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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광화문에서/이승건]‘우리 천하’ 만든 위성우 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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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은 이번 시즌 개막전부터 2경기를 잇달아 졌다. 이 팀의 위성우 감독은 “꼴찌만 안 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니었다. 우리은행은 이후 5연승을 달렸고 1패 뒤 다시 7연승을 질주하고 있다. 18일 현재 12승 3패로 KB스타즈와 공동 1위다.

지난 시즌 역대 최고 승률(94.3%·33승 2패)로 5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했던 우리은행이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출중했던 외국인 선수 존쿠엘 존스와 재계약에 실패했고 주축이었던 양지희는 은퇴했다. 게다가 드래프트를 통해 새로 뽑은 외국인 선수 2명마저 모두 개막 직전 부상으로 교체한 탓에 국내 선수와 훈련할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은 ‘공공의 적’이지만 5년 전만 해도 우리은행은 4년 연속 최하위에 그친 ‘만년 꼴찌’였다. 극적인 드라마는 2012∼2013시즌을 앞두고 구단이 위성우 감독, 전주원 코치, 박성배 코치를 한꺼번에 영입하면서 시작됐다. 손발이 척척 맞는 ‘위성우 사단’의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2010∼2011시즌 5승 30패로 역대 최저 승률(0.143)을 기록했고, 직전 시즌 7승(33패)에 그쳤던 우리은행은 24승(11패)을 거두며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위 감독은 선수들로부터 ‘악마’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훈련을 시켰다. 그렇게 하고도 성적을 못 내면 본인부터 그만둘 각오였다.

‘동네북’ 팀이 우승하자마자 위기가 찾아왔다. 힘든 훈련이 싫었던 선수들이 단체행동에 나선 것이다. 위 감독은 “눈앞이 캄캄했는데 구단에서 ‘당신 그 선수들 아니면 팀을 못 이끌어? 우승까지 했으니 꼴찌만 안 하면 돼’라고 힘을 실어줬다”고 기억했다. 우리은행 정장훈 사무국장은 “그때 구단이 감독에게 ‘적당히 달래가며 하라’고 했다면 지금의 우리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굵직한 기록을 남긴 지도자 가운데는 ‘자율적 훈련’보다 ‘나를 따르라’ 유형이 많았다. 프로 종목 유일의 7연패를 포함해 8차례 우승을 이뤄낸 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전 단장), 프로농구 유일의 3연패 및 5차례 우승을 달성한 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대표적이다. 최근 일선에서 물러난 신 전 단장은 “감독은 ‘합리적 악질’이어야 한다. 그게 선수들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악질을 넘어 악마라고 불리던 위 감독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달라지고 있는 듯하다. 그는 “예전에 열 번 화를 냈다면 요즘은 한두 번이다. 선수들을 괴롭히고 싶은 감독이 어디 있겠는가. 자율적으로 훈련해도 성적을 낼 수 있다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초반 부진을 떨치고 선두권에 올라온 뒤 위 감독은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우리은행의 독주가 흥행을 망친다”는 얘기가 다시 나오고 있어서다. 이런 목소리는 지난 시즌 최고조에 달했다. 시작부터 독주한 우리은행이 2위 삼성생명과 무려 15경기 차로 정규리그를 마쳤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은 그나마 낫다. 통합 6연패에 도전하는 우리은행과 창단 첫 우승을 노리는 KB스타즈의 선두 싸움이 치열하다.

많은 땀을 흘린 팀이 좋은 성적을 올리는 건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위성우 사단’은 4년 연속 꼴찌 팀을 맡아 별다른 전력 보강 없이도 챔피언으로 만들었기에 더 그렇다. 우리은행이 통합 6연패를 달리던 ‘신한 왕조’를 무너뜨렸듯이 ‘우리 천하’도 막을 내릴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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