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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동아광장/박일호]오죽하면 대학을 구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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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사철 이대를 찾는 관광객, 볼 것 없는 한국관광의 단면

보고, 먹고, 즐길 거리 적어… 쇼핑이 대부분인 빈곤 관광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관광 다변화 발판 만들어야

동아일보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


이화여대는 사시사철 중국인 관광객들이 찾는다. 정문 옆에 장식된 배꽃 조형물이나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고, 학교 안으로 들어와 곳곳을 배회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때는 학교가 마치 관광지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배꽃을 뜻하는 이화(梨花)가 이익을 뜻하는 이(利)와 재물을 뜻하는 화(貨)의 중국어 발음과 비슷해서인데, 이화여대에서 사진을 찍으면 많은 재산을 모으게 된다는 엉뚱한 소문이 났기 때문이란다. 중국어 전공 교수에게 물어보았더니, ‘피어오르다’ ‘발생시키다’란 뜻의 ‘발(發)’이 ‘재산을 모으다’란 뜻의 ‘발재(發財)’란 말에 쓰이는데, 그 발음 중 ‘파’가 꽃의 ‘화’ 발음과 비슷해서인 것 같다는 설명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소문의 내용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가 관광을 위해서 스토리를 만들고 소문을 퍼뜨렸지 싶다. 그리고 유서 깊은 건물과 여자대학이라는 문화적 분위기가 주는 느낌이 색다르고, 꽃이 피고 신록이 우거지고 단풍 들고 눈 내리는 사계절의 정취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유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중국인 관광객만이 아니라 베트남 대만 일본 등에서도 사람들이 찾고 있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무례한 관광객들이 강의실이 있는 건물 안으로까지 들어오기도 해서 문마다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표지판이 붙었고, 관광지처럼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벌이는 행태와 소란이 학교의 면학 분위기를 해치기도 한다. 한국 관광을 와서 오죽 볼 것이 없으면 대학 캠퍼스에까지 왔을까를 생각하니 자조 섞인 푸념도 나온다.

한국 관광의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 위주라는 점과 쇼핑 위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 관광산업이 발전하려면 다양한 나라를 대상으로 하고, 쇼핑만이 아닌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 등이 특색 있게 제시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작성한 ‘2016년 관광객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을 찾은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한 일은 쇼핑으로 47%였고, 다른 항목에서 한국 관광에서 가장 큰 불만사항을 물었더니 응답자의 41.6%가 관광자원 부족이라고 답했다. 볼거리나 즐길거리 없이 아침에는 동대문, 저녁에는 명동으로 향하는 쇼핑 위주의 관광이 문제이고, 무조건 관광객을 유치하고 보자는 싸구려 관광까지 판치는 바람에 국가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관광객의 나라를 다변화하는 것은 조금만 노력해도 바로잡을 수 있겠지만, 더 큰 노력이 필요하고 시급한 것은 관광자원 부족을 해결하는 문제다. 우리가 외국여행을 가면 색다른 경험을 찾듯이 관광객들이 그들 나라에서 경험할 수 없는 우리만의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를 찾아내야 할 것 같다. 새로 무언가를 거창하고 획기적으로 만들어 내려 하지 말고, 우리가 가진 것과 있는 것을 다듬어서 보여주면 어떨까. 수준 높고 고상한 예술만이 아니라 삶의 방식 자체도 문화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역사 속의 유서 깊은 현장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만들고, 우리 삶에 녹아 있는 내용과 살아가는 모습을 문화화해 보는 것이다. 대자연의 거대함과 장엄함으로 겨룰 수는 없을 터, 사계절의 뚜렷함과 아기자기함을 활용한 자연관광에도 눈길을 돌려 보면 어떨까.

필자는 이런 일들을 지난 정부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문체부가 중심이 되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시작을 멀리 잡을 것도 없다. 내년 2월 9일이면 평창 겨울올림픽이 개막하니, 세계의 시선이 우리를 향하게 되는 때에 맞추어 보는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겨울올림픽에서 주목하는 것이 스포츠 경기만이겠는가. 우리나라의 지역적 특색이나 문화적 볼거리에도 많은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점에서 강원도에서부터 전국 각 지역의 자연과 역사와 생활에 문화의 옷을 입히는 것이다. ‘평창, 문화를 더하다’라는 슬로건에 맞게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가 갖추어진 한국의 문화 이미지를 만들고 홍보한다면, 이것으로 문화올림픽과 평화올림픽이라는 목표도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의 이미지 제고를 통한 지속적인 관광 전략 수립 및 시설 활용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새해에는 이렇게 관광자원이 개발돼서 대학 캠퍼스를 배회하는 관광객을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벗어난 문체부의 새로운 모습도 보고 싶다.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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