸 느껴요. 그래서 앞으로는 제게 오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저에게 '최선은 곧 솔직함'입니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청중에게 솔직하고, 학생에게 솔직한 사람이 되는 게 새해 목표예요."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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