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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김철중의 생로병사] 나 홀로 운동? 운동 않고 친구와 어울리는 게 더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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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살아도 '혼밥' 하면 함께 식사하는 이보다 노쇠

운동 안 해도 어울리는 사람이 혼자서 운동한 사람보다 건강

나이 들어도 동호회 활동하고 함께 어울려야 오래 잘 살아

조선일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초고령 사회이자 세계 최장수 국가, 일본에서 최근 나오는 건강 연구를 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결과가 꽤 다르다. 계란이 먼저라고 여겼던 이들에게 닭이 먼저라는 결론들이 나온다. 밥을 혼자 먹느냐 아니면 여럿이 함께 먹느냐가 노쇠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본 조사가 있었다. 당연히 '혼밥'보다 '여럿밥'이 더 건강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그 안에 흥미로운 변수가 발견됐다.

가족과 함께 살지만 밥을 혼자 먹는 사람과 혼자 살지만 밥만큼은 여럿이서 먹는 사람이 있다. 둘 중 누가 나중에 건강한가 봤더니 혼자 살아도 여럿이서 밥 먹은 이가 튼튼했다. 나이 들어서도 노쇠가 더 늦춰졌다. 가족과 살아도 '혼밥'을 하면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6배 높았고, 영양실조 위험도 2배 컸다. 혼밥은 나이 들수록 영양과 근육에 영향을 미쳐서 수년 후 걷는 속도가 느려질 위험을 50% 높였다. 이 연구의 교훈은 어찌 살건, 밥은 어울려 먹어야 한다는 데 있다. 가족과 살아도 밥을 함께 먹지 않으면 식구(食口)가 아닌 것이다.

일본 동경대 노화연구소가 도쿄 북쪽 인근 도시 가시와(柏市) 지역에 사는 65세 이상 인구 약 5만명을 대상으로 노쇠 정도를 수년간 추적 관찰한 연구도 예상 밖 결론이다. 사회 활동과 노쇠의 연관성을 알아봤다. 일단 정기적으로 운동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장기를 두거나 영화를 보러 다니고, 자원봉사에 나가는, 운동·문화·봉사 삼박자를 갖춘 사람을 노년의 모범적 기준으로 삼았다. 조사 결과, 셋을 모두 하지 않는 사람은 노쇠로 독립적인 생활을 못할 위험이 '삼박자'를 갖춘 이보다 16배 높게 나왔다. 충분히 예상된 결과다.

조선일보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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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문화 활동과 봉사는 안 하고 혼자서 운동만 정기적으로 한 사람이었다. 이들의 건강은 운동과 담쌓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며 문화·봉사만 즐긴 사람보다 나빴다. 나 홀로 운동, 즉 '혼동(動)'족의 노쇠 위험이 3배나 더 컸다. 운동을 하면 좋지만, 운동 안 해도 남과 어울려 사회 활동을 한 사람이 더 튼튼했다는 얘기다. 주변에서 보면 별 운동을 하지 않는데도 매우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오지랖도 참 넓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매사가 활동적이고 활발하다. 그들이 건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되고, 그게 운동 안 한 것을 만회했다.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건강상 악영향도 차단했다는 분석이다. 일본에서는 노쇠 변화를 측정하는 지표에 "예전보다 외출 횟수가 줄었습니까"라는 물음이 꼭 들어 있다. "일주일에 몇 번 남과 어울려 식사합니까"도 필수 질문이다. 혼자보다는 어울려야 노쇠 위험이 적다는 의미다. 장년층이 이를 일찍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노년이 더 건강해진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요즘 노인이 노인을 도와주는 '노노(老老) 케어'를 넘어, 함께 어울리도록 끌어주는 '노노 서포터스' 조직이 활발하다.

우리는 그동안 개인이 체력적으로 힘들면 사회에서 떨어져 나와 점점 고립된다고 봤다. 실은 선후(先後)가 바뀌었다. 사회성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움직임이 줄고, 혼자 남게 되면서 우울증이 오고, 먹는 게 재미없어져 영양도 나빠지고, 결국 신체 기능이 감소하여 노쇠가 온다는 얘기다. 이를 사회성에서 시작하는 노쇠 도미노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는 눈앞에 다가온 고령 사회 태풍을 대비할 때 개인에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보다 건강한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다. 서로 어울리고 봉사도 다니는 토대를 만들어줘야 한다. 경로당과 복지관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동네 놀이터가 남녀노소 누구나 어울리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라톤, 등산 등 혼자 하는 운동도 동호회 산악회를 통해 하는 게 더 좋다. 그래야 여럿이 함께 식사한다. 끼리끼리 잘 모이고, 서로 걱정해주고, 참견도 해가며, 지지고 볶는 게 한국 사회 아니던가. 이를 잘 다듬고 이끌어준다면 고령 사회가 더 이상 부담이 아니다.

나이 들수록 골방에서 장터와 광장으로 나와야 건강하다. 혼자는 외롭고 둘도 부족하다. 그러기에 흩어지면 죽고, 뭉쳐야 산다고 하지 않던가. 어울려야 오랫동안 건강하게 산다. 어울리지 않으면 주저앉게 된다. 고령 사회 원년을 맞아, 올해 연말 송년회 건배사는 '오징어'가 좋겠다. 오래도록 징글맞게 어울리자.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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