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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울 만큼 울었어" 당당하고 강해진 소녀상…올해도 10여곳 우뚝(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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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 일본대사관 앞 첫 설치…전국·해외 80여 곳으로 늘어

연합뉴스

전국 각지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국종합=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안녕, 난 평화의 소녀상이라고 해.

날씨가 꽤 추워진 거 같아. 하지만 시민들이 입혀준 외투, 목도리, 양말 덕에 추운 걸 모르겠어.

오늘도 난 언제나 그랬듯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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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따뜻하게 [연합뉴스 자료사진]



난 2011년 12월 14일 일본대사관 앞에 앉았어.

그날은 매우 뜻깊은 날이기도 했지.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던 우리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집회'가 1천 회째를 맞은 날이었거든.

일본의 조속한 문제 해결을 촉구하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란 곳에서 나를 위해 시민 성금을 모았다고 들었어.

그날부터 지금까지 짧은 단발머리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매일 일본대사관 쪽을 바라보고 있지.

내가 일본대사관에 앞에 자리한 이후 전국 각지는 물론 미국 글렌데일과 미시간주 사우스필드, 캐나다 토론토, 호주, 중국 등 해외에도 친구들이 세워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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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평화의 소녀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금껏 제작된 나와 친구들은 언제나 늘 그 지역 주민 성금으로 만들어지고 있어.

오는 21일 대구대 경산캠퍼스 빛광장에선 또 하나의 친구가 시민들을 만나.

대학 캠퍼스에 소녀상이 세워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네. 제막식에는 이용수 할머니도 참석할 예정이야.

건립은 2015년 12·28 위안부 합의 이후 급속히 확산했지.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 조건으로 일본이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알려지면서야. 이럴 때 쓰는 단어가 '몰염치' 맞지?

올해만 해도 전국 곳곳에, 해외에 10여 개가 세워졌어.

지난 광복절에는 서울 도봉·금천, 경북 안동, 전북 익산, 충남 홍성, 경기 용인에서 시민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만든 상이 동시에 세워지기도 했어.

올해 우리는 더 당당해졌어.

새 소녀상 상당수가 나(소녀상의 모티브가 된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와는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어.

새 소녀상들은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담으면서 당당하고 진취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

더욱 굳건한 모습으로 재탄생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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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에른주 파빌리온 공원 소녀상[연합뉴스 자료사진]



소녀상 수십 개를 만든 김서경·김운성 작가 부부는 나를 고통으로 만들었다고 회고했어.

내 모습이 갖춰질수록 쉼 없이 밀려오는 분노와 아픔, 슬픔과 고통.

작가들은 시시때때로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답답함에 숨이 막힐 것 같았데.

어리고 연약한 몸으로 수많은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던 소녀들의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했다고 하네.

이렇게 난 지우고 싶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의 한복판에서 태어났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수많은 소녀와 여인은 일본군 패전 이후 버려졌거나 죽임을 당했고 극소수만 간신히 조국 땅에 돌아왔어.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가족을 찾아 돌아왔건만 가족이 등을 돌리고 국가가 외면했지.

그렇게 또 다른 고통을 버텨내야 했어.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침묵의 시간은 평생을 갔고, 그 시간 속에 숨겨야만 했던 아픔은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 가슴 깊이 남았지.

위안부 할머니들은 1991년부터 "나는 강제로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고 스스로 밝히며 일본 침략전쟁의 잔혹함과 소녀들을 '성노예'로 전락시킨 일제의 뻔뻔함을 만천하에 고발했어.

이렇게 태어난 게 나야. 일제 침략전쟁에서 발생한 국가폭력의 상처를 상징하지.

혹시 내 얼굴 자세히 본 적 있니?

김서경 작가는 인터뷰에서 내 얼굴을 "무엇보다 나약하지 않은 인상을 주려고 신경 썼고, 당당하면서도 부드러운 표정을 담으려고 했다. 사죄하지 않는 일본을 단아하게 꾸짖는 눈빛을 표현하려고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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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작가 김서경·김운성씨 [연합뉴스 자료사진]



내 얼굴은 슬프지만 슬프지 않게, 화가 나지만 화난 표정이 아닌, 어리고 여린 소녀지만 결연한 의지를 담고 있는 모습으로 제작됐어.

작가들은 나를 만들면서 한복, 거칠게 잘린 머리카락, 자유와 해방, 평화를 상징하는 새, 환생의 의미를 지닌 나비, 빈 의자, 꼭 쥔 두 주먹, 땅에 닿지 못한 발뒤꿈치 등을 '기호'를 넣었어.

특히 소녀의 땅에 닿지 못한 발뒤꿈치는 아픈 세월 속에 떠돌듯 불안하게 살아온 할머니들의 삶을 표현한 거래.

작가는 "언제쯤이나 소녀가 불편한 뒤꿈치를 편안하게 내려놓고 땅을 디딜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어.

생각해봐. 그 여린 소녀들의 외로움을…. 갑자기 울컥하네.

그래도 난 울지 않을 거야. 울 만큼 울었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거든. 더 굳세질 거야. 항상 마음을 다잡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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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괜찮아요' 소녀상 찾은 어린이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나는 지금도 기다리는 중이야.

언젠가 일본 정부가 참회하는 마음으로 피해자의 입장을 깊이 헤아리고 참회할 날을, 내가 꼭 쥔 주먹을 잡으며 무릎 꿇고 사죄할 날을 말이야.

예술 전문가들은 나를 사회적 소통 과정을 거쳐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사회예술(social art)의 면모를 지닌다고 평가했어. 고마운 말씀이지.

역사란 끊임없는 새로운 해석과 성찰의 대상이지 불가역적 폐기의 대상이 될 수 없어.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될 거야.

난 언제라도 이 자리를 지킬 거야. 앞으로도 잊지 않을 거지?

[※ 이 기사는 2011년 12월 서울 일본대사관에 첫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한 김서경·김운성 부부의 작가 노트 '빈 의자에 새긴 약속'을 바탕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의인화해 1인칭 시점으로 작성했습니다.]

sollens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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