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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단독] “고문 없었다” 발뺌했던 수사관 ‘위증 혐의’로 법정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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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재일동포 조작 간첩사건 피해자

대법원 재심서 무죄판결 받고

검찰 쪽 증인 나와 사과는커녕

고문 부인한 수사관 위증죄 고소

검찰, 공소시효 이틀 전에 기소

“고소 5년간 뭐 했나” 직무유기 논란



한겨레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로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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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조작 간첩 사건 피해자의 재심 재판에서 “고문하지 않았다”고 증언한 전 국군 보안사령부(보안사·현 기무사령부) 수사관이 위증 혐의로 뒤늦게 기소됐다.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수사관의 위증 책임을 물어 검찰이 기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임현)는 지난 13일 재일동포 조작 간첩 피해자인 윤정헌(64)씨의 재심에서 위증한 혐의로 전 보안사 수사관 고아무개(78)씨를 기소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고씨는 2010년 12월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심 재판에 검사 쪽 증인으로 출석했다. 고씨는 재판에서 “증인(고씨)은 피고인에게 구타나 협박 등 가혹 행위를 한 사실이 없지요?” “피고인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하거나 유도한 사실이 없지요?”라는 검사의 질문에 “예,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변호사가 “피고인의 옷을 벗긴 채 철제의자에 앉히고 몸을 끈으로 묶고 몽둥이로 구타하였지요” 등의 반박 질문을 했지만, 역시 “그런 사실이 없다”고 고씨는 진술했다. 고씨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윤씨는 2011년 대법원에서 고문 등을 인정받아 재심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앞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일본에서 태어난 윤씨가 고려대 의과대학에서 유학하던 1984년 보안사에 불법 연행돼 45일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당시 진실화해위는 “보안사가 1970~80년대 대학가 시위를 막기 위해 그 배후로 재일동포 유학생을 지목하고, ‘재일동포 모국 유학생 위장 간첩 근원발굴 계획’의 하나로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고문을 통해 사건을 조작했다”고 지적했다.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윤씨는 재심 재판에서 “고문하지 않았다”고 증언한 고씨를 잊지 못했다. 고씨가 자신의 수사를 주도했기 때문에 얼굴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고씨는 사과는커녕 윤씨의 주장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윤씨는 대법원에서 재심 무죄판결을 받은 이듬해인 2012년 10월 고씨를 위증·모해위증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검찰 수사가 진전이 없자 2014년 법원에도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서울동부지법은 지난 1월 “보안사에서 고문이 이루어질 당시 고씨가 직접 가담했거나 적어도 수사2계 수사관들로 하여금 이를 하도록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윤씨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검찰은 고소장을 접수한 지 5년이 넘도록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위증죄 공소시효인 7년(2017년 12월15일)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고씨의 위증 혐의만 인정해 재판에 넘겼다. 장경욱 변호사(법무법인 상록)는 “고문한 사람은 공소시효 때문에 처벌하지 못했지만, 재심에서도 사과하지 않고 뻔뻔하게 위증한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 있게 됐다”면서도 “검찰이 5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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