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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치매예방 디자인을 입은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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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건강’ 아파트 가봤더니

출입구에 해ㆍ달 그려 기억 쉽게

층ㆍ우편함 글씨 크기는 크게

길 찾기 쉽고 노인들 오감 자극

안전사고 20~30% 감소
한국일보

서울 영등포구 신길4동의 한 아파트. 동 출입구에 별을 그려 넣고 ‘별문’이라고 이름 붙여 노인들이 집을 찾기 쉽도록 했다.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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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4동의 한 아파트 앞. 인지 능력을 높이도록 디자인 한 아파트답게 입구부터 주황색, 파란색, 노란색으로 화려했다. 온통 무채색인 계절이 무색했다. 아파트를 한 바퀴 둘러보다 중간에 놓인 쉼터 벤치 옆 버튼을 누르자 노래가 흘러 나왔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요~ 당신만 아세요~.” 가수 박단마가 1938년에 발표한 ‘나는 열일곱살이에요’가 울려 퍼졌다.

이 아파트는 생활환경 개선을 통해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추고 예방하도록 하는 서울시의 인지건강 디자인이 적용된 주거지 총 3곳 중 한 곳이다. 한 동, 387세대 규모 임대아파트로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26%를 차지한다. 노인들의 학습 능력이 남아 있을 때, 오감을 자극하고 운동과 대화를 유도해 인지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단지 곳곳을 지난해 6월 리모델링 했다.

김원기 시 디자인정책과 주무관은 “어르신들은 시장이나 병원 가는 일 외에는 집 밖에 잘 안 나온다”며 “섬처럼 외부와 단절된 생활 패턴을 바꾸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우선 아파트 뒤에 방치된 농구장을 체조나 지압 등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고, 딱히 산책할 곳이 없던 단지 한쪽에 초록색으로 보행 구역을 만들었다. 걷다가 100m 마다 앉아 쉬는 노인들의 행동 특성을 분석해 벤치도 새로 들였다. 쉼터 옆에는 노인들이 좋아하는 꽃도 심었다. 아파트 복도 한쪽 벽면에 유엔(UN) 팔각 성냥갑, 달고나 처럼 추억의 물품들을 전시해 ‘기억’하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단지 내 쉼터의 벤치에선 1970년대 유행하던 가요 메들리가 나와 따라 부를 수 있다.

노인 거주자들은 그간 구별이 어려웠던 아파트 동 출입구와 층, 현관문, 우편함을 알아보기 쉽도록 바꾼 게 무엇보다 편리하다고 했다. 동 출입구엔 각각 ‘해’ ‘달’ ‘별’이라는 이름을 붙여 기억하기 쉽도록 했고, 층과 우편함도 약시인 노인들을 위해 짝수, 홀수에 따라 선명하게 대비되는 색으로 칠했다. 모든 숫자나 글자 크기는 눈에 잘 띄도록 키웠다. 현관문에는 직접 그린 그림이 들어간 문패를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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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건강 디자인이 적용된 신길4동의 한 아파트 우편함.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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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건강 디자인 적용 전의 단조로운 우편함.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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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윤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은 “이전에는 나이 드신 분들이 자기 집을 못 찾아 입구를 배회하거나 다른 집 우편함에서 관리비 용지를 가져가서 재발행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이제는 그런 일들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부녀회장 김태구(69)씨도 “길 찾기가 쉽고, 여기저기 의자가 많아 나와 있기 좋다”고 말했다.

시는 최근 이 아파트를 포함해 인지건강 디자인이 적용된 양천구 신월1동 다세대ㆍ다가구 밀집 지역과 노원구 공릉동 임대아파트의 사례를 담아 ‘인지건강 생활환경 가이드북’을 펴냈다. 이에 따르면 403명을 대상으로 사업 전후 인지건강 변화를 분석한 결과 인지장애, 안전사고가 각각 30.8%, 24.4% 감소했다. 반면 하루 2회 이상 외출 빈도는 39.9%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오찬옥 인제대 실내건축학과 교수는 “고령화 사회, 디자인이 획일적인 아파트엔 특히 이런 유니버설 디자인이 더욱 중요하다”며 “사업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벤치에서 나오는 노래나 게시물을 바꿔주는 등 꾸준한 유지, 보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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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4동의 한 아파트 노인 거주자들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만든 현관문 문패.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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