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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최고 보안등급 시설 KIST도 ‘도핑검사 올림픽’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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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래&과학]

400여가지에 이르는 금지약물

반도핑기구, 적발 실력 공개키로

실사 중인 한국 도핑컨트롤센터

내년 1월 결과 앞두고 만반 준비

“바이오의약품 분석기술은 톱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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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연구원(키스트) 도핑컨트롤센터(DCC)에서 연구원들이 운동선수들한테서 채취한 시료에 도핑 약물이 들어 있는지 검사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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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키스트)은 ‘국가중요시설물’로 분류돼 최고 보안등급이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키스트 안에 직원도 들어가지 못하는 건물이 있다. 6층짜리 L4 연구동 엘리베이터는 5층까지밖에 운행하지 않는다. 반면 화물엘리베이터는 지하 1층과 6층만 서고 1~5층은 그대로 통과한다. 이곳에는 ‘도핑컨트롤센터’(DCC)가 자리하고 있다.

도핑컨트롤센터는 국내뿐만 아니라 인근 국가에서 치러지는 스포츠대회 참가 선수들의 도핑검사를 전담하는 연구소다. 이 센터는 해마다 시험을 본다. 키스트 도핑컨트롤센터는 1984년 88올림픽을 대비해 설립됐지만 1999년 세계반도핑기구(WADA·와다)가 발족한 뒤 매년 와다로부터 공인을 받고 있다. 도핑컨트롤센터가 내년 2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 기간에 공식 도핑랩으로 활동하려면 와다의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권오승 키스트 도핑컨트롤센터장은 “올해만 두차례 실사를 받고 있다. 아직 실사가 진행중으로 내년 1월 중순께면 공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선수들이 선수촌에 입주하는 2월1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채취한 시료를 전달받아 도핑검사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도핑테스트 체계는 선수들한테서 시료를 채취하는 국영 반도핑기구(NADO)와 도핑테스트를 하는 기관(도핑랩)으로 나뉜다. 반도핑기구는 200여 국가별로 조직돼 있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O·카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도핑랩은 국가별로 설치돼 있지 않다. 도핑랩이 없는 경우에는 인근 국가 도핑랩에 검사를 의뢰해야 한다. 도핑랩 숫자는 해마다 시험을 보기 때문에 수시로 바뀐다. 최근 멕시코 랩은 잃었던 공인을 회복한 반면 루마니아 랩은 탈락했다.

도핑랩 공인시험은 무척 까다롭다. 정기적인 공인시험은 1년에 3차례 보는데 한번에 5~6개의 시료병이 전달된다. 검사 결과를 하나라도 잘못 내면 탈락이다. 또 ‘이중 맹검’ 시료라는 것이 5개 전달된다. 도핑컨트롤센터는 연간 6천여개의 시료를 처리하는데, 이중 맹검 시료는 여기에 섞여 들어온다. 어느 것이 시험 대상 시료인지, 내가 시험을 보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에 검사자는 사실상 모든 시료를 공인시험 대상이라 보고 검사해야 한다. 이 ‘깜깜이 시료’(스파이 시료)를 음성인데 양성이라고 잘못 검사하면 바로 탈락이다. 실제 상황이라면 선수가 다칠 수 있어서다. 반대로 양성인데 음성이라고 잘못 판단하는 경우도 2번 이상이면 탈락한다.

와다는 2014년 러시아 소치 올림픽 때 국가 주도 도핑 사태를 겪은 뒤 심사를 강화해 많은 도핑랩을 공인시험에서 탈락시키고 있다. 도핑랩은 2015년 32개국 35개였던 것이 올해는 11월 현재 25개국 28개로 줄었다. 와다는 또 지난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이후 수사권 조사부서 파견, 내부고발제도 운영, 폐회로텔레비전(CCTV) 의무설치 등 보안을 대폭 강화했다. 와다는 그동안 해마다 공인시험만 볼 뿐 도핑랩별 순위를 매기지는 않았는데 내년부터는 성적을 공개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도핑테스트 분야에서도 올림픽이 열리는 셈이다. 손정현 도핑컨트롤센터 선임연구원은 “현재 도핑랩들이 하는 검사방법은 표준기술이 아닌 고유의 기술이다. 와다의 랭킹 제도 도입은 랩별로 능력에 차이가 크게 난다고 판단하고 순위가 낮은 곳에 기술이전과 지원을 해 도핑랩의 수준을 평준화하기 위한 방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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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노수민 기자 bluedahlia@hani.co.kr


도핑테스트는 경기 현장에서부터 시작된다. 경기가 끝나면 ‘샤프롱’이라 불리는 도핑관리 자원봉사자가 메달을 딴 모든 선수들과 무작위로 선정된 선수들마다 한명씩 배정된다. 샤프롱 안내로 선수들이 경기장 가까이에 마련된 ‘도핑관리실’에 도착하면 도핑검사관 감독 아래 선수들의 소변과 혈액을 채취한다. 대부분 소변을 채취하지만 15% 정도는 혈액을 채취하는데, 종목에 따라 달라진다. 여름·겨울 올림픽 차이는 없다. 가령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을 늘리는 것이 유리한 크로스컨트리·마라톤·수영 등 지구력 위주의 종목은 혈액을 채취한다. 근육을 많이 쓰는 종목은 소변을 채취한다. 시료는 60㎖짜리와 30㎖짜리 2개의 병에 담겨 밀봉된다. 도핑관리 양식에는 선수의 인적 사항이 기록되지만 시료병에는 난수표로 작성된 7자리 숫자만이 적힌다. 시료병만 보면 어느 선수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 시료병이 도핑컨트롤센터에 도착하면 본격적인 도핑검사가 시작된다. 평창올림픽 기간에 검사할 시료는 4000여개쯤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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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핑테스트용 시료 병. <뉴욕타임스> 제공


도핑검사자는 우선 시료병의 플라스틱 뚜껑을 특수장치로 파쇄한 뒤 60㎖짜리는 4도로 냉장보관하고, 30㎖짜리는 20도 냉동고에 보관한다. 30㎖짜리는 60㎖짜리로 검사를 해 도핑 양성 반응이 나왔음에도 선수 쪽에서 이의를 제기하면 해당 선수나 대리인이 입회한 상태에서 재검사를 하기 위한 것이다. 재검사 비용은 선수 쪽에서 부담한다.

도핑금지약물은 400가지가 넘는다. 이 약물이 몸속에 들어가 만들어내는 대사체는 약물에 따라 여러 종류가 나올 수 있어 적게 잡아도 800개 이상이 된다. 약물과 대사체에 따라 분석하는 장비가 달라야 한다. 어떤 약물의 대사체는 전통적인 질량분석기나 전기영동법으로 검출하고, 항원항체법이나 방사성동위원소를 바이오마커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검출해내야 하는 대사체들도 있다. 질량분석기로는 몸속 남성호르몬과 식물에서 대량생성한 테스토스테론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럴 경우 식물과 포유류의 탄소 동위원소 비율이 다른 점을 이용해 탄소 동위원소 비율을 검출하는 장비로 약물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알아낸다. 박태환 선수의 테스토스테론도 이 방법으로 검출됐다. 최근에는 주요 대사체가 2~3일 안에 사라지더라도 장기간 몸속에 남아 있는 미량 대사체를 검출하는 기술도 개발됐다. 도핑 디자이너들은 인체 안에 존재하는 단백질과 유사하고 대사되는 양이 적어 기존 분석법으로 검출하기 어려운 생물의약품(바이오시밀러)을 즐겨 사용하기도 한다. 권오승 센터장은 “도핑컨트롤센터에서 새로운 바이오의약품 분석기술을 개발해 최종 인증을 기다리고 있다. 와다가 30여 랩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한 결과 우리를 포함한 5개 랩만이 통과했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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